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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중년 남자 Feb 08. 2021

중국기행9

낙양을 둘러보고 상하이로

낙양   

  

  정주에서 서쪽으로 1시간 정도 가면 낙양(洛陽)이 나온다. 낙양,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가령 우리도 흔히 쓰는 표현으로 “낙양의 지가를 올렸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낙양은 중국 역대 수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 중 하나다. 무려 9개 왕조의 수도로 그 이름을 높였던 곳이다. 그런 만큼 수많은 문화유적이 그곳에 있다. 

  16년 전인 2005년 여름, 보름간 친구와 중국 중원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다. 산동을 거쳐 하남의 여러 도시들을 돌았는데, 개봉, 정주를 거쳐 낙양에 도착했다. 그때쯤 되니 체력도 바닥나고 한국음식도 그리워졌다. 한국을 떠난 지 한 열흘쯤 되는 시점이었다. 본격적인 낙양 유람에 앞서 한국음식으로 원기를 회복하기로 하고 터미널 근처를 뒤지던 기억이 난다. 내륙 깊숙한 곳은 동부 연안 지역만큼 한국 음식점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낙양 정도라면 먹을 만한 한국음식점이 있을 것 같았다. 빙고, 그때 그렇게 낙양에서 먹은 김치찌개 맛을 잊을 수 없다. 한국인 사장님은 먼 걸음 했다며 서비스를 챙겨주었다.     

 

용문석굴 

    

  낙양의 많은 문화유적들을 압도하는 것은 아마도 용문석굴일 것이다. 거대한 석벽을 깎아 만든 그 수많은 석상, 석굴은 볼수록 불가사의하다. 400년에 걸쳐 만들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그 수고와 정성을 그저 막연히 헤아려 볼 뿐이다. 거대하고 기묘한 자연과 장구한 문화 유적 앞에 섰을 때 우리 인간은 작아진다. 즉 이러한 엄청난 유적 앞에서 우리 자신은 초라해지고 자연스레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그해 뜨거운 여름, 나는 그 거대한 용문석굴을 겨우 초입부만 조금 둘러보고는 지쳐버렸다. 모든 걸 녹여버릴 듯 이글거리는 한여름의 태양빛을 피할 그늘이 제대로 없었다. 얼린 생수통을 몇 통씩 허비해가며 일부만을 겨우 둘러보았다. 아, 그 얼마나 나약한 모습이었나. 멀리 떨어져서 석굴 전체를 조망해보니, 진짜 압도적인 풍경이었다. 거대한 석벽 아래로는 강이 흐르고 있는데, 그 운치 또한 예술이다.

  용문석굴은 산서성 대동의 운강석굴과 쌍벽을 이루는 석굴이다. 북위의 효문제가 대동에서 낙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운강석굴에 이어 이 용문석굴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여러 왕조가 이어지며 400년 동안 계속 작업이 계속되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완성되었다. 그 수많은 불상의 얼굴모습이 다 다를 정도로 정교하고 세밀한 조각술이 감탄을 자아낸다. 그중에서도 최대 볼거리는 역시 용문 최대 석불인 노사나불인데, 여황제 측천무후를 모델로 하였다고 한다.    

         

관림, 백마사     


  삼국지의 영웅 관우의 수급이 묻힌 곳이 낙양에 있다. 중문학을 전공하고 가르치는 나로서는 빠뜨릴 수 없는 곳, 관림(關林)에 대한 인상이 깊다. 의리와 충정의 상징,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고 의연했던 장수이자, 문무를 겸비한 완전한 남자, 그가 바로 관우가 아니던가. 그렇게 관우는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나아가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관우를 무신으로 숭상하는 이들은 중국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관우를 신으로 모시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전국 여러 곳에 관우의 사당이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 동묘가 바로 관우의 사당이다. 같이 간 친구와 삼국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관림을 둘러보았고, 우리도 향을 올리고 잘 되게 해달라고 각자의 소원을 빌었다. 그 일대는 관우가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당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관우와 관련된 기념품도 많았는데 한 가게에서 한국의 조카에게 주려고 나무로 만든 청룡언월도를 하나 샀다. 나중에 상하이 공항에서 배낭에 꽂아 넣은 그 목각 언월도가 문제가 되어 검색대에서 다시 나와 따로 포장해서 다시 짐칸에 싣는 헤프닝이 있었다. ㅎ   

  낙양 여행에서 인상에 남은 또 한 곳이 백마사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중국에 처음으로 세워진 불교 사원이고, 불경과 불상을 백마에 싣고 온 것을 기리기 위해 백마사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 상징성이 있어서 그런지, 우리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보내 온 불교 관련 귀중품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서안으로 가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기차를 타고 상하이로 가기로 했다. 상하이까지는 기차로 20여 시간, 침대칸을 사려고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낙양의 기차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고 그날 당일표는 물론이고 그 다음날 기차표도 구할수 없었다. 에라 그렇다면 비행기를 타고 가자 싶어 역 근처의 여행사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상하이행 기차표를 구할 수 있었다. 저녁 8신가 9시쯤 낙양을 출발한 기차는 다음날 아침에 상하이역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2층 침대의 아래 위에 누워 밤늦게까지 친구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막 본격적으로 시작된 30대, 그땐 이런저런 계획도 참 많았다. ㅎㅎ 중국도 처음, 20시간 기차도 처음인 친구는 색다른 여행을 신기해했고, 기차가 장대한 양자강을 건널 때는 연신 감탄을 하기도 했다. 양자강에 도달했다면 이제 상하이가 멀지 않다는 것, 우리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 상하이 유람에 대해 이런저런 계획을 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상하이에서 박사 유학을 한 나에게 상하이는 마치 제2의 고향처럼 중국에서 가장 익숙하고 친근한 곳, 기차는 덜컹거리며 상하이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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