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애 Feb 10. 2021

대한민국 여성의 다양성

평범함은 무엇인가? 다수는 누구인가?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아프리카 말라위에 가서야 비로소 우리 한국 사회 내 내가 가장 무지한 주체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북한이탈주민

탈북자/탈북민

새터민 


박노자 교수 같은 분들은 한국인이 아니지만 한국 사회의 속성에 대해선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그리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우리에게도 새겨 들어야 할 우리 사회의 겉모습 뒤의 이면에 대한 통찰력을 준다. 박노자는 한국 사회 내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 삶의 질과 대우 등에 대해 관심이 많다. 웬만한 한국 사회/정치학자들보다 더 박식하다. 탈북민은 이주민인가? 우리 국민인가? 같은 민족인가? 


답은 셋 다 맞다. 각각으론 만족하지 못하지만 세 가지가 합해져야만 옳은 답이다. 

이주민들에 비해서 꾀 안정적인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나, 동시에 '특별법'에 의해서 보호되고 지원을 받는다. 

어떤 대상들을 보호하기 위해 '구분'을 짓는 것이 때로는 '차별'과 '다름'에 대한 기준선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는 양날의 검과 같다. 


한국 여성단체 연합 사이트에 들어갔다. 지역별, 주제별 여성들이 조직한 시민 단체들의 명단들이 쭉 있고, 이들 사이의 연대 의식과 활동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국내 모든 여성 단체들이 '한국 여성단체 연합'에 가입을 하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가 인지 못하는 비공식적, 소규모의 여성 단체들도 많을 것이다. 내가 확인한 것은 탈북 여성들을 위한 또는 그들 스스로 조직한 여성 단체는 없었다는 것이다. 명단에서 한국 이주여성 인권 단체를 발견했다. 그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여기서도 탈북 여성들과 함께 하는 어떤 활동이나 캠페인도 찾을 수 없었다. 연합단체 관계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탈북 여성들은 이주민 단체 안에 포함되지 않나요? 그렇다면 따로 참고할 만한, 또는 제가 참여할 수 있는 단체가 있을까요?" 

라고 물었다. 친절히 도 다음 날 바로 답변이 왔다. 

"탈북민들의 지위는 대한민국에서 상당히 복잡합니다. 물론 대한민국에 새로 정착하긴 하나, 다른 이주민과 비교했을 때 시민권이 쉽게 나온다는 점에서, 그리고 특별법에 의해서 보호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참고할 만한 단체로는 <여성인권을 지원하는 사람들>의 『북한이탈여성 지원과 연대』가 있습니다." 


'여성인권을 지원하는 사람들'은 2010년에 만들어졌으며,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으며, 평화 기행, 합창단 활동, 취미 생활 공유 등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민자'라는 단어에 대해서 꾀나 무지하며 이에 신경 쓰기엔 너무 바쁜 듯하다. 


특히, 탈북민들에 대한 이해는 이중 잣대가 정치적 이득과 맥락에 따라서 마구 마구 휘청인다. 

어쩔 땐 불쌍하게 보았다가, 어쩔 땐 배신자들로 보았다가, 어떨 땐 빨갱이로 몰아세웠다가, 어떨 때는 함께 옹호했다가... 

일관적인 태도보다는 내가 해석하기 좋게 그들을 수동적으로 담론의 대상으로만 여긴다. 


탈북민들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없는 것은 아마 우리는 사회 기득권자들과 역사에 매몰되어 휴머니즘의 가치를 들여다볼 공간이 없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은 아닐까? 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기 전에 그들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이미지, 정체성으로 혹시 더 알아갈 노력이나 관심을 섣불리 차단하고 있진 않은가? 


굳이 일대일로 만남을 갖고 알아가려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존중, 한 개인으로서의 존중을 가지고 대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우리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 냉전의 종식, 소련의 멸망에 대해서는 교과서처럼 잘 외운다. 하지만 후기 냉전 시대에 아직도 냉전의 이데올로기에 아직도 갇혀서 살아가고 있는 스스로를 모른다. 어쩌면 알면서도 어찌할 바가 없어서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 한반도의 역사와 기원 자체가 아직도 '논란'이 되기도 하고, '강대국'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어쩌면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주체의식을 갖는 것이 한 개인을 어떤 집단적 정체성으로 치부하여 상상 속의 인물들로 무장시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 민족으로든 더 이상은 한민족은 아니지만 같은 언어로 문화적 기원을 함께하는 이들의 고된 여정 끝 마침내 새로운 정착을 응원하고 존중한다면, 지금보다 낫지 않을까? 


아직도 북한 내부에 일어나고 있는 것은 '진실'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며 '신화화' 하는 것은 철 지난 주장인 것 같다. 전체를 삳삳히 아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예를 들면 국제 인권 보고서, 탈북민들의 증언, 정치법 수용소의 존재를 입증하는 위성 이미지 등까지 '위조 스토리'로 치부하여 영화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 내 페미니즘 운동이 한창이다. 활동가분들과 시민 단체를 이끌어가는 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끼고 마음속 깊숙이 늘 큰 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우리의 목소리가 일원화되는 것에 주의해야 하며, 페미니즘은 또 다른 이름으로는 휴머니즘의 한 얼굴일 뿐이다. 더 오목조목하게 설명을 하는 것은 이번 글에 중점은 아니고, 다만 대한민국 내에 여성들도 저마다 다른 니즈와 요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페미니즘 안에서 양상하는 또 다른 차별과 소외에 대해서 그 안에 무브먼트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나 우리 사회 내 어떤 구성원으로서나 경계해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인 듯 함께하는 웨비나(Webina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