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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애 Dec 02. 2020

문자와 물방울의 만남, '물방울 화가' 김창열

갤러리현대 <The Path>


물방울을 소재로 그림을 그려 ‘물방울 화가’로 잘 알려진 김창열의 개인전 [The Path]가 갤러리현대에서 10월 23일부터 11월 29일까지 열린다. 제주도에 그의 이름이 들어간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이 있는 만큼 유명한 화가지만 작년 KIAF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코엑스에 전시된 작품을 모두 보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전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지쳤을 때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맑고 영롱한 물방울이 구슬처럼 캔버스에 있는 모습이 신기해서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전시가 열린다고 했을 때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전시 타이틀 [The Path]는 ‘길 도(道)’를 뜻하며 ‘사람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 즉 ‘도리(道理)’를 함축한 것이다. 서구권에서 화업을 이룩하였으나 본래의 동양적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김창열의 작품 세계와 삶을 상징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물방울의 지지체로 사용한 문자는 이치와 도리, 문명을 담고 있으며 더 나아가 진리 추구의 ‘길’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문자와 물방울의 만남


1층은 ‘문자와 물방울의 만남’으로 화가가 물방울을 완벽하게 담아낼 ‘지지체’를 찾기 위해 제작 기법을 변주하던 중 물방울이 문자와 결합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한자의 기본 획을 사용하여 문자의 해체를 시도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문자와 물방울의 첫 결합으로 알려진 1975년 <휘가로지>가 기억에 남았다. <휘가로지> 신문 위에 물방울이 맺혀있는 모습은 마치 비 오는 날 유리창에 달라붙은 빗방울 같았다. 


글자가 물에 닿으면 번지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서는 물방울 아래 문자가 얼룩져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했다. 문자는 물방울에 의한 굴절이나 왜곡 또한 없어 보였다. 그래서 표면에 맺혀있는 물방울과 더불어 ‘지지체’로서 문자는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해체> 연작은 흐트러지지도 퍼지지도 않은 물방울이 처음에는 신기했는데, 해체된 획과 구슬처럼 온전한 물방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약간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물방울이 너무나도 완벽한 형태로 캔버스 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캔버스를 기준으로 아래에는 문자가 자리하고 위에는 물방울을 둔 것처럼 물방울은 바탕이 되는 모든 것과 동떨어져 보였다.



수양과 회귀



지하 1층은 ‘수양과 회귀’로 문자가 본격적으로 작품에 등장하며 다양한 형태의 물방울을 <회귀> 연작을 통해 볼 수 있다. 마침내 문자가 물방울과 함께 작품에 자리한 것이다. “물방울과 문자가 겹쳐 있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1층과 다른 모습에 각각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는지 서로 영향을 받는지 궁금해졌다.


“물방울과 문자가 겹쳐 보인다.”라는 말은 캔버스 겉에 있던 물방울이 이제는 안으로 스며들었다는 뜻이며 배경에 존재하던 문자는 물방울만큼 형상을 이루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로 화면을 가득 찬 읽을 수 있는 한자와 그 위에 있는 물방울의 투명성을 들 수 있다.


한자는 끝없이 울리고 끝없이 펼쳐진다.
어린 시절 맨 처음 배운 글자이기 때문에
내게 감회가 깊은 천자문은 물방울의 동반자로서
서로를 받쳐주는 구실을 한다.

- 김창열, 1998




화가가 작품에 옮긴 천자문은 우주와 자연, 인간 삶의 이치 등에 관한 동양사상의 정수를 담은 4자 2구로 된 125편의 고시이다. 동양적 관점에서 해석한 무한한 우주적 상징체계를 이야기하는 천자문으로 화면을 구성했기에 지지체로서 문자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또한, 화가가 조부로부터 천자문을 배웠던 어린 시절로 ‘회귀’하여 문명의 근본과 세상의 이치가 담긴 천자문을 배우던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의미가 담겨있어 문자는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천자문 위에 있는 무수한 물방울을 하나씩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아래 한자의 색을 볼 수 있다. 구슬처럼 온전한 형태의 물방울 아래 있는 한자는 보이지 않지만, 흐트러져 흘러내리는 물방울 아래 있는 한자는 어렴풋하게나마 윤곽이 보인다. 이처럼 물방울이 놓인 부분의 한자는 색이 옅어져서 물방울이 문자에 스며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캔버스는 한자가 담긴 해석 가능한 일종의 텍스트가 되었고, 그 위에서 물방울은 자유롭게 표류한다.”라는 갤러리현대의 설명대로 말이다.



성찰과 확장



마지막으로 2층은 ‘성찰과 확장’으로 <회귀> 연작 중 먹과 한지를 소재로 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몇 겹의 한지를 캔버스에 부착하고 그 위에 천자문을 반복해서 쓰면서 문자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어졌다. 중첩된 문자는 더는 문자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그저 이미지로 남게 된 것이다. 그러나 천자문이 가진 의미는 층층이 쌓인 문자만큼 두터워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물방울은 “‘에고(ego)’의 소멸을 지향하여 그 표현 방법을 찾고 있는” 화가의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전시를 보러 가기 전부터 사전 조사를 했으나 직접 관람하고 느낀 바 그래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본인의 역량 부족도 한 몫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굵직한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 작품 설명에 나란히 쓰여 있는데 눈으로 읽기에도 조금 벅찼다. 


처음 김창열의 작품에 이끌렸던 것은 물방울뿐이었는데 사설을 덧붙여가며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려운 단어를 붙잡고 해석하기보다 느낀 것을 위주로 최대한 쉽게 풀어내려 했다. 그 때문에 문자와 물방울 사이의 간격이 느슨해지고 그 의미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그래도 전시를 보러 갈 이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본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는 만큼 감상을 적어보았다.




참고 자료

갤러리현대 홈페이지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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