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뻔 한 이후 달라진 것들

나는 그 시간 동안 무엇을 보았을까

by 애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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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기사 속 중경상을 입어 생명이 위독한 '임양' 즉, '임지애'가 본인이다.

나는 의식이 없었다.

하루가 지나도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건의 전말이 궁금하신 분들은 바로 앞 글에 있습니다.)


나를 포함한 3명의 아이가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고

그 아이들의 부모들은 모두 병원에서 산 지옥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들은 각자 아이 옆을 떠나지 않았고

나의 어머니는 망부석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살려만 주세요. 이 아이를 돌려주기만 하신다면 욕심부리지 않고 그저 감사히 키우겠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기억에 따르면 아버지들은 잠을 이기지 못하고

병원 복도 소파에 쓰러져 잠들었다가 학교 관계자가 나타났다는 소리만 들리면

벌떡 일어나 노발대발 고래고래 화를 내었다고 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어릴 때 엄마가 해주시던 이때의 이야기를 들으면

엄마의 간절한 마음이 괜히 기분이 좋았는데

아이를 낳은 지금은 그 심정을 도저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나라면 그 상황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지옥 같던 이틀이 지나고 다행히도 세 아이 모두 의식이 돌아왔다.


언제 어떻게 눈을 떴는지, 눈을 떴던 순간 엄마 아빠가 무슨 말을 하셨는지

그런 극적인 기억은 없다.


다만 언젠가부터의 기억이 있고 내 뇌리에 남아있는 것은

거울에 비친 눈의 흰자위가 모두 빨갛게 된 나의 얼굴이었다.


'엄마, 이거 봐, 진짜 외계인 같지? 눈에 흰자가 없어! 다 빨간색이야!'


압력으로 인해 눈의 실핏줄이 다 터져서 그리 된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신기해서 자주 거울을 보았다.


의식을 잃었던 것이 무색하게 딱히 부러지거나 찢어진 곳은 없어서

수술을 하거나 꿰매지도 않았다.


다만 의식을 오래 잃었고

뇌에 산소 공급이 꽤 오래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되어

후유증이 있지나 않을까 며칠 더 입원을 하였다.


불행을 정통으로 맞은 세 아이 중 여자 아이는 나뿐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나머지 한 남자아이와 나는 짝꿍이었다.

우리 둘은 같은 반, 나머지 한 아이는 잘 모르는 아이였다.


여러 검사를 받으러 갈 때마다 나는 짝꿍을 만나는 것이 괜스레 반가웠다.

쭈뼛쭈뼛하던 그 아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심심하던 병원 생활에 괜스레 짝꿍의 병실에 놀러 가면

사람들로부터 선물 받은 로봇 장난감이 가득했다.


비슷한 이유로 내 병실에는 인형이 가득했다.


많은 이웃들이 병문안을 왔다.

선물을 사다 주셨다.


나는 다들 왜 나를 보러 오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나로서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으므로

난 그저 갑자기 학교를 가지 않고

병원에서 매일 TV나 보며 하릴없이 놀고 있는 나날을 보낼 따름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일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입원 생활이 끝이 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어머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백화점으로 가서 아주 멋진 옷을 사주셨다.


스스로 어울린다 생각하기에는 조금 과할 정도로 공주 같은 옷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네가 죽는다 생각했을 때, 좋은 옷 한번 못 입혀줬다는 것이 마음에 너무 걸렸어.'


옷을 사주셨던 이유를 훗날 어머니는 이렇게 고백하셨다.


막 10살이 되던 해에 겪은 이 일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이와 관련하여 겪은 여러 일들을 떠올리자면

나에게 인공호흡을 해주셨던 은인과도 같은 미술 선생님께서

수업시간마다 나를 살리신 무용담을 하신 것이 부끄럽고 창피했다는 어린 기억,

어딜 가든 '네가 그 아이구나.'라며 알아봐 주시는 상황이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는 기억,

그리고


뭔가 어렴풋한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헛헛한 기분이 남아있다.


엄마는 그 사고 이후로 내 영혼이 나갔다가 다른 영혼이 들어온 것은 아닌가

의심하셨다고 했다.


분명 그 사고 전의 나는

하루 종일 책을 보며 어머니 말씀이라면 꺼뻑 죽고 매우 순종적인 아이였는데

그 사고 이후로 책에 딱히 관심을 두지 않으며

부모님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는 주장을 가끔 하셨다.


정말 나는 영혼이 바뀐 것일까?


그때의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위독했던 우리 3명 이외에 그 자리에서 바로 숨을 거둔 아이의

운구차가 초등학교 운동장을 돌고 떠날 때

그 운동장을 쳐다보았던 내가 기억이 난다.


'이건 아니지 않나.

운구차 같은 것을, 초등학생이 타게 되어서는 안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는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


이 거대한 사건에 대한 나의 기억은 매우 흐릿했다.

2022년, 이태원 압사 사고를 보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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