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문자에 통달한 사람
우리가 흔히 쓰는 속담 중에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는 것이 있다. 이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닐 것이다. 공자는 그만큼 많이 아는 사람이었고, 그중에서도 문자와 문헌에 두루 통달한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주역에도 정통했으니 당시로서는 말 그대로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했던 공자의 여러 주장과 의견들은 비록 현실 정치에서는 제대로 인정받거나 받아들여지지 못했지만, 여러 제후국의 왕들 역시도 공자의 학문적 성취와 높은 경지를 인정하고 그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그리고 만세 사표, 즉 스승으로서의 공자의 위상은 두말하면 잔소리,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궁금하다. 학자, 스승, 지식인으로서의 공자는 어떻게 그 높은 경지에 오른 것일까.
물론 공자 이전에도 중국에는 수많은 귀중한 문헌들, 뛰어난 성현들이 존재했다. 공자는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고 그 흩어져 있는 문헌들을 부지런히 배우고 익혔고,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흡수하여 이후 2500년 중국인, 나아가 동아시아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상체계를 완성하였던 것이다. 공자는 말했다. “나는 날 때부터 저절로 안 사람이 아니다. 옛 것을 좋아하고 부지런히 찾아 배워 알게 된 사람이다” 또한 공자는 말한다. “나는 전달할 뿐이지 창조하지 않는다. 나는 옛 것을 믿고 좋아한다.” 언뜻 공자 같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라면 많은 저술을 남겼을 법 한데, 공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또한 참 흥미롭고 인상적인 부분이다.
자, 그렇다면 공자가 말한 그 옛 것, 또 좋아했다던 옛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공자가 문자에 통달한 이라고 한다면, 분명 그 옛 것을 열심히 찾아 익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자가 편찬, 혹은 기록하거나 연구하여 이름을 남긴 고대 문헌이라면 흔히 6대 고전을 든다. 이 고전의 내용은 물론 공자 이전에 존재했지만 공자의 노력에 의해 보존되고 더욱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 그것은 <서경>, <시경>, <역경>, <예기>, <춘추>, 그리고 <악>이 그것이다. 이중에서 <악>은 유실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공자는 이 같은 고대의 학문을 정리, 편찬, 기록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였고, 그 자신은 문자에 통달한 거인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