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하까(3) - 창문은 없지만 사이키조명이 있는 버스와의 12시간 투어
웰컴 투 와하까: 와하까(1) - 멕시코의 전주, 와하까
로컬 친구들과 클럽에서 살사를 추며: 와하까(2) - 와하까에서 밤문화 즐기기
이전 편에서 소개했듯이 와하까에서 잊을 수 없었던 기억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와하까 클럽에서 로컬 친구들과 살사를 췄던 것이라면, 나머지 하나는 그 다음날 진행한 이에르베 델 아구아(Hierve del agua) 투어이다. 이에르베 델 아구아는 직역하면 '끓는 물 폭포'로 해외여행객뿐만 아니라 멕시코 로컬들도 관광하러 올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이에르베 델 아구아 투어는 압도적인 경관과 별개로 나에게는 너무나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왔는데, 그날 투어에서 찐 메히꼬 바이브(멕시코는 영어식 발음이고 스페인어로는 메히꼬라고 발음한다)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D+13
전날 클럽에서 새벽까지 춤춰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고생스러웠다. 그럼에도 이 날은 와하까 여행의 하이라이트 이에르베 델 아구아 투어였기에 포기할 수 없었고, 우리는 짐을 빠르게 챙겨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소깔로 광장으로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어제 먹은 술이 올라왔다. 속은 부대꼈으나 이 상태로 버스를 타면 불상사가 일어날 듯해 급히 해장푸드를 찾았다. 그러다 발견한 가판대에서 멕시코의 아침식사인 타말(Tamal)을 팔고 있었다. 타말은 옥수수 가루에 닭고기, 고추 등을 섞어서 반죽한 다음 살사 소스를 발라 옥수수 껍질이나 바나나 잎에 싸서 쪄내는 음식이다. 포장주문을 하니 빵 사이에 껴서 주더라. 먹어보니 고로케 느낌이어서 맛있게 잘 먹었다.
속은 괜찮아졌지만 수면부족이었던 우리는 버스에서 한 숨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버스를 애타게 찾았다. 그리고 우리가 탈 버스를 찾은 후 눈을 의심했다. 내가 생각했던 봉고차 비주얼이 아닌, 만화에서나 볼 법한 비주얼의 버스였다. 버스가 예뻐서 조금 흥이 났지만, 정작 자리에 앉고 당황했다. 좌석에는 등받이가 없었으며, 창문이 달려있지 않았다. 철저히 비주얼에 치중한 모습에 불평보다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투어는 시작했고, 20분쯤 달려가니 나온 첫 번째 장소는 엘 뚤레(El tule)라는 나무였다. 나무를 굳이 돈 내고 봐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엘 뚤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대략 2,000여 년 넘게 생존한 나무이기에 버스에서 쉬지 않고 한 번쯤 봐주기로 했다. 실제로 보니 그 크기에 무척이나 놀랐다. 가끔 지브리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엄청 오래된 나무가 등장하곤 했는데, 여기에서 따온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다음 직물 공장을 살짝 구경하고, 미틀라(mitla)라는 유적지에 갔다. 미틀라에 대해서는 설명할게 거의 없는데, 이 당시 우리는 너무나도 지쳐서 미틀라 유적지를 관광하지 않고 근처 아이스크림집에서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유적지 보는 걸 좋아하지만, 이 때는.. 힘들었다.) 알고 보니 여기는 아이스크림 맛집이었는데, 만약 패키지 투어로 미틀라에 간다면 여기 들려서 견과류 맛을 먹길 바란다.
그다음 순서로는 패키지 투어에 으레 껴있는, 전형적인 '구매 유도' 코스인 메스깔 투어를 진행했다. 메스깔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어제 먹은 술이 올라올 것 같았지만, 의외로 조주 방식이 신기해서 흥미롭게 설명을 들었다. 메스깔은 훈연 작업을 거치기 때문에 스모키 한 향이 나는데, 실제로 그 과정을 지켜보니 좀 신기했달까. 다만 맷돌 같은 커다란 돌을 굴리고 있었던 말이 너무 불쌍했다.
나는 점심도 안 먹었지만 메스깔을 건네는 직원의 손을 무시하기가 그래 한 잔 했다. '어제도 음주했는데 오늘도라니'같은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한 잔 했고, 생각보다 맛이 좋아 몇 잔 더 마셨다. 우리 옆에 있던 관광객도 언제 점심을 먹을지 모르겠다며 불평을 하면서도 메스깔을 계속 마시고 있었다.
이에르베 델 아구아는 도대체 언제 가는 것일까 궁금했지만, 점심식사는 못 참기 때문에 메스깔을 마신 후 우리의 통통버스는 점심식사 장소로 향했다. 음식점은 뷔페식이었는데, 퀄리티는 별로인 듯했으나 가격이 180페소나 했다. 가이드 커미션이 껴있는 가격 같다는 생각을 하며 빵으로 점심을 대충 때우고 식당에서 유튜브를 보며 기다렸다.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우리는 이에르베 델 아구아로 향했고, 약 50분 정도 가서 도착했다. 창문이 없는 통통버스로 50분을 가며 모래바람을 실컷 맞았기 때문에, 도착했을 당시 나는 기진맥진 상태였지만 마지막 힘을 짜내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주차장에서 10분 정도 가니 다른 세상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갑자기 없던 힘이 샘솟았다. 마침 가이드분이 밑으로 내려가면 끝내주는 절벽을 볼 수 있다고 했고, 우리는 20분 정도 밑으로 내려가서 종유석 같은 절벽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에르베 델 아구아의 천연 수영장으로 향했고, 약 20분 정도를 걸어가 도착하니 또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여러 산들의 능선이 앞에 늘어져 있었고, 바로 앞에는 터키의 파묵칼레와 비슷한 물웅덩이들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호텔의 인피니티풀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고, 와하까의 하이라이트 다운 모습이었다.
우리는 남은 자유시간에 수영장 한쪽에 자리를 잡아 발을 담근 채로 돌바닥에 누웠다. 누워있으니 마치 닿을듯했고, 나는 그렇게 구름구경을 하며 남은 자유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이에르베 델 아구아 투어가 끝났고, 다시 와하까로 향했다. 비록 창문이 없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생생하게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산간지대 같으면서도, 앞에 펼쳐져 있는 포도밭과 닿을 듯한 하늘까지. 오늘의 강행군을 좋은 마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 법한 풍경이었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투어 가이드가 사람들에게 메스깔을 돌리고 있었고, 앞자리에 있던 승객이 결혼기념일로 놀러 왔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환호를 했고, 멕시코 사람답게 전혀 쑥스러운 기색 없이 답인사를 하고 있던 걸 구경하던 와중, 갑자기 버스에 조명이 켜졌고 가이드분이 노래를 틀기 시작했다. 자려고 했는데, 망했다.
그리고 갑자기 사람들은 노래를 하기 시작했고, 밤이 어둑어둑해질수록 조명은 더 밝아졌고 흥은 점점 더 물이 올랐다. 버스에 창문은 없고 조명은 있다는 사실이 황당했지만, 강철체력 멕시코 사람들의 행복하면서도 흥겨운 바이브에 나도 감화되어 어느새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투어는 예상 도착시간보다 1시간 늦은 저녁 8시에 끝났다. 우리와 투어를 함께한 멕시코 사람들은 와하까의 저녁 행사를 보기 위해 소깔로 광장으로 향했으나 우리는 너무나도 지쳐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컵라면과 햇반을 먹은 채 잠에 들었다.
이 날 멕시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현재를 즐길 줄 아는 멕시코 사람들의 바이브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남들이 보기에 성공가도를 걸어왔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극도로 심했고, 왜 한국은 노래 <네모의 꿈>처럼 항상 정해진 틀을 다양한 사람들에게 요구할까란 생각을 하던 때였기에, 여행 도중 멕시코 사람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 볼수록 혼란스러웠던 내 마음이 정리되었다.
통통버스에서 메히꼬 바이브를 몸소 경험하며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그 때부터 어떻게 살아야 남들의 시선 속에서 내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