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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쟤쟤 May 03. 2023

다시 바깔라르에 온다면, 가족과 함께

바깔라르 - '물멍'하기 좋은 멕시코 시골 마을




호주 교환학생 시절, 학생치고는 큰돈을 지출하며 뉴질랜드 남섬으로 여행을 갔던 적이 있다. 보통 뉴질랜드는 북섬과 남섬을 같이 가지만 그 당시 나는 돈도 없고 운전면허도 없었기에 남섬만 한 바퀴 도는 여행일정이었으며, 그래서 한국사람들이 보통 입국하는 오클랜드가 아닌 퀸스타운(Queenstown)으로 입국했다. 퀸스타운 공항에 착륙하며 친구가 했던 말이 있다.


"여기는 지금 오기보다는 나중에 엄마랑 같이 왔어야 하는 곳이네."


나는 친구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우유니 사막처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절경인 곳도, 포르투처럼 살기 좋은 곳도, 발리처럼 드러누워 쉬기에 좋은 곳도 있듯이, 가끔 혼자 있기에는 아까워 가족을 데리고 오고 싶은 여행지가 있다.  


2015년 12월에 여행갔던 퀸스타운의 호수와 테카포 호수.


3박 4일 간 바깔라르(Bacalar)를 여행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물멍'하는 데에 썼고, 거진 8년 만에 가족과 함께 오고 싶은 여행지로 자리매김했다.




D+20


<서진이네>에 나오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유명해진 바깔라르. 바깔라르는 멕시코 남동쪽 유카탄(Yucatan) 반도에 있는 조그마한 호수마을이다. 유카탄 반도에는 칸쿤-플라야 델 카르멘-툴룸 등 휴양지로 유명한 곳들이 해안가를 따라 줄지어 있고, 바깔라르는 그보다는 더 남쪽에 위치해 있다. 지도로 보기에는 나름 가까워 보이나 칸쿤에서 바깔라르까지는 약 4시간 40분이 소요될 정도로 외진 곳에 있다.


하지만, 바깔라르의 물색을 검색해 보고 나는 과감하게 바깔라르에 3박을 투자했다. 너무 해변 휴양지 같은 느낌은 나지 않으면서도 물멍하기 좋을 것 같은 느낌이 섰기 때문이다. 그렇게 산크리스토발에서 5박을 보낸 후, 바깔라르로 이동하기 위해 오전에 길을 나섰다. 바깔라르로 이동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는데, (1) ADO버스를 타고 16시간 가기 (2) 산크리스토발-체투말 공항에서 1시간 ADO버스를 타고 가기 (3) 산크리스토발-칸쿤 공항에서 5시간 30분 ADO 버스를 타고 가기가 있고 이 중 난 3번을 선택했다. 


그리고 말하지만, 3번은 정말 좋지 않은 선택지이니 1번, 여유가 있는 사람은 멕시코시티 경유를 해야 하지만 2번을 추천한다. 칸쿤공항에서 바깔라르로 가는 직항버스가 없고, 칸쿤-바깔라르 구간 해안도로가 상당히 험하기 때문에 비추한다.


* 3번 루트를 이용하지 말라고 적어보는 3번 루트의 이동경로 및 경비

- 산크리스토발-툭스툴라 공항: ADO버스 / 1시간 30분 / 220페소

- 툭스툴라 공항-칸쿤 공항: 비행기(직항) / 1시간 40분 /17만 원

- 칸쿤 공항-플라야 델 카르멘: ADO버스 / 40분 / 240페소

- 플라야 델 카르멘-바깔라르: ADO버스 / 4시간 40분 / 300~400페소 (참고로 플라야는 ADO터미널이 2개다. 잘못 티켓을 끊으면 나처럼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


이번 멕시코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산크리스토발-바깔라르 구간


나름 괜찮아지긴 했으나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기에 컨디션은 아직 안 좋았고, 간헐적으로 메스꺼움이 올라왔기 때문에 환승이 많은 장기간 이동이 너무나 고역이었다. 게다가 이 시기는 멕시코의 부활절 연휴(Semana Santa) 기간이었기에 저녁 7시에 칸쿤에 도착했을 무렵, 공항은 인산인해였다. 그렇게 공항에서 버스를 탔고,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환승을 하기 위해 티켓을 샀으나 터미널이 달라 습한 거리를 캐리어를 끌고 이동해야 했으며, 버스를 타고 가는 마지막 4시간 구간 때는 내려서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ADO 버스를 기다리며 남긴 인스타 스토리


그렇게 나는 역대급 컨디션으로 역대급 힘든 이동구간을 완주했고, 새벽 4시에 숙소에 겨우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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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에 잠들었지만 아침형 인간답게 아침 8시에 일어났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았고, 드디어 내륙지방에서 해안지방으로 왔다는 설렘으로 인해 기력이 생겼다. 그렇게 멕시코 케레타로에서 교환학생하는 동행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우리는 아침을 먹으로 숙소를 나섰다.


바깔라르는 20분이면 동네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작은 동네이며, 바깔라르 주민보다 서양인 배낭여행객을 보기 더 쉬운 관광지이다. 나는 맛있는 걸 먹지 않으면 매우 화가 날 정도로 굶주린 상태였고(그 전날 감자칩 하나로 10시간 이동을 견뎠다) 새우타코로 유명한 식당인 Navieros Bacalar로 갔다. 여기에서 새우타코와 새우퀘사디아를 시켰는데, 여기서 먹은 새우퀘사디아가 나의 멕시코 인생맛집 Top3 안에 드니 바깔라르에 간다면 꼭 가보길 권한다. (참고로 나머지 두 곳은 멕시코시티푸에블라에 있다.)


그리고 드디어 그리고 그리던 호수 구경을 하기 위해 나갔다. 참고로 바깔라르 호수 주변 핵심 스팟 중 몇 곳은 사유지라 유료로 입장해야 하며, 무료로 개방된 호숫가도 있다. 우리가 간 곳은 입장료 30페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사유지였고, 들어가 보니 마치 유원지처럼 가족단위 손님이 많았다. 신기하게도 물색이 구역마다 달랐는데, 어떤 구역은 에메랄드 색이었다가 갑자기 짙푸른 색 구역으로 보이는 등 바다에서는 볼 수 없는 물색깔이었다. 알고 보니 수심이 급격하게 깊어져서 마치 경계선처럼 물색깔에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가장 깊은 곳은 100m까지도 간다고 한다.


유원지같았던 바깔라르 호수


그렇게 구경을 하다가, 숙소에서 낮잠을 자다 오후 4시쯤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번엔 북쪽이 아니라 센트로 남쪽에 있는 호숫가(Balneario Municipal El Aserradero)로 향했다. 약간 위태로워 보이는 데크길을 걸어가면 짚으로 지어진 정자가 있었고, 정자에는 호수를 보며 책을 읽는 사람과 음악을 듣는 사람, 수영하고 있는 사람이 어우러져 있었다. 아까는 가족단위 관광객이 많아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졌으나, 이곳은 서로가 서로를 신경 쓰지 않는 게 훨씬 내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동행친구와 함께 한국인의 필수코스인 '인생샷 남기기'를 끝낸 후, 신발을 벗고 정자 가장자리에 앉아 바다 같은 호수를 바라보았다. 바다색과는 다른 오묘한 색을 가진 호수, 해변 휴양지 느낌과는 결이 다른 시골 같은 분위기, 호수 근처에서 책을 읽으며 '물멍'을 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 등 해변 휴양지와는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8년 전에 갔던 뉴질랜드의 퀸스타운과 겹쳐 보였다.


그렇게 호수와 사람구경을 하고 시시각각 움직이는 구름을 관찰하니 시간이 훅훅 지나갔다. 


평화로운 바깔라르 호수(왼쪽) 내가 바깔라르에서 구입해 나머지 일정동안 잘 쓰고다닌 모자


그러다 어느덧 저녁 시간이 다가왔고, 낮잠을 자느라 식사를 못했던 우리는 호수 바로 앞에 위치한 해산물 식당인 Kai Pez에 가 식사를 하기로 했다. 산크리스토발에서 식사를 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번에는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조금' 먹기로 다짐했고, 우리는 문어 다리 구이와 해산물탕을 시켰다. 음식은 맛있었으나, 더 맛있었던 건 또르띠야와 함께 먹었던 소스였다.(참고로 식당마다 살사소스맛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해 가며 먹는 맛이 있다.)


Kai Pez에서 시킨 음식들. 뷰맛집 치고 맛이 괜찮으나 가격은 700페소로 비싼 축에 속한다.


음식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니, 우리가 기다렸던 일몰시간이 다가왔고,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식당옆에 있는 정자로 향했다. 마침 정자 뒤로 석양이 지고 있었는데, 한국이나 동남아에서 봤던 석양은 수채화로 붉게 물들어있는 모습이라면 바깔라르의 석양은 유화로 분홍빛이 물들어 있는 느낌이었다


해 지는 걸 구경하려고 정자에 앉으니, 정자 앞 호숫가에는 단체로 온듯한 멕시코 대가족이 헤엄을 치고 있었고, 우리 옆에 있는 멕시코 친구들은 블루투스 스피커로 노래를 틀어놓고 있었다. 헤엄을 치며 깔깔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리고 스피커로 들려오는 이름 모를 노래를 들으며 석양을 한참 보고 있었다.


Kai Pez 근처 호숫가의 모습. 둥글게 헤엄치고 있는 가족의 모습이 묘하게 하늘과 어우러져서 사진을 찍었다.


바깔라르는 칸쿤이나 플라야 델 카르멘, 툴룸처럼 할만한 액티비티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바다로 착각할 만큼 넓은 호수, 시골 특유의 한적한 느낌, 바삐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앉아서 멍 때리거나 일행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기에 좋은 분위기를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바깔라르에 오기까지 매우 험난했지만, 다음에 가족과 멕시코에 온다면 바깔라르를 소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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