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80년대여
80년대는 대중문화의 황금기였다. 팝음악을 봐도 그렇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유행하며 메가 히트곡들이 쏟아졌고, 수많은 스타들이 탄생했다. 영화도 그러했다. 가령 얼마 전 시리즈의 마지막 편으로 돌아온 <인디아니 존스>가 탄생한 것도 80년대였다. 개인적으로도 80년대에 사춘기 십대를 보내서인지 80년대 영화들을 특히나 더 좋아하고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것 같다.
1982년작 <사관과 신사>는 요컨대 80년대식 낭만과 사랑, 꿈이 가득 담겨있는 청춘영화다. 소년의 눈에는 해군 제복과 군대가 무조건 멋져보였고, 소녀의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신데델라 스토리로도 보였을 것 같다. 지금도 멋진 노신사지만 이때의 리처드 기어는 정말 터프하고 멋진 쾌남이었고, 여주인공 데브라 윙거는 깨물어주고 싶은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멋진 제복과 피끓는 청춘, 앞뒤 재지 않는 사랑, 말 그대로 소년 소녀들에게는 로망이었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잘 짜여진 스토리, 배우들의 멋진 연기, 심혈을 기울인 미장센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명작이 나올 수 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빠질 수 없는 것이 또 음악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80년대 영화들에는 정말 주옥같은 주제곡들이 영화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이 영화 <사관과 신사>에도 엄청난 사랑을 받은 삽입곡이 있는데 바로 <Up Where We Belong>이다. <사관과 신사>가 한국에서 개봉되었던 1983년도엔 아직 꼬마였던 나, 그렇기에 극장에서 보지 못하고 나중에 비디오로 보았다. 그런데 노래는 라디오를 통해 미리 접할 수 있었고 계속 들었고 좋아했다. 얼마나 감미로운 음악이고 영화와도 잘 어울리던가. 잠깐 여담이지만 8, 90년대는 라디오의 전성시대였고, 각 채널마다 영화음악 프로가 많았다. 우리를 감동시켰던 영화음악들이 참으로 많았다. 십대 사춘기 시절 디제이가 영화음악과 함께 영화 이야기를 엮어서 들려주면 듣는 재미가 커서 귀기울여 듣곤 했다.
작년 <탑건 매버릭>이 36년만에 속편으로 돌아와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했는데, 86년작 <탑건>이전에 바로 이 영화 <사관과 신사>가 있었다. 플롯이 비슷한 걸 보면 누가 봐도 <탑건>이 <사관과 신사>를 많이 참고한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고된 훈련, 생도들간의 우정, 운명적인 사랑, 그리고 감미로운 음악까지 닮은 구석이 많다.
인상에 깊이 남은 몇 장면이 있다. 호랑이 교관은 규칙을 어긴 리차드 기어에게 퇴소하라고 압박한다. 퇴소의 위기에 처한 리처드 기어는 끝까지 버티면서 울먹인다. “나는 갈 곳이 없어요!” 이 대사가 가슴을 찡하고 친다. 힘든 훈련 코스에서 낙오할 상황에 놓인 친구를 끝까지 챙기던 장면도 기억에 남고, 뭐니 뭐니해도 마지막 장면이 걸작이다. 가슴 아픈 이별을 이제 받아들이는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열심히 일하는 데브라 윙거, 공장에서 일하는 그녀를 찾아가 번쩍 안아 들고 나오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멋진 장면이었다.
지나간 청춘이 마구마구 그리워지는 날, 중년의 쓸쓸함과 삶의 무게감이 유독 심한 날, 이 영화 <사관과 신사>를 다시 보면 어떨까 싶다. 현실이 버거운 이 시대 청춘들에게도 한번쯤 관람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