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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중년 남자 Mar 18. 2021

중국기행 19

소주, 한산사, 풍교야박

  지난 소주 이야기에서 張繼의 시 <楓橋夜泊>을 살짝 언급했는데, 중문학자로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잠깐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시인의 이름은 좀 생소할지 몰라도 이 <풍교야박>이란 시는 워낙 유명하며 중국을 넘어 우리 한국과 일본에서도 널리 사랑받는 작품이다. 가령 일본에서는 교과서에 실릴만큼 사랑받고 있고, 우리의 판소리나 탈춤 등에서 이 시를 자주 인용한다. 중국 당나라는 시가 문학이 절정으로 치달았던 시대로 흔히 <당시 삼백수>로 그 정수를 뽑을 만큼 기라성같은 문인과 작품들이 즐비하다. <풍교야박>의 시인 장계는 상대적으로 그리 이름난 문인도 아니었고 남긴 작품도 몇 수 안되지만, 이 짧은 시 한편이 천년이상 동아시아를 넘나들며 수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문화적 재생산을 거듭하며 전설이 되었던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이 시를 사랑하여 소주 한산사를 찾는다.     


  <풍교야박>은 과연 어떤 지점에서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걸까. 일단 작품을 살펴보고 이야기해보자.


              月落烏啼霜滿天 

              江楓漁火對愁眠 

              姑蘇城外寒山寺 

              夜半鐘聲到客船


            달 지자 까마귀 울고 찬 서리 가득하고

            강가 단풍나무와 고깃배도 근심 속에 잠 못 이루네

            고소성 밖 한산사의

            깊은 밤 종소리가 뱃전에 이르는 구나.     


  자, 여기서 '풍교'는 소주를 가로지르는 한산사 근처 운하에 있는 다리 이름이고, '야박'이란 밤에 배를 정박하다란 말이니, ‘풍교야박’이란 즉 밤에 풍교에 배를 정박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소주에 가서 운하가 주는 그 특유의 정취를 느끼며 이 시를 음미해보면, 아마 그 맛이 제대로 살아날 것이다. 장계가 이 시를 짓게 된 배경은 대체로 이렇게 전해진다. 과거에 세 번째 낙방한 장계가 집으로 돌아가던 중 이 풍교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다. 자신의 처량한 신세와 객수로 잠 못들고 있을 때, 깊은 밤 한산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듣고 이 시를 짓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또한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예나 지금이나 조정의 부정부패가 많았을 터, 장계는 부패한 나라의 현실과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현실과 절망을 강가의 쓸쓸한 밤 풍경을 차용해 읊은 것인지도 모른다.      


  장계는 이 시 한편으로 유명해졌고, 흔한 다리 중 하나였던 풍교는 단박에 이름을 얻어 중국을 넘어 동아시아 전체로 그 명성을 떨치게 되고, 시에 등장하는 사찰인 한산사도 덩달아 주가를 높이게 된다. 청의 강희제는 이 시를 몹시 사랑해 직접 풍교를 찾았다고 전해진다. 인기는 중국에 그치지 않는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시는 중국을 훌쩍 뛰어넘어 동아시아 전반에 퍼졌다. 서거정, 김시습, 이색 등등 우리의 일급 선비들도 이 풍교야박을 사랑했고 시구를 차용해 작품을 쓰기도 했다. 이것이 한편의 시가 갖는 막강한 문화적 파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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