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결혼하면 배우자를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책임진다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만약 이 사람이 똥오줌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면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결혼을 하기 전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난 결혼보다, 배우자보다 그저 나를 더 사랑했던 것 같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배우자에 대한 사랑이 커진 것은 틀림없다. 여전히 배우자를 책임져야 할까?라는 공상에 빠질 때가 있다. 예전에는 걱정이 앞선 질문과 고민이었다면 지금은 '쓸데없는 고민'이라고 치부하고 생각을 멈춘다. 물론 정말 그럴 일이 발생한다면 똥오줌을 가누지 못하는 배우자를 더럽다고 생각하기보단, '어이구 영감탱이'라고 하면서 묵묵히 도와주지 않을까. 그게 가능한 건 함께 하는 순간 좋았던 추억들 때문이테다.
다시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결혼하면 배우자를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배우자를 책임지는 게 아니라 가정을 책임진다고 생각한다. 가정은 사랑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남편 하고만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 앞으로 태어날 가족과 살기 위해서는 사랑 외에 책임이 필요하다. 때론 가치관이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내 소중한 것들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감'만 있다면 가정은 어느 정도 유지를 할 수 있다.
사랑만으로 살 수 없는 이유는 결혼하고 3년만 살아보면 금방 깨닫는다. 결혼은 현실이다. 살면서 금전적, 육체적, 정신적 문제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이때 때론 사랑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을 구매하면서 6억에 가까운 돈을 대출받게 되었다. 당시 이자가 약 300만 원에 가까운 비용이었다. 우리 식구가 살기엔 턱없이 부족한 비용이었고 돈이 없으니 낭만 있고 폼 있게 살기 어려워졌다.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들을 줄이면서 삶이 퍽퍽해졌다. 유일하게 당시 나를 지탱했던 힘은 책임감이었다. 사랑만 있었다면 금방 포기를 했을 것이다. '왜 내가 굳이...'라는 생각에 굳이 집을 구매할 생각도, 절약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보니 '우리 가족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면'이라는 형태로 생각의 전환이 이뤄진다. 무조건적인 절약 역시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책임감이라서 조금도 속상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선택한 책임감이라지만, 때론 이 책임감에 균열이 생길 때도 있다. 혼자서만 책임을 지는 것 같은 일종의 손해 보는 심리가 작동될 때면 균열이 생긴다. '왜 나만'이라는 마음이 작동될 때면 집 안에서 큰 전쟁이 몰아친다. 모든 사람은 이기적이다. 아무리 배우자를 사랑한다고 해도, 결국엔 본인을 사랑하기에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기에 책임감의 균형이 깨지면 문제가 발생한다. 난 그래서 결혼을 했으면 모두 일부러라도 의도적인 책임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은 결국 사랑으로 시작해 책임감으로 완성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족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사랑이 없이 책임감만으로 사는 것은 가족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랑만 있고 책임감 없이 사는 것은 가족으로서 함량 미달이다. 가족이 된다는 건, 사랑과 책임감으로 이뤄진 공동체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필수적이기에 구성원 누구라도 소홀하다면 당당히 요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중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가족으로서 유지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사랑은 많은데 책임감이 없으면 남겨진 사람이 불행해진다. 책임감은 투철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남겨진 사람이 외로워진다. 가족이 된다는 건 부족한 두 사람이 나로 인해 서로 행복해지고, 행복을 책임진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부족하기에 그 과정이 때론 엉망이고, 난장판일 수 있으나 미우나 고우나 서로 함께 걸어가는 것이 가족이 아닐까.
물론 현실은 사랑과 전쟁이긴 하지만 말이다. 잔소리 심한 남편과 또 싸우고 "아 열받아, 나 밖에 나갈 거야!"라고 소리를 쳤다가 머지않아 "배고프지 않아? 밥 먹을래?"라고 이야기하게 되는 투닥거릴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존재 집단이 가족일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