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플라이 투 아프리카! We fly to Africa!!
활동가 최종 합격 후에 건강검진과 2주 국내 합숙 교육을 진행했다. 함께 보내는 이 시간 동안 곳이면 같은 날에 다른 나라로, 다른 지역으로 파견 가는 동기 활동가들을 알아 갈 수 있었다. 벌써 7년 전인데, 그때만 해도 활동가들 중에서 나를 포함해 90년생 활동가들이 막내였다. 꽃다운 나이 24살들과 꽃다운 나이 26살, 꽃다운 나이 29살, 우리 모두 꽃다운 시기에 한국에서 아프리카로 날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거기 한 데 모였었다.
드디어 공항으로 가는 날이다. 엄마가 직접 운전대를 잡고 부산에서 인천 공항까지 차로 600km를 달렸다. 처음으로 먼 곳을 그리 오래 (이때만 해도 5개월이 2년 반이 될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떠나보내는 게 아쉬웠는지 엄마는 자진해서 차로 데려다준다고 했다. 언니를 떠나보내며 우리 동생도 함께 동행했던 공항 길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우리 엄마의 나름의 사명의식이다.
“내가 우리 예쁜 딸들한테 해준 게 별로 없어도, 운전수 노릇 하나는 딱 책임지고 하잖아, 그렇지?”
고등학교 3학년 때, 주말마다 부산 민주공원 산골짜기에 있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아침 7시, 엄마는 민주공원에 나를 데려다주고, 도서관 문을 닫는 밤 10시면 데리러 와주시곤 했다. 사실 버스를 타고 왔다 갔다 할 수도 있지만, 엄마의 헌신과 조력이 없었다면 버거웠을 수도 있는 일정이었다. 장기간 산꼴 도서관에서 열두 시간을 공부하면서도 도서관 문을 열고 나가면 엄마가 바로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안도와 조금만 더 해내자는 끈기를 심어주었다.
공항에 도착한 후에 우리는 지금 이 여름이 지나고, 다가오는 가을을 보내고서 오는 12월 겨울날에 건강하게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기쁨과 감사와 사랑이 넘치는 작별이었다. 그만큼 우리 모두 설레고 축복하고 있었다. 그건 아마도 개인으로서 떠나는 것이 아닌 여러 동기 활동가들과 함께 떠나는 길이었기에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였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으샤 으샤’ 모드였다. 심지어 우리의 동선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 갈 때까지는 일정이 같았기에 비행기 안에서도 우린 그저 천진난만했다.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서로에게 인사를 해야 할 시간이 왔을 때가 와서야 비로소 ‘아, 우리 정말 홀로 갈 길을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합숙하며 정든 동기들과 마침내 뿔뿔이 헤어질 때는 찔끔 눈물이 났다.
요하네스 공항에서 말라위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탔다. 창가 밖으로 드넓은 아프리카 대지와 푸르른 하늘을 내다보았다.
말라위에 가까워지자 점점 더 나라 전체가 마치 하나의 오지 같아 보였다. 낮은 건물들, 넓디넓은 대지와 높다란 산지와 길게 뻗은 말라위 호수, 그것들이 내 현실로 점점 가까이 다가옴을 받아들이는 순간이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어두침침함과 작은 동네 동사무소 같은 이민심사대를 지나 건기 특유의 짙은 흙냄새가 내 코로 들어왔다.
“다 쿨 란디라니! Ndakulandilani! (말라위의 공식 언어인 치체와어로 ‘환영합니다’ 란 뜻이다.)
여기가 바로 말라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