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하까(2) - 와하까에서 밤문화 즐기기
웰컴 투 와하까: 와하까(1) - 멕시코의 전주, 와하까
와하까는 멕시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는 아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도시이다. 곳곳에 남아있는 멕시코의 전통문화, 친절한 사람들, 저렴한 물가, 아름다운 자연경관 등 매력적인 요소가 많으나 그것 때문만은 아닌데,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 2가지를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D+12
멋진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식사를 마친 후(이전 편 참고), 우리는 숙소 근처 공원에서 사람 구경을 하다가 아까 식당에서 직원이 추천해 준 메스깔(mezcal) 바에 가기 위해 나섰다.
멕시코 술 하면 가장 처음으로 떠오르는 건 데낄라(Dequilla)이지만, 사실 데낄라의 원조는 메스깔이다. 메스깔은 선인장인 아가베(agave)로 만든 증류주로, 데낄라와 다르게 아가베를 훈연해서 만들기 때문에 스모키한 향이 나는 게 특징이다. 그중 와하까는 메스깔의 대표적인 생산지로, 메스깔 생산량의 90%는 와하까에서 생산되고 있다.
그렇게 도착한 메스깔 바는 La Cueva Oaxaca로, 메스깔 테이스팅 메뉴가 있는 곳이었다. 테이스팅 메뉴는 총 4개가 있었고, 이 중 우리는 와하까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 Los Salvajes와 초콜릿을 시켰다. 금액은 434페소(3만 원) 정도로 우리나라 바에서는 누릴 수 없는 혜자구성이다.
그렇게 3가지의 메스깔을 맛봤고, 나는 2번째로 먹었던 훈제향이 약간 진하게 나는 메스깔이 끌렸다. "큰일 났다. 난 술찔이인데." 내 스타일인 메스깔 한 입에 초콜릿을 먹으며 홀짝홀짝하니, 어느새 취기가 오르고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이 날은 둘 다 3차까지 가기로 다짐한 날이었고, 우리는 맥주 바에서 시간을 죽이다가 와하까에서 가장 후기가 많았던 클럽 Txalaparta로 갔다. 아까 먹은 메스깔과 맥주로 인해 약간 졸음이 몰려왔으나, 나는 11시에 공연을 한다는 말을 듣고 잠을 깨기 위해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리 멕시코 사람들이 하루를 늦게 시작하고 늦게 끝낸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너무 없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던 와중 2층으로 가던 계단을 발견했고, 2층 계단을 올라가 보니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발견했다. 내려오자마자 수빈이한테 2층으로 가자고 했고, 우리는 2층으로 향했다.
2층은 사람이 너무 많았고 거기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우리는 거의 이방인이나 다름없었다. '약간 노잼이니 술이나 마셔야겠다.'라고 생각하며 Dos equis를 홀짝이던 중 수빈이가 어떤 사람과 얘기하고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오늘은 그분 생일이었고, 자기 테이블로 나중에 놀러 오라고 했다고. 그때만 해도 맨 정신이었던 나는 뻘쭘한 분위기를 견디기 위해 빠르게 술을 마셨고, 가성비가 좋은 내 몸답게(= 술이 약하다는 뜻) 금방 술에 취했다.
그렇게 그 친구 테이블에 가서 함성을 지르고 알지도 못하는 스페인어로 손짓발짓하며 대화를 하다 보니 주변에서도 나에게 인사를 해왔다. 멕시코에서는 희귀한 동양인인데다가 병나발을 불고 있으니 신기했던 모양. 두 명 다 영어를 할 줄 알아서 영어로 수다를 떨다 보니 옆에 다른 사람들이 찾아왔고, 우리는 한 데 모여 신나게 술을 마시며 춤을 췄다.
그러다 한 노래가 나왔는데, 이 노래가 뭔지 몰랐던 나는 당연히 바운스 시동을 걸고 있던 와중 같이 놀았던 동갑내기 와하까 친구가 함께 살사를 추자고 했다.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당연히 손을 잡고 헛발짓을 했으나, 로컬 친구의 발을 따라가며 스텝을 밟으니 곧잘 따라 할 수 있었다. 사람들 틈바구니 속 몇 바퀴 턴을 돌면서 살사를 추니 너무나 흥겨웠고, 내가 지금까지 여행에서 비어있던 어떤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 '역시 여행은 찐 로컬문화도 한 번 누려야지!'
그렇게 춤을 추고, 와하까에서 처음으로 봤던 한국인분과 프랑스 친구들, 내 이름이 블랙핑크 제니와 똑같다며 다음날에 우아뚤꼬(Huatulco)에 가자는 친구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술찔이인 나는 점차 지치기 시작했고, 새벽 1시가 넘자 한계에 부딪혀 집에 갈 것을 다짐했다.
그렇게 1층에 내려오니, 2시간 전만 해도 텅텅 비어있었던 곳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인산인해 속을 나가려던 중 한 아저씨(사실 아저씨인지 오빠인지 모르겠다.)가 나에게 살사를 출 것을 권했고, 지쳤지만 술 취해있던 나는 춤신청에 응했다. 그리고 스텝을 밟던 도중, 내가 '턴(turn) 돌고 싶으니까 실컷 돌려달라'라고 했고, 그때부터 노래가 끝날 때까지 그 아저씨는 계속 턴을 돌려줬다. 슬쩍 옆을 보니 수빈이도 다른 사람과 턴을 돌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나는 마음 놓고 춤을 출 수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살사를 추고 집에 도착하니 새벽 2시였고, 파릇파릇한 대학생 수빈이는 해장을 하겠다며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다. 물론 나는 라면은 먹지도 않은 채 잠들었다.
와하까에서 보냈던 이 날 밤은 다른 나라의 도시들에서 내가 보냈던 밤과 물질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었으나, 이 날 나는 멕시코 친구들의 친절함과 그 바이브에 흠뻑 빠졌고, 스페인어를 배우겠노라 결심을 처음으로 했다. 그날 밤 처음 만난 친구가 나에게 스페인어를 꼭 배우라고 말했을 때, 나는
"Yo travajo mucho!(의역: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
라고 답했으나, 정작 한국에 와 일을 해야 하는 지금은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스페인어를 배우겠노라 다짐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