동고동락을 한다는 건 이런 의미일까
사실 그림을 그릴 때 지치거나 피곤함을 느끼는 시간은 그림을 처음 시작하는 무렵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 막 시작하거나 취미 미술에 입성하는 시간은 마냥 설레고 흥분되기 마련이다. 제법 그 시간이 무르익어갈 무렵 가끔씩 딴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내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생각처럼 잘 나오지 않아 가끔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실력이 오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오히려 처음 그림과 만났을 땐 자유롭게 색깔을 사용하는 것도, 마음대로 드로잉 하는 것도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였고 가끔은 감정의 배설이기도 하였는데 기대치가 생기는 순간 달라졌다. 나 혼자서 부담을 느끼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면서 그림 그리는 시간 동안 감정적인 밀당이 시작되었다.
이런 감정에 머리가 복잡해질 무렵 누군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너는 너무 예민해서 문제야. 이제 애 한 명 빨리 낳아야지.”
“너는 승부욕이 너무 커서 이러저러한 것 같아.”
우린 제법 함께하는 시간이 꽤 긴 편이고 서로 참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다. 가까워서 할 수 있는 소리이고 그만큼 오랜 기간 함께했기에 판단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어떤 이야기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편이지만 가끔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 관계를 되돌아본다. 마치 그림 그리는 시간에 대해 나 혼자 밀당을 하듯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다시 한번 관계를 생각해보게 된다.
만약 늘 낯선 사람들만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설레면서 극진한 매너로 서로가 서로를 호감 가는 인상으로 만들고자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마치 내가 처음 그림을 그릴 때 뭘 그려도 호감을 느끼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간 처음 만날 때도 그렇지 않을까. 오래 관계가 무르익는다는 것은, 오랫동안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단맛, 쓴맛, 떫은맛을 모두 느껴가는 과정인가 보다.
그림을 그릴 때 예전처럼 설레거나 마냥 기분이 좋진 않다. 대신 매일 잠깐이라도 그림을 그리면서 편안함을 느낀다. 편안하고 익숙할 때 쓴맛, 떫은맛을 느끼는 순간인가 보다. 나만의 방식대로 단맛을 느끼기 위해 과감히 방식을 바꿔본다. 큰 범주에서 그림을 계속 그리지만 재료나 장소를 계속 바꿔보는 것이다. 연필로만 그림을 그리다가 최근에는 과슈로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마카도 자주 사용한다. 아예 그림 그리는 형태를 바꿔보기도 한다.
한 장면 위주의 일러스트를 그리다가 최근에는 그림으로 ‘인스타툰’에 도전해보았다. 처음 시도하는 형태라 그림에 대해 잠잠해진 불꽃이 다시 피어나는 느낌이다. 한 장 한 장을 무척 꼼꼼하고 빼곡히 색칠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러프하게 스케치만 한 상태로 빨리빨리 인스타그램에 올려버린다. 나만의 방식으로 지루 할 때 즈음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그림에 대한 마음을 이어 나가려고 한다.
다시 인간관계로 넘어와 친한 사람만이 내게 할 수 있는 소리에 종종 상처를 받을 때면 잠시 거리를 둔다. 우정, 신뢰와 같은 큰 범주는 그대로 남겨둔 채 방식만 다르게 변화를 주는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한 우정과 신뢰는 그대로 두고 다른 새로운 친구들의 조언을 들어보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너무나 복잡하고 미묘한 게 많다. 특히 관계에 있어선 개인의 ‘직감’만이 정답을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나’를 가장 우선순위에 올려놓고 서로 상처가 안 남는 방식을 모색하는 방법으로 편안해서 생기는 아픔을 치료하려고 노력한다.
잘 그리든, 못 그리든 오랜 시간을 함께 나누면서 이제는 제법 그림 그리는 시간이 편안해지고 있다. 그림으로 인해 내 감정이 다친다면 다그치지 말고 이제 우리가 서로 친해졌구나. 하면서 적극적으로 공생하는 방법을 찾아 나설 테다. 그러면 단맛, 짠맛, 떫은맛, 매운맛을 함께하며 우리가 좀 더 돈독한 관계로 남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