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고 씁쓸한 영화
임순례 감독의 초기작들을 좋아한다. 장편 데뷔작인 <세친구>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특히 좋아한다. 96년작인 <세친구>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대학에 가지 못한 세 청춘들의 쓸쓸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영화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젊은 시절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지방 나이트를 전전하며 사는 밴드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작품이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청춘들의 막막한 현실, 꿈이 꺾인 30대 남자들의 구질구질한 이야기들이지만, 임순례 영화들이 전하는 담담한 위로와 쓸쓸한 감성이 적지 않은 감정적 울림을 준다. 중국영화 중에서 이와 비슷한 정서를 고르라면 6세대를 대표하는 지아장커의 영화들하고 비슷한 것 같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배우들의 연기가 참 좋다. 이얼, 박원상, 황정민, 그리고 류승범의 연기는 펄떡이며 살아있다. 오정혜의 연기도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레 좋다. 그들의 청소년기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하나같이 자연스럽고 인상적이다. 풋풋한 박해일도 물론 그중 하나다. 역시 연출의 힘이고 시나리오의 힘일 것 같다. 한국의 독보적인 여성 감독으로 자리를 굳힌 임순례의 장점은 바로 그런 자연스러움과 인생의 짙은 페이소스를 적재적소에 잘 담아낸다는 것에 있는 것 같다.
어느덧 영화 속 이얼이나 황정민 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은 중년의 관객으로 영화를 다시 보니, 주인공들이 참으로 짠하고 안쓰러워 보인다. 아직은 여러 가지를 시도할 수 있는 힘이 있고 기회가 있는 30대인데, 그들의 현실은 왜 그리 뻑뻑하고 버거운 것인가. 좀 더 뻗어나갈 순 없는 것인가. 옷을 홀딱 벗고 바다를 달리던 소년들은 얼마나 자유롭고 꿈많은 존재였던가. 내가 생각하는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가 남발하는 플래시백인데, 대개 너무나 투박하고 고리타분해서 영화를 촌스럽게 만드는 대표적인 요인이 된다. 그런데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전혀 그렇지 않고 영화를 더욱 풍성하고 생동감있게 만들어준다. 현재의 인물들 못지 않게 아주 잘 살아있다.
박원상과 황정민의 툭탁거리는 상황과 대조적이면서도 공통적으로 정많은 캐릭터는 무척 흥미롭고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뛰어난 연기력이 있었기에 소화 가능했다고 본다. 또한 이얼 특유의 쓸쓸한 분위기는 영화를 더욱 리얼하게 채색한다. 물론 이얼의 첫사랑, 지금은 억척스런 야채장수가 된 오정혜의 슬픈 듯 쓸쓸함도 빼놓을수 없다. 그밖에도 이북사투리 쓰는 나이 많은 아저씨 및 각각의 인물들이 모두 잘 살아있다. 워낙 좋아하는 영화다 보니 주관적인 이야기들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슬프면서 감동적이고 쓸쓸하면서 감미로운 영화가 바로 <와이키키 브라더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