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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쟤쟤 May 05. 2023

래퍼 택시기사와 함께 한 세노테 투어

바야돌리드 - 동굴 속 천연 수영장 세노떼(Cenote) 투어




멕시코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경관을 뽑자면 세노테(Cenote)가 있다. 세노테는 석회암층 지반이 침식작용으로 인해 무너져 동굴이 생기고 그 안에 지하하천이 들어가 수영장처럼 된 지형을 뜻하며, 유카탄 반도에 7천여 개가 넘게 있다고 한다. 오묘하고 성스러워 보이는 생김새 때문에, 고대 마야문명에서는 수자원으로 쓰는 것뿐만 아니라 신성시해서 몇몇 세노테에서는 마야제단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오늘날에도 세노테가 유카탄 지역에서 계속 발견되고 있는 중이며 자기 땅에 세노테가 나타나면, 인근 지역의 다이빙샵에 연락을 해 베테랑 다이버들이 세노테 탐방을 떠난다고 한다.


세노테는 크게는 동굴형개방형 세노테로 나뉘는데, 동굴형 세노테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동굴지형에서 수영을 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고, 개방형 세노테는 동굴형과 다르게 빛이 세노테까지 들어오기 때문에 스노클링 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준개방형 세노테인 그랑(Gran) 세노테와 동굴형 세노테인 옥스만(Oxman) 세노테


나는 멕시코 여행을 하며 세노테 택시투어를 하기 위해 미리 동행을 구해놓은 상태였고, 그 당시 플라야 델 카르멘에 머물며 인근 세노테에 갈 생각이었던 나는 동행친구가 보여준 바야돌리드 세노테 사진을 보고 목적지를 수정했다.


D+27


플라야 델 카르멘은 셀하에 들린 다음날에 도착한 곳이만, 동행친구와 2일간 올인클루시브 호텔에 머물었기 때문에 이제야 본격적으로 플라야 델 카르멘 센트로로 가게 되었다. 바야돌리드로 가기 위해서는 택시투어가 가격 측면에서 메리트가 있다는 걸 투어 전날에 깨달았고, 우리는 급하게 택시투어를 알아봐야 했다.


다행히도 이번 여행에서 인복이 넘쳐흘렀던 나는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숙소쉐어를 같이하던 언니에게서 택시기사를 초대받았고, 택시기사에게 "Estudiante ambre(가난한 학생, 이전화 참고)"이라고 불쌍한 척을 하며 3인당 2,400페소에 세노테 투어를 예약했다. 나는 1인당 1,000페소도 괜찮게 흥정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3인당 2,400페소는 무지 파격적이고 양심적인 금액이었다.


택시기사 림버트와 흥정한 whatsapp 내역


그렇게 택시기사도 구했겠다, 나는 오랜만에 고프로를 챙겼고 다음날 투어를 위해 일찍 잠들었다.



D+28


이른 시간인 아침 8시. 택시기사 림버트와 나와 동행친구들은 어제의 약속처럼 조심스럽게 골목에서 접선했다. 플라야 델 카르멘은 4개의 카르텔이 구역을 나누어 '점령'하고 있는 상태였고, 마약 운반책인 택시사업과 카르텔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구역에서 택시영업을 하면 택시기사는 신변의 위협을 느낄 수 있다고.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은 다행히도 림버트의 영업구역인 듯했으나, 파격적인 가격에 세노테 투어를 하는 건 카르텔 택시의 담합구조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오늘 투어를 함께 하기로 한 동행 2명은 같은 회사를 다니다가 퇴사한 친구들로, 나도 지금까지 대학생 하고만 다니다가 동년배 하고 다니는 건 처음이어서 색다르게 느껴졌다. 그렇게 림버트와 영어로 얘기하던 와중, 한 친구가 내가 지금까지 봤던 동행들 중 가장 유창하게 스페인어를 하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이 친구는 퇴사 후 세계여행을 하고 있으며 대학생 때 스페인어를 전공했다고 한다. 다른 친구는 퇴사 후 세계여행하는 친구가 꼬셔서 멕시코 여행을 하게 되었다고. 그렇게 우리는 한국인 3명과 림버트와 그의 아내와 함께 투어를 시작했다.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바야돌리드까지는 시차가 1시간 차이가 있을 정도로 약간 거리가 있었고, 2시간 가까이 택시를 타고 나서야 첫 번째 세노테인 옥스만(Oxman) 세노테에 도착했다. 입장료는 100~150페소 언저리며, 선크림 바르는 건 금지며 입장하기 전에 샤워를 하고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가니 인생에서 처음 보는 장관이 펼쳐졌다. 이온음료처럼 파란색 물과 동굴, 주변에 줄처럼 늘어져 있는 덩굴과 동굴 위에서 물로 꽂히는 빛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새로웠다.


옥스만 세노테


개장시간에 오픈런을 해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고, 동굴 중턱에 앉아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수영을 하고 있는데, 친구들은 다이빙을 하러 갔다. 처음에는 안 하려고 했으나, 심지어 림버트의 아내분도 다이빙을 하러 가니 나도 해야만 할 것 같아서 두렵지만 다이빙에 도전했다. 타잔처럼 동굴에 매달려 있는 줄을 잡고 다이빙하니 귓속에 물이 다 들어와서 물을 빼느라 고생했다. 하지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고. 떨어질 때의 짜릿함을 못 잊고 2번이나 더 했을 정도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다이빙하고 수영하던 와중, 친구가 빛이 들어오는 부분으로 와보라고 불렀다. 빛이 들어오는 부분에서 스노클링을 해보라고 해서 물속을 쳐다보니, 프리즘처럼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옥스만 세노테에 1시간가량 있었고, 다음 세노테인 사말(Saamal) 세노테로 이동해 점심부터 먹었다. 우리는 햇빛이 너무 뜨거워 택시 뒷좌석에서 식은 피자와 빵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림버트가 칠라킬레스(chilaquiles, 살사 소스에 또르띠야를 버무린 음식으로 아침식사로 자주 먹는다)를 나눠주는 것 아닌가. 아내분이 우리 몫까지 챙겨 온 것임을 알고 우리는 감동했고, 림버트가 몇 가지 마야어와 멕시코 욕을 알려주며 점심식사를 보냈다.


사말 세노테 입구와 림버트가 나눠준 칠라킬레스



점심을 먹고 2번째 세노테인 사말 세노테로 들어갔다. 사말 세노테는 옥스만보다 규모는 크고 예쁘긴 했으나, 가격도 비싸고(150~200페소) 물이 차가웠고 필수로 입어야 하는 구명조끼가 자꾸 내 목을 찔러서 수영하기 불편했다(어쩐지 림버트가 세노테 우리가 세노테 입장하는 것만 도와주고 자기는 안 들어가더라). 우리는 한 20분 정도 수영하다가 근처에서 맥주를 마시며 쉬기로 했다. 알고 보니 스페인어를 잘하는 친구는 이전에 멕시코에서 교환학생을 했었고, 우리에게 맛있는 맥주를 추천해 주었다. 내가 먹은 맥주는 Bohemia의 흑맥주로 맥주맛을 모르는 나의 입맛에도 맞았다.


사말 세노테를 위에서 본 모습(1,2)과 우리가 주문한 맥주(3,4).


맥주를 마시며 쉬다 보니 어연 시간이 오후 2시였다. 우리는 3,4번째 세노테인 사물라(Samula) 세노테와 츠케켄(Xxeken) 세노테로 향했다. 특이하게 사물라 세노테와 츠케켄 세노테는 붙어있어서 한 장소에서 2개의 세노테를 동시에 입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두 세노테의 입장료는 216페소로 1+1인 점을 생각하면 저렴한 편. 이전에 2개의 세노테를 다녀와 체력이 떨어졌지만, 사물라 세노테는 영화 코코의 배경이 되었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소문이 자자해 기대감이 생겼다.


그렇게 3번째 사물라 세노테로 갔고, 나는 지금까지 멕시코에서 봤던 광경 중 가장 별세계 같았던 경관을 마주했다. 동굴 사이에 사선으로 들어오는 빛과 옆에 있는 마야 제단까지. 오늘 투어에서 봤던 세노테 중 비주얼이 최고였다.


사물라 세노테. 영상에서도 들리듯이 사물라를 보니 감탄밖에 안나왔다.


물은 내 가슴정도까지 올 정도였고 수온도 적당해 수영하기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특히나 지금까지 수영하지 않았던 림버트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아내와 놀고 있었을 정도이니, 나름 멕시코 로컬들도 인정하는 세노테임에 틀림없었다. 미지근한 세노테를 수영하며 동굴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위에서 쏟아내리는 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배영도하고, 물속의 닥터피쉬한테 발을 내주고 쉬고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1번째로 갔던 옥스만은 물놀이하기에 좋은 곳이라면, 사물라는 물에 둥둥 떠다니며 경치와 분위기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사물라 세노테를 구경하고 마지막 츠케켄 세노테로 향했다. 츠케켄은 빛이 들어오는 부분도 없어서 물도 차가웠고, 우리는 3번의 세노테 투어로 상당히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구경만 하고 나왔다. 만약 츠케켄과 사물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사물라를 추천한다.


츠케켄 세노테


투어가 다 끝나니 어연 4시 반이었다. 시차를 감안하면 9시간 넘게 물놀이를 한 샘. 우리는 "세노테는 3개까지가 한계였다."는 얘기를 한 채 택시를 타고 가던 와중, 갑자기 림버트가 자기가 프리스타일 랩을 할 테니 뒤에서 호응을 해달라고 하더라. '띠용?' 했으나, 지금까지 림버트가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은 흥 많은 아저씨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흥에 취해서 랩을 하는 줄 알았다.


이런 나의 예상과는 반대로 림버트는 랩을 매우 잘했다. 너무 잘해서 우리는 놀라다가 환호성을 질렀고, 림버트가 시킨 대로 멕시코랩에 추임새를 넣으면서 림버트의 래핑 메들리에 함께했다. 알고 보니 림버트는 옛날부터 래퍼활동을 이어왔었고, 택시기사를 하며 틱톡/유튜브/인스타 등 다양한 음악활동을 하고 있었다. 우리한테 불러준 랩들도 자기가 발매한 노래들이었다.


래퍼 택시기사와 함께 플라야 델 카르멘으로 가는 길


그렇게 2시간을 달려 나는 플라야 델 카르멘의 숙소에 도착했고, 림버트는 나에게 영어대신 스페인어로 "mon amiga, hasta luego(내 친구, 다음에 또 봐)"하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같이 다녔던 동행들하고도 작별인사를 하고 한국에서 꼭 만나기로 약속하며, 저녁 8시가 되어서야 힘들지만 재미있었던 바야돌리드 세노테 투어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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