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 숨 쉬는 이 땅이 내 집, 내 공간.

'집'보다 더 '집'같은 공간이 된 나의 말라위 집.

by 한지애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공간, 이 땅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난 말라위에 가기 전에는 이 질문 조차 한 번도 던져보지 않았다. 단순하게, 질문을 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이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대형 마트, 대중교통, 통신, 교육 및 주거 등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져있고, 이것들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돈’이 있으면 이 모든 것들이 너무도 쉽게 주어진다. 우리는 여행을 더 자 주 다니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할 수 있는 그러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물론 ‘돈’이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말라위에 살면서, 나는 내가 밟고 있는 땅과 내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쉽게 주어진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들이 아 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항상 내 앞에 쏟아져 내리는 모든 물질적인 것들 이 없어졌을 때, 내가 유일하게 돌아갈 곳은 바로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라는 생각이 미쳤다. 마을에서의 삶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내가 한국에서 살아온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밟고 있는 땅, 하늘, 바람, 그리고 공기와 끈끈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마을에서 난 이 땅, 내 주변에 일어나는 어떠한 변화에도 무관심하고 무 지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이 마을이 그들의 땅이고, 나에겐 낯선 땅이 기 때문에 일어나는 정보의 양 또는 앎과 무지의 벽 이상의 인간 자체로서 나 바깥놀이 중에 텃밭에 놀러 간 아이들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질의 차이라고 느꼈다. 나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한 없이 무기력함과 나약함을 느꼈다. 내가 26년의 짧은 인생에서 성취한 것들,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가고 싶었던 목표들이 심지어 한 낯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에게 이 공간의 의미에 대한 통찰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것은 바로 오전에 마을 공부방에서 운영되는 어린이집에서 진행되는 ‘바깥 놀이’ 활동이 다. 나는 바깥놀이에 대한 관찰을 통해서 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땅,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들의 삶과 삶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모순적이게도 나는 한국에서 유아교육 기관에서 일을 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한국의 바깥놀이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지 못한다. 오히려 그 점은 내가 마을에서 본 바깥놀이를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점을 통해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쓰러진 망고 나무에 올라타 놀고 있는 아이들



내가 마을에서 주민들과 운영했던 마을 공부방에선 매일 오전 7시 50 분부터 11시까지 영아와 유아들을 위한 어린이집을 운영했다. 공부방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이른 오전 시간은 항상 교실이 어두웠고, 여기서 ‘교실’ 은 보통 우리나라의 교실 풍경과는 많이 다르다.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통해서 지금은 공부방 내 여러 교실에 필요한 학습 도구와 자료들이 제공되었지만, 2013년 9월 초 내가 파견된 후 첫 학 기가 시작된 당시에는 그저 텅 빈 어두운 방일뿐이었다.


그때는 그 어두운 교실을 책, 선반, 책상, 또 가능하다면 전기까지 들어온다면 난 그것이 최상의 학습 환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한국적이고 서구적인 ‘나’의 생각일 뿐이었다. 주민들이 그동안 그런 물 질적인 보급이 없이 어떻게 교육과 양육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이해 없이는 주민들이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어떻게 그것을 주민들의 힘으로 가 능하게 할 것인지, 그리고 지금까지 그것을 주민들이 실행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무엇을 할까?


아이들은 주로 바깥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손을 씻던 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던지, 친구와 게임을 하던지, 선생님과 수업을 하던지, 대부분 어린이집의 일과는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처음에 나는 교실이 텅 비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이 이야기의 일부분일 뿐이다. 마을 교사들에겐 그 어느 것보다 효과적인 수업 무기가 있었다. 바로 ‘목소리’이다. 마을 교사들은 누구보다 크고 우렁찬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교사 중에 ‘슈피(Shuphi)’라는 교사가 있었다. 슈피는 목소리가 다른 교사들에 비해서 가장 우렁찬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실내보다는 야외에서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하는 활동은 조용하고 엄숙하기보단 활기가 넘치고 신나는 활동에 더 어울린다. 교사들이 아이들과 만들어가는 활동들이 실제로 그러했 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실내보단 실외가 더 재미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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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에서 30m 떨어진 모스크 앞에서 아이들과 노래 부르며, 게임을 진행하면서 신이 난 교사의 모습

학부모와 어린이집의 관계 역시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어린이집은 아이 들의 급식을 위해 텃밭을 운영했었다. 우리는 텃밭에서 옥수수, 대두, 땅콩 이렇게 3가지 곡식을 가꾸었다. 그리고 이 텃밭 활동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인물들이 바로 어린이집의 학부모들이며, 이 곳에서 만날 때 그들은 학부모와 교사로서가 아닌 평소 알고 지낸 오래된 이웃사촌으로 만난다. 허름한 치마, 엉 늘어진 머리를 싸매고 있는 헤어 그물망은 교사와 학부모의 경계를 단 번에 허물어준다. 텃밭에 갓난아기를 업고 온 어머니가 있으면, 교사나 학부모나 서로 번 갈아가며, 아기를 자신의 등에 포대기로 싸 업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텃밭 활동 이외에도, 텃밭에서 수확한 곡식을 건조하고, 제분소에 맡기 는 것에서부터 매일 9시에 와서 급식 준비까지 모든 것을 학부모들이 직접도 맡아서 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작업들도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바깥이기 때 문에, 우리는 ‘노동’이 누구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무엇’을 위한 노동인 지 모두가 알 수 있다. 지나가던 주민이라도 다소 중대한 노동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 참여는 어른만 뜻하지 않는다. 학교를 마친 초 등 학생들도 곡식들을 자루에 담고, 창고로 옮기는 작은 일들을 도맡아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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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이집 운영의 단편을 얼마나 상세하게 그려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내가 본 바깥이라는 공간은 학습의 공간이자, 노동의 공간이자, 놀 이의 공간이었고, 그 자체로 ‘삶’을 담아내고 있는 공간이었다. 나에게 ‘바깥’이라는 공간이 그리고 내가 밟고 있는 땅이 그때 보낸 시간만큼 강렬하게 다가 온 적은 없었다. 나는 바깥에 있을 때 사람들과 더욱더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고, 내가 밟고 있는 이 땅도 나와 같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의 그 따뜻함과 냄새를 잊지 않고 살아가려고 한다. 나아가, 어느 땅을 밟던지, 그 땅을 느끼고 교감하는 것과 그 땅에 책임을 지고 살아가고자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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