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나’로 살았을 때, 몸은 현재를 살지만, 마음은 과거나 미래를 떠돈 적이 많았다. 책상에 앉아 바삐 손을 움직이고 있지만 마음은 그곳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쉽게 지치고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때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건, 밖으로 나가 햇볕을 쬐고 지금을 온전히 즐기며 걷는 것이었다.
자연과 함께하는 동안에는 현재에 머물 수 있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를 듣고, 햇빛에 색색으로 물든 나뭇잎을 바라보는 시간. 그리고 햇살이 온몸에 닿아 따뜻함을 느끼고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그 순간들. 어느덧 정신없던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고 진정으로 이 세상과 만나는 ‘지금’만이 남았다.
이제 다시 모든 신경을 현재에 집중하고 주위를 돌아본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놀이터에서 신나게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덩달아 신이 나고, 산책 나온 강아지가 즐겁게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며 함께 미소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이 힘든 날이 있다. 그럴 때 가만히 속을 들여다보면, 여지없이 마음은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고 몸만 지금 여기에 남아 있다. 마음이 과거와 미래를 분주히 오가며 번잡할 때, 나는 다시 다짐한다. 신발 끈 질끈 묶고 밖으로 나가 오늘을 살자고.
낭만주의 시대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호숫가에 핀 수선화에 영감을 받아「수선화(Daffodils)」라는 시를 썼다. 그는 시에서 자연이 가진 무한한 치유의 힘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자연을 느끼기 위해 꼭 거대한 산이나 울창한 숲, 탁 트인 바다를 찾아 멀리 떠나야 할까? 워즈워스는 아니라고 답한다.
“황금빛 수선화가 호숫가 나무 아래에서 바람에 한들한들 춤추는” 모습에 위로받은 시인처럼, 우리도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길가에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이 주는 평화와 자유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오늘도 나는 다시 오지 않을 올해의 완연한 가을을 즐기기 위해 집을 나선다. 햇빛을 친구 삼아 걷다 보면 이 거대한 자연 속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에 불과한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무한한 마음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도록 잠시 기다려줄 수만 있다면, 마침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봄 햇살을, 여름의 뜨거움을, 가을 단풍을, 겨울의 눈을 충분히 즐기는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