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다가와 돈을 달라고 할 때 대처(?) 법
마을에서 활동가로 살아가면서, 힘들 때는 마을 사람들과 서로 다른 이해 관계와 가치관으로 부딪힐 때가 있다.
이런 일들은 매일 일상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이런 일들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심각해지면 정말 답이 없어진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문화적 차이 속에서 나는 우선적으로 그들의 가치와 문화를 배우고, 이해 하려고 하는 편이었다. 외부인인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예를 들면, 마을 주민들의 매일 같은 이웃 뒷담화, 마음에도 없으면서 나에게 이것 저것 자기가 팔고 있는 물건 강매, 아이들의 일상 같은 ‘나 연필 한 자루만 주세 요’ 또는 ‘기브 미 마이 머니 (give me my money; 나의 돈을 주세요!)’ 아니면 아예 대 놓고 자기 집의 지붕 보수를 할 자재를 사달라고 하는 등 다양하다.
내가 ‘나’이고, 그들이 ‘그들’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우스꽝스럽지만 매일같 이 일어나는 이러한 일들 속에서 나는 점점 의연해지는 법을 배웠다. 처음엔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서 매번 들을 때 마다 상처받고, 아이들에게는 매번 그렇 게 말 하는 게 왜 안 좋은 것인지 알려주었다.
하지만, 나중엔 마을 주민들이 정말로 나에게 진지하게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없이’ 그냥 나에게 내뱉는 의미 없는 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감정적으로 상처 받아서 ‘저 사람은 나를 진정으로 좋아하지 않아’ 하더라도,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언제든 내가 도움을 필요할 땐 언제나 먼저 달려와 도와주었고, 내가 그들의 면전에서 온갖 인상을 다 쓰고, 상처 받은 티를 팍팍 내며 거절하더라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한지 모른다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다시 나에게 되돌려 주곤 했다.
그때 나는 ‘나’의 존재를 사회적인 맥락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 마을 주민들에게 나는 한 개인이기도 하지만, 이 마을을 지나쳐갔을 수많은 ‘음중구(Mzungu), 즉 백인 외국인’ 중 한 명이었을지 모른다. 아차, 여기서 '백인'은 말라위 사람들 기준에 피부색이 하얗거나 자기 나라 사람이 아닌 외부에서 온 외국인을 총칭해서 부르는 것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연필 한 자루 던져 주고, 초콜렛 하나 나눠 주고, 가끔 돈까지도 손에 쥐어다주는 그런 외국인들 말이다. 물론, 모든 외국인들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마을에서 영어도 잘 못 하는 아이들이 ‘기브 미 마이 머니(Give me my money, 내 돈 주세요)’라는 잘못된 문장을 누구에게 배웠을까? 분명 아이 들의 엄마, 아빠였을 것이다. 엄마, 아빠는 마을에서 어렸을 적부터 살아오면 서 그들의 엄마, 아빠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외국인들이 마을에 오면 어떤 일을 하고 가는지, 외국인들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동시에 꼭 그렇게 선의를 표시한 외국인들이 죄가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다른 문화와 환경에서 온 사람들이 현지의 문화와 삶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이 감정과 현재에 집중해서 어떤 행동을 하고 떠나고 남기고 간 작은 것들이 그 현지에는 쌓이고 남아 하나의 행동방식과 관례를 만들었다고 해야할까?
그러한 상황들 속에서도 내가 참지 못 했던 한 가지 사건이 있다.
바로, 우리 센터에서 회의를 할 때마다 소정의 ‘수고비’를 제공해 달라는 요구사항이 었다. 이것 역시, 다른 NGO들이 어떻게 마을에서 주민들을 소집하고, 회의를 해 오고 있었는지에 관련이 있었다. 예를 들어, 모 NGO에서는 마을에서 주민 들을 대상으로 보건교육을 진행하는데, 이 행사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시간을 내어주는 대신에, 하루에 3000콰차(약 5000원)을 대가로 주는 것이었다. 이는 NGO들 뿐만이 아니었다. 정부에서 진행하는 사업에서도 마을에서 할 때, 무언가를 주지 않으면 마을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 다. 이렇게 마을 주민들은 막상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 사회와 주민들을 위해서 회의에 참여하면서도 소정의 ‘수고비’이 없으면, 참여를 하지 않는 그런 현상이 만연해있었다. 일반 주민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와 함께 일을 했던 10명의 촌장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촌장님들까지도 이러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자, 초기에는 현지에 대한 이해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3000콰차 까지는 아니었지만, 교통비 목적으로 매번 소정의 금액(500콰차)를 지원하던 것까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원금 (Allowance)의 목적이 교통비, 간식 등이라면 그것들을 제공하면 되지, 현금으 로 줄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민들이 여태 경험했던 삶의 방식과 회의 운영 방식을 내가 한 번에 바꿀 수 없었다. 나는 먼저 촌장님 10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왜’ 계속 이 금액을 지원 해야 하는 지, 이 금액을 ‘누가’ 제공할 것인지에 대해서 물었다.
촌장님들은 마을 주민들이 농사를 짓는 시간을 쪼개고 회의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래서 대부분 마을 내에서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추천 하는 관행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미팅을 주최하는 측에서 이 지원금을 예산 에 포함해서 사업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여기서 다른 사업들과 우리 사업의 차이점이 드러났다. 다른 사업들은 마을에서 진행되기 했지만 일시적이었으며, 주민들에게 전달 되기 전에 이미 ‘완성’이 되어 온 사업들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지역학습센터에서 운영했던 사업들은 달랐다.
우리는 ‘우리’가 직접 예산을 짜고, 수혜자들을 선정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그들과 함께 논의해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럴 때마다 지원금을 줄 것인지, 우리가 평균적으로 얼마나 자주 모이는 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자, 촌장님들의 반응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몇몇은 ‘그래도’, ‘그래도’ 하시면서 이런 기회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이 셨다. 나는 촌장님들에게 약속을 했다. 지원금에 대한 부분을 예산에 반드시 넣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 예산은 그에 해당하는 물품들로 지원을 하겠다고 말이다. 본디, 지원금의 의미가 갖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우리 센터에서 진행되는 사업들은 기본적으로는 어떤 워크숍이든 회의든 ‘지원금’은 지급하지 않는다. 물론, 주민들이 갖고 있는 딜레마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사실, 센터에 참여하면서 그들의 개인적인 시간(여가이든, 노동이든)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을 위해서 미팅을 하는 것이라면, 그 미팅은 안 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대부분 사업의 실 패는 거기서 시작되는 것 같다. 우리가 왜 모여야 하는지, 무엇을 이야기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주민들과의 공통된 이해관계가 없는 사업은 지원금이 끊기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쉽다.
당장 주민들의 마음을 사기에는 그냥 지원금을 지급하는 게 더 효과적이 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방식대로 계속 했다면, 누가 마을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 길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맞고 저것은 틀리다 라는 식을 떠나서, 결국 사업을 하기에 앞서서 이 사업이 주민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서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연습을 한다면 이런 일들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기대를 해 볼 뿐이다.
교육의 힘이라는 그런 것 같다.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효과나 성과 같은 것은 없는 것 처럼 보인다.
오히려 더디고, 마찰이 생기고, 부딪혀야 할 일들이 더 많다.
그러나 한 번 변화에 대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면, 그것은 자발적인 힘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작은 몸짓이다.
작은 것들이 모이고 모여 다시 덩어리가 된다.
이제 동참하고 자발적으로 힘을 합치고자하는 사람들이 마을을 이끌어간다.
학교 교육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고 방식, 생활 방식, 문화 모든 것들의 과정 하나하나가 교육인 것 같다.
교육의 힘은 정말 크다.
운영위 정기미팅에 참여중인 촌장님들의 모습. 공간은 나피니 커뮤니티 공부방 사무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