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위에서 내가 보낸 나날들이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도 나의 가슴을 뜨겁게 하듯,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지나더라도 변함없이 그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그립고, 행복한 시간들을 두고 난 왜 돌아왔을까?
나 혼자서 그곳이 좋다고 해서 마을에서 평생 그렇게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을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지만 그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나고, 또 새로운 가정을 꾸리며 그렇게 살아가는 주민들과 다르게 그곳은 내가 평생 살아가야 할 곳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언젠간 마을을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특히 내가 마지막 11개월을 연장하기로 마음먹었던 2014년 연말 즈음부터 난 더 독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없이도 마을 주민들 스스로 마을 공부방을 운영하기 위해서 제일 중요했던 것은 젊은 인재들을 찾고 기르는 것이었다. 내 나이 겨우 스물다섯, 여섯에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인재 발굴’을 한다는 것은 누가 들어도 기가 막힐 것이다.
그러나 현장 이야기는 사뭇 진지하며 긴장감이 넘쳤다는 사실.
실제 교사가 되기 전 양성 워크숍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후보자들
'인재 발굴' 프로젝트 이전에는 촌장님들로 구성된 나피니(Naphini, 마을 공부방 이 름) 운영위원회를 굳건히 다지는 연습을 했었다. 우리 공부방은 타지에서 온 활동가, 즉 나에 의지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장의 주인들인 마을 주민들이 운영 주체가 되어 운영되었다. 마을에 파견된 초기부터 나는 촌장님들과 회의 때마다 제공하는 ‘지원금’을 타파(?)하는 것을 시작으로 철저한 규칙 속에서 2주에 한 번씩 정기 회의를 가졌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현지어 실력이 놀랍게(?) 발전하면서 나와 촌장님들 사이에 개인적인 접촉과 신뢰는 더욱더 견고해져 갔다. 난 시간이 지나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촌장님과 어떤 촌장님이 개인적인 친분이 강한지, 누구와 누구 사이에 미묘한 경쟁 관계가 있는지, 또 누가 가장 권력을 갖고 있는지, 또 누가 가장 권력욕이 많은지 등에 대해서도 파악을 할 수 있었다(정치외교를 복수 전공한 학생으로서, 촌장님들의 힘을 둘러싼 권력구조는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현장 체험이었다고 회고해본다!).
그렇지만 바로 그 점이 흠이었다. 촌장님들이 갖고 있는 권력과 권위가 촌장님들에 의해서 공부방을 운영하는 것을 어렵게 했다. 촌장님들이 지역 공동체와 마을 공부방의 우두머리라면, 그들에겐 그들의 생각과 결정을 따라 행동하고 움직여 줄 수 있는 손과 발 같은 존재가 필요했다. 예를 들면, 마을 교사들과 아이들의 학부모들과 같은 존재들 말이다. 특히, 촌장님들과 잘 협력해서 마을 공부방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교사들을 나는 ‘인재’라 부른다! 사실, 촌장님들 평균 연령이 대략 55세였고, 가장 나이가 많은 촌장님의 경우 70세가 넘으셨다.
한 예로, 회의에서 센터에 필요한 학습 물자 리스트를 정리하였다고 가정해 보면 상황은 이렇다. 회의 결과, 노트 200권, 연필 300자루, 분필 6통 등이 제시되었다. 그다음은? 이제 이 물자를 사러 시내에 나가야 한다. 사업 초창기 1년 정도는 내가 직접 친한 교사들 2~3명과 함께 가는 것이 무리가 없었다. 장기적으로 내가 없이도 주민들이 회의에서 나온 결과에 따라서 주민들이 직접 구매를 해야 하는 날을 생각해야 했다. 그런데, 말 그대로 노인이신 촌장님들에게 마을에서 1시간을 걸어서, 햇볕이 내리쬐는 길을 따라 다시 무거운 자재를 짊어지고 센터로 오라고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촌장님들이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젊은 청년들이 필요했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촌장님의 권위에 눌려서 청년들이 그 결정과 때론 명령(?)을 따를 경우에는, 장기적으로 촌장님과 교사들 사이에 집단적 불신과 갈등이 발생할 날이 올 수 있음을 나는 지난 경험을 통해 짐작 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마을에서 인재들을 찾는 여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매년 개최했던 교사 양성 워크숍은 주변 마을에 숨은 인재들을 만나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2,3주 간의 워크숍 때 보여주었던 모습은 그들이 정식으로 교사로 활동하게 되면서 사라지는 것을 흔히 보았다. 전적으로 그들이 배신자이거나, 변질(?)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마을 공부방에서 일하는 것 이외에도 작은 비즈니스를 운영하거나, 추가적인 농사 활동으로 가정을 돌봐야 하는 책임을 갖고 있었다. 그 이유 때문에, 촌장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교사를 뽑을 때, 결혼하지 않은 젊은 남녀 청년들을 선호하였다. 하지만, 그들 역시 마을에서 오래 머물 생각이 없는, 언제라도 기회만 있다면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다. 실제로 교사가 된 이후에도 몇몇 젊은 교사들은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며, 석 달 만에 그만두기도 했으며, 어 떤 교사는 한 기술대학교에 합격하게 되었다며 방과 후 교사 전체 리더였지만 떠났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저 마음이 변해서 이런저런 거짓말을 둘러대다가, 반 강제로 그만두기도 했다.
우리 공부방에서 일을 하는 교사의 수는 어린이집 교사 5명, 작은 도서관 사서 2명, 성인 문해 교실 교사 3명, 방과 후 교실 교사 7명으로 총 17명이었다. 담당 프로그램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보통 교사들은 매일 3, 4시간 정도 일을 한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이 일에 전적으로 전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대부분 교사들은 결혼하여 자녀를 키우고 있었고, 몇몇은 아직 젊더라도 홀 어머니를 모시고 단 둘이 살았다. 우리 센터에서 일을 하는 것이 적은 보수가 제공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인생을 다 받칠 만큼의 급여를 제공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는 교사들에게 우리가 기업이 아닌 ‘마을 학교’이며, 그들도 마을 교사로 서 어느 정도의 공동체 의식과 자기희생을 감수할 것을 워크숍 내내 이야기한다.
여러 교사들이 지원한 분야는 다양하지만, 모든 워크숍 참가자들이 반드시 함께 들어야 하는 강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주인의식과 공동체 의식에 관한 것이다.
처음에는 돈 벌 생각만 가지고 우리 센터를 방문한 청년들도 생각보다 많았다. 심지어, 우리 주변 마을에 살지도 않지만 근처 고등학교의 한 현직 교사가 투잡을 뛰겠다며 우리 공부방에 이력서를 낸 적도 있었다. 반대로 우리 공부방에서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사가 근처 고등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와서, 우리 공부방에서 일을 그만두고 떠난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돈 때문에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을 원망한 적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내가 느낀 바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째, 인재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둘째, 인재들이 제 발로 찾아오는 그런 매력적인 기관이 되는 것도 쉽지 않다. 셋째, 인재는 집단 안에서 하나, 많아야 둘밖에 없기 때문에 인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개개인의 자질을 문제 삼기보다, 우리 마을 공부방이 튼튼하고 믿을 수 있는 한 조직으로서 모든 교사들이 생계 걱정을 안 하면서도 지역 사회를 위해 자발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틀과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역 다른 엔지오 기관장의 강연을 듣고 있는 후보자들과 촌장님들. 강연 주제는 기관 운영과 체제 정비 등에 관하여.
하지만 주어진 현실에서 우리 공부방의 희망은 바로 세 번째 교훈에 있다. 모두가 저마다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몇몇은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해서 그러한 환경에서도 자신만의 작은 꿈을 키워나갔다. 물론 그들은 주변 동료로부터 인정받았고, 남들이 주저하고, 마다하는 일들에도 불평불만 없이 받아 드렸다. 그들도 그런 일들을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센터를 운영하면서 우리 센터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때문에 교육 사업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의미에서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우리 센터의 마을 교사들 개개인이 성장하는 시간이고 기회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런 청년들은 결국 촌장님들도 마을 공부방과 관련된 일이 아니더라도, 좋은 행사나 프로그램이 있으면, 그들을 추천해주기도 하고, 좋은 짝을 소개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교사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며 성장하고,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된다. 그들은 아침에 학교 가는 시간보다 오후에 자기를 보러 단 걸음에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의 우상이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늦은 오후 수업이 마치면, 빈손으로 집에 가지고 않고 교사용 교재를 들고 가 밤새 촛불 아래서 다음 날 수업 때 쓸 자료를 만들어 온다. 때론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또 학부모와 상담을 하다가 혼자 해결하기 힘든 고민이 생기면, 그들은 믿을 수 있는 촌장님을 먼저 찾아가서 진솔하게 조언을 구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자기의 부족함을 아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렇게 그들은 비록 3주짜리 간 소한 워크숍을 거쳐서 마을 교사가 되었지만, 매일 아이들을 만나고 소통하면서 진짜 교사가 되어간다.
3주 간의 워크숍이 끝난 후에 모든 참가자들이 수료증을 받은 후, 촌장님들과 강사들, 그리고 초대받은 지역 인사들 이 함께 찍은 단체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