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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중년 남자 Mar 16. 2021

중국기행 18

동양의 베니스, 소주

  중국 강남지역은 물이 참 많다. 상해, 남경, 항주, 무석 등 강남의 여러 도시에는 크고 넓은 호수와 강이 정말 많다. 소주는 아예 도시 전체가 수로로 연결될 만큼 물의 도시라고 할 수 있으니, 예로부터 동양의 베니스라는 별칭이 있었다. 소주도 내가 살았던 상해에서 가까우니 여러 번 갔었고, 한국에서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이 오면 항주, 남경이랑 묶어서 자주 다녔다. 오늘은 그 중에서 휴가를 내서 찾아온 동갑내기 외사촌과 둘이서 갔던 기억을 좀 풀어보려고 한다.  


  2002년 봄, 유학생활 2년차에 접어들면서 중국 생활도 어느 정도 적응하고 필요한 학점과 수업도 별 무리 없이 잘 듣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하는 설레임은 이제 지나갔고, 논문에 대한 고민과 압박이 슬슬 시작되고 있었다. 외국에서의 유학이란 게 여유롭고 낭만적 일거라고 물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학업은 물론 매끼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걸 혼자서 해나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신체적인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흔들리기 쉬운 멘탈도 잘 관리해야 한다. 그해 봄, 한국에서 외사촌이 휴가차 상하이에 왔다. 나와 동갑이고 회계사로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상하이 푸동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는데 집에서 싸준 밑반찬을 주렁주렁 가지고 왔던 게 기억난다. ㅎ

  사촌은 동갑에다가 인근에 살면서 어렸을 때부터 자주 어울려서 마음이 잘 통했다. 친구, 동료들이 있다지만 어쨌든 외로운 유학생활이었으니 한국에서 놀러온 사촌이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런데 당시 사촌은 감정적으로 좀 힘든 상황이었는데, 사귀던 여자와 헤어져 그 여파가 있었다. 결혼 이야기도 나왔던 만큼 가족들도 걱정하던 때였다. 당시 우리 나이 서른 하나, 한창 연애와 결혼이 중요한 시기였다. 나도 상황이 비슷했는데, 당시 만나던 여자가 있었는데 유학 1년이 되 가던 그 시점, 사이가 점점 삐걱대고 있었다. 아무래도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이런저런 문제가 있었다.      


  자 정신이 복잡하면 몸을 좀 혹사시켜 그걸 좀 잊는 것도 때로 필요하다. 3박4일의 일정으로 온 사촌과 상하이 구석구석, 그리고 소주, 남경을 정신없이 헤매고 다녔다. ㅋ 상하이에서 기차를 타고 소주로 향했다. 1시간 남짓되는 부담 없는 거리다. 소주 관광의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다. 도시 곳곳으로 이어진 운하와 강남 최고의 정원들을 보는 것이다. 운하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기왕이면 배를 한번 타고 돌아보면 더 좋을 것이다. 우리도 배를 타고 유유히 흐르는 운하를 따라갔다. 특히 광제교와 신민교를 지날 때는 그 운치가 정말 빼어나다. 사람들은 물에 기대어 살고 있는데, 고풍스러운 옛 가옥들이 운하를 따라 늘어서 있다. 동양의 베니스, 중국의 베니스라는 별칭에 아주 잘 들어맞는 풍경이다. 그 독특한 정취를 느끼며 배 위에서 사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 순간이 기억난다. 

  운하 관람을 마친 뒤 찾아간 곳은 바로 졸정원, 명나라 때 조성된 정원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만큼 아름다운 정원이다. 강남 정원의 미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물과 기암괴석, 그리고 풀과 꽃들이 어우러져 멋진 시각적 성찬을 선물한다. 누구라도 오면 그 멋스러움과 정취에 빠져들 법 하다. 정원이 워낙 넓고 방대하여 한눈에 다 담을 수가 없다. 내 생각엔 적어도 몇 번 정도는 다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소주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북사탑에도 올랐다. 무려 76미터의 높이로 강남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는 명성이 있다. 이 북사라는 사찰은 오나라 손권이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고 하고, 이 안에 있는 북사탑은 북송시기에 재건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북사탑 7층까지 걸어오르는 것은 상하이 같은 대도시의 초고층 빌딩에 올라가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소주시에서 좀 떨어진 외곽의 한산사에도 들렀다. 위진남북조에 창건된 사찰이고, 당나라의 시인 장계의 <풍교야박>이란 시로 더욱 유명해졌다. 주위의 멋진 정취와 어우러진 명시다.  

      

  우리가 소주에 갔던 그때는 봄이었다. 강남의 봄, 부드럽고 간질 간질대는 느낌을 주는 봄. 이미 낮에는 더위가 느껴지기도 했는데, 여기저기 정신없이 휘몰아치며 다녀서 저녁이면 체력이 바닥났다. 매끼 든든한 식사가 필수였고 90분짜리 전신안마를 3박4일 내내 받았다. ㅎ 이어지는 남경 유람도 정신없이 몰아쳤다. 3박 4일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간 사촌은 귀국 후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상하이에서, 소주에서, 그리고 남경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속내를 주고받던 그때, 지금도 만나면 그 추억을 이야기한다. 그땐 참 젊었고 기쁜 것도 많았고 서운한 것도 많았고 슬픈 것도 많았다.        


소주의 운하를 배경으로, 하얀벽과 검은 기와가 인상적

약간 기울어져 중국의 피사의 사탑이라고 불리는 운암사탑

유람선을 타고 운하를 둘러보면서 

풍교야박으로 유명한 한산사에서 사촌과 

무석 태호에 갔을때 엄청난 규모의 대불상 앞에서

산책가듯 자주 가던 상하이 노신(홍구)공원에서

어느 겨울날 수업을 제끼고 동기와 공청삼림공원에 가서 말타고 놀다 ㅎ

함께 동고동락한 선배와

상하이 인근 수향으로 소풍가서 동료들과

십리양장, 상하이 와이탄 육교에서 한 장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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