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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쟤쟤 May 01. 2023

인생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산크리스토발(1) - 내 여행 통틀어 가장 아팠던 순간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san cristobal de las casas, 이하 산크리스토발)는 '배낭여행자의 무덤'으로 불릴 정도로 살기 좋은 곳이다. 볼 건 없지만 저렴한 물가와 아름다운 도시 경관으로 인해 산크리스토발에서 몇 달 동안 눌러앉은 사람들도 많으며, 멕시코를 다녀온 내 지인들이 한 목소리로 추천해 준 곳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는 산크리스토발에 가기 전 할 거리를 생각하며 꿈에 부풀어 있었다. 5박 동안 머무는 산크리스토발에서는 혼자 여유를 즐기며 쉬기로 했기에, 가면 영상 편집도 하고 글도 쓰고 맛집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뜻대로 되지는 않는 법. 이전에 언급했듯이 멕시코 여행에서 돈을 써서도 피할 수 없었던 사건이 2가지 있었고, 나머지 한 가지 사건은 산크리스토발에서 발생한다.


D+15


동행인 수빈이와 헤어진 다음날, 와하까에서 산크리스토발로 향하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났다. 산크리스토발은 멕시코 중부의 치아파스(chiapas) 지방에 위치한 도시로, 나름 멕시코 중부인 와하까에서 야간버스로 12시간이 걸릴 정도로 산크리스토발로 향하는 길은 험난하다. 게다가 산크리스토발에 갔던 후기들에서 12시간 동안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가기 때문에 고생했다는 말을 들어 이미 겁먹은 상태. 나는 이번 여행에서 어지간한 건 돈으로 해결하고자 마음먹었고, 과감하게 국내선 항공권을 끊었다.


*와하까~산크리스토발을 비행기로 이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동경로 및 경비 소개

- 와하까-와하까 공항: 택시 / 20분 / 250페소(새벽이동이라 요금이 비쌌다.)

- 와하까 공항-툭스툴라(tuxtula aeropeurto) 공항: 비행기 / 6시간(경유 3시간 포함) / 17만원

- 툭스툴라 공항-산크리스토발 ADO 버스터미널: 콜렉티보 / 1시간 반 / 요금 200페소(아닐 수도 있다.)

- 산크리스토발 ADO 버스터미널-센트로: 택시 / 10분 / 30~40페소


버스로 가면 한 방에 ADO 버스터미널로 도착하는 걸 감안할 때, 가성비 좋은 코스는 아니다. 그래도 비행기 경유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이동시간은 5시간 이내이고, 멀미도 하지 않아 버스에 비해 쾌적하게 올 수 있다. 자금여력이 있고 걱정이 많은 타입이라면 추천한다.


와하까-산 크리스토발 구간은 내 멕시코 여행 중 3번째로 힘든 구간이었다. 2번째는 과나후아토-똘란똥꼬였고, 1번째는 산 크리스토발-바깔라르이다.


이동하는 첫날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전날 숙소가 너무 더워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으며, 비행기 이동이긴 하나 새벽 3시부터 출발하는 강행군이었기 때문이다. 오후 1시에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후 지친 나는 아무 택시나 잡았고, 택시기사가 80페소로 2.5배 바가지를 씌웠으나 실랑이하기 힘들었던 나는 그냥 80페소를 내고 택시를 타 숙소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숙소는 나한테 과분할 정도로 좋았다. 나는 이전 여행동안 가성비 숙소에서 잤기 때문에(사실 말이 가성비이지 멕시코에서는 2인기준 1박 5만원이면 정말 좋은 숙소에서 잘 수 있다), 이번 숙소는 1박 80,000원의 거금을 들여 독채로 잡았다. 숙소는 무려 2층이었고, 현대식 주방과 정원까지 딸려있는 곳이었으며, 센트로까지 10분밖에 안 걸리는 곳이었다.


에어비앤비로 잡은 산크리스토발 숙소. 너무 좋아 다음번에 온다면 여기에 머물 것이다.




숙소를 보고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나는 한국인이 공인하는 새우타코 맛집 Tacos y Cocteles El Bony에 갔다. 새우타코는 3피스에 90페소로, 지금까지 여행 다닌 곳들 중 가장 저렴한 물가를 자랑했다. 그렇게 나는 한국인 픽 새우타코와 콜라를 시켰고, 단돈 8천원에 배부를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어김없이 공짜로 주는 또르띠야와 살사(왼쪽), 그리고 주문한 새우타코(오른쪽). 새우튀김과 아보카도가 들어간게 핵심.


그리고 동네거리를 구경하며 석양을 보기 위해 산크리스토발에서 높은 곳에 위치한 과달루페 성당으로 향했고, 성당 계단 중턱에 앉아 노을을 기다렸다. 그렇게 본 노을은 이국적인 느낌은 아니었지만, 마을의 평화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노을이었다.


과달루페 성당 계단에서 바라보는 노을의 모습



D+16~18


둘째 날 아침. 이날 아침부터 속이 메스껍기 시작했다. 원래 소화기관이 약했기 때문에 '또 시작이군'이라 생각하며 한국에서 챙겨 온 약을 먹고 관광에 나섰으나, 갑자기 하늘이 노랗게 보여서 오후 1시에 숙소로 와서 4시간 동안 낮잠을 취했다.


그렇게 저녁즈음 되니 좀 나아졌고, 점심을 굶은 나는 저녁만은 양은 적지만 비싼 곳에서 먹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센트로 근처의 태국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서 노트북으로 영상을 편집하며 먹은 태국음식은 미묘하게 내 입맛에 안 맞았지만, 분위기에 취해 나름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냈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미친 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이름모를 태국식당에서 먹은 이름모를 해물음식. 이걸 먹은 날 저녁부터 미친듯이 아팠다


산크리스토발에서의 셋째 날과 넷째 날은 내 기억에 거의 없는데, 둘째 날 태국음식을 먹은 이후로 엄청나게 아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산크리스토발은 수질이 안 좋기로 유명해서 산크리스토발에 방문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물갈이로 고생한다고 한다. 이후 세노떼 투어에서 만난 친구 말로는, 코카콜라가 산크리스토발 근처 수원지를 점유해 정작 주민들은 수질이 안 좋은 수원지를 사용 중이라고 한다(참고로 멕시코는 코카콜라 소비량 1위 국가다). 그래서 그 친구들은 산크리스토발에서 지낼 때 외식은 절대 안 하고 민간요법으로 파파야 씨앗을 계속 씹어먹었다고 한다. 


아무튼 나는 물갈이 증상은 아니었으나 이전까지 힘든 일정으로 여행을 다닌 탓에 몸살기운까지 겹쳐서 왔고, 나중에는 탈수증상이 오기까지 했다. 야심 차게 계획까지 세워 온 산크리스토발에서 아프니 처음에는 계획대로 안 되어서 짜증 났지만, 나중에는 짜증 낼 힘도 없이 관성적으로 약을 먹고 자는 걸 반복하며 더 나아지길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있은지 3일째, 어지럼증이 조금씩 사라지고 정신이 좀 돌아왔다. 동행이 없을 때 호스텔이 아닌 독채숙소를 예약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몸이 좀 괜찮아져서 숙소 1층 테이블에서 작업을 하다가 4시쯤 산책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숙소 테이블 1층에서 나르코스를 보다가(왼쪽) 공교롭게 발견한 마리화나 액자. 참고로 산크리스토발 근처에 마리화나 재배지가 있다고 한다.


산크리스토발의 골목은 다른 멕시코 도시들과 비슷하게 형형색들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타 관광지 대비 인구밀도가 낮아 시골의 여유로움이 돋보인다는 점. 동양인인 나를 보고 흥미롭게 말을 걸고 도움을 요청하면 자기 일인 듯이 도와줬던 사람들, 노천카페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관광객들과 중간중간 길가에 보이던 버스킹들까지, 아픈 기억이 더 많았던 산크리스토발이지만 마을이 자아내는 여유로운 분위기로 인해 산크리에 대한 기억이 나쁘지만은 않다.


산크리스토발 센트로(1)와 골목골목들(2,3). 골목에서 마주친 멋진 벽화와 그 앞에 있는 올드카(4)


그렇게 한 카페에 앉아 휴식을 취하다 센트로 광장에 열린 야시장을 구경했다. 가격은 내가 지금까지 다녔던 그 어느 멕시코 관광지보다 저렴해서 흥정을 하기 미안했을 정도. 다만, 3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쇼핑은 내일로 미룬 후 숙소로 돌아와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산크리스토발의 야시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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