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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Sep 09. 2024

결혼을 해보니, 조심해야 할 것들

결혼 후 덜 싸우는 팁이 있을까?


2024년은 처음으로 남편과 내가 따로 떨어져 살았던 한 해이다. 남편이 대상포진으로 입원을 하였기 때문이다. 대상포진은 면역력이 떨어져 생기는 병인데, 그 시기 남편은 나로 인해 마음이 아팠나 보다. 남편이 입원을 하기 몇 개월 전, 우린 자주 다투었다. 왜 옷을 아무 데서나 벗어놓으냐고, 왜 생수병을 컵에 따라 마시지 않고 입 대고 마시냐며, 수도 없이 서로를 비난하고 잔소리를 하는 시간이었다. 결혼하기 전 우리 부부는 치열한 싸움이 없었다. 신혼 초 만해도 싸우는 시간과 서로를 비난하는 시간 대신 대화하는 시간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 결혼 8년 차가 다가오니 확실히 우리는 자주 싸우게 되었다. 


"네가 에어컨을 켠 채 아기 목욕을 시키지 않았다면, 감기에 걸리지 않았을 거야."

"이미 지난 일이잖아. 약이나 먹여."

작은 약병들과 약을 남편에게 휙 던져버렸다. 또르르르 약병들은 떨어졌고, 남편은 휙떨어진 약병들과 함께 황당하게 나를 쳐다봤다. 


도박문제, 돈문제, 불륜문제 뭐 이런 거대한 문제가 아니지만, 어렴풋한 이유로 자주 싸우곤 하였다. 명확하지 않고 어렴풋했기에 싸우는 이유는 어렴풋이 매번 반복되었다. 싸워도 시간이 지나면 서로를 이해했기에 넘어갔지만, 문제는 후회였다. 치열하게 싸우고 깨끗하게 다시 시작하면 좋으련만 나는 치졸하게도 치열하게 싸우고 혼자서 끙끙 앓으며 후회를 했다. 남편이 대상포진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도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르겠다. 행복하기 위해 한 결혼인데 왜 우리는 끊임없이 싸움을 반복하는지를 생각하고, 연구하게 되었다. 나는 결혼을 하고, 싸우지 않기 위해 무엇을 조심하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일까?


싸우지 않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수다.

건강하고 오래 살기 위해 체력이 필수다. '건강'이라는 단어는 참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다. 배우자와의 건강한 관계가 유지되려면 체력이 필수다. 체력이 떨어지면 사소한 말 한마디에 취약해진다. 어감, 어투에 예민해지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부부 사이에 체력은 마음 주머니와 같다. 체력이 좋을수록 마음주머니가 넓어진다. 어떤 헛소리를 하더라도 푸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된다. 체력이 떨어졌을 땐 서로 조심해야 한다. 싸우지 않기 위해서는, 차라리 함께 산책을 하거나 달리기를 하면서 체력을 쌓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요즘 밤에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확실히 산책할 땐 싸우는 일이 없다. 


싸우지 않기 위해서는 바꾸려고 하면 안 된다. 

말이 좋아 바꾸려고 하면 안 된다라고 표현을 한 것이지, 사실은 반쯤 포기를 해야 한다고 쓰는 것이 맞다. 남편은 걱정 부자다. 나는 만사 천하태평이다. 남편은 우리 아기가 조금만 얼굴에 뭐가 나면 옆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혹시 수두가 아닐까? 응급실에 가야 하지 않을까?"

"혹시 새벽에 더워서 땀띠가 난 것일까? 응급실에 가야 할까?"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걱정되는 엄마의 마음 옆에서 부채질을 한다. 또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덜 싸우려면 걱정덩어리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넘어가는 것이다. 말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지 사실은 반 포기한 상태로 '그래, 너는 원래 걱정이 많은 사람이지.'라고 담대하게 넘어가면 상당 부분 싸움이 사라질 수 있다. 물론 쉽지는 않다. 각자 자라온 환경에 따라 자아가 뚜렷하게 형성되어 그 자아를 누그러뜨린 채 나와 다른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만만치 않다. 불쑥불쑥 상대방을 바꾸고 싶고, 뭐라고 잔소리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수없이 상대방을 바꾸려 시도하고, 잔소리를 해본 결과.... 내 입만 아프다.


싸우지 않기 위해서는 낯섦이 필수다. 

낯설다고 하면 연애 초기의 자연스러운 풋풋함을 떠올릴 수 있으나, 그런 낯섦과 농도가 다르다. 결혼한 후 싸우지 않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낯섦이 필요하다. 우리는 여전히 아마도 늙어 죽을 때까지 존경,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일테다. 하지만 너무 가까워진 나머지 존경, 감사, 사랑을 그저 공기처럼 당연시 받아들이고 표현하지 않게 된다. 싸우지 않기 위해서는 이 당연한 것들을 의도적으로 표현을 해야 한다. 의도적인 낯섦을 만들어, 너로 인해 감사하고 너로 인해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나눠야지 관계가 부드러워진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남편의 관계 역시 표현을 안 해도, 알아줄 거라 생각하였지만 큰 착각 중 하나였다. 


앞으로도 우린 계속 싸우고, 화해하고, 웃고, 위하며 함께하는 삶을 지속할 것이다. 심장이 벌렁거리는 두근거림은 다소 사라졌지만, 의리와 책임감, 다정함과 포용력이 커지고 있다. 인생이라는 여정을 남편과 함께 걸어가서 기쁘고, 감사하다. 가끔은 다투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겠지만, 재미나게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내내 걸어가고 싶다.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고, 고민하다 보면 우리의 걸음걸이도 둥글둥글해져서 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인생이란 여정을 편안하게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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