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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애 Feb 02. 2020

두 남자의 우정

브리타와 이안과의 저녁

베를린에 처음 왔을때 난 군타네 집에서 지냈다. 이후, 자연스럽게 길레름 (파트너)도 군타네 집에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한창 장기 여행 계획이 있던 시기에 우리는 길레름의 플랫을 다른 사람에게 두달간을 전대(sublet)하기로 했다. 그때 들어온 친구는 이탈리아 아가씨 사라였는데, 영국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막 베를린에 사무실에 취직을 해서 집을 구하고 있었다. 장기적으로 지낼 곳을 신중하게 고르고 싶었던 그녀는 두 달 정도의 막간의 시간을 신중하게 자신의 공간을 찾는 시간으로 잡고 있었고, 우리도 잠깐 있다가 떠나는 여행자보다는 베를린에 장기적으로 머물 계획을 하는 사람을 선호하고 있었고, 사라는 길레름의 광고글에 관심을 보인 스무명이 넘는 사람 중 가장 첫 번째로 메세지를 보냈었기에 그녀에게 집을 내어주기로 했다. 

그 첫 두달은 석달, 넉달이 되었고, 우리는 작년 12월 초에 함께 군타의 집을 나와 다시 길레름의 집으로 함께 들어가게 되었다. 


대청소가 연이어졌고, 필요없는 물품 정리와 필요한 물품을 중고사이트에서 수시로 탐색하는 등 우리의 공간에 길들이기 위한 과정을 한 달 내내 했다. 


아직도 화장실 세부 공간과 주방, 하나뿐인 우리의 안방 등 곳곳에 작은 것들이 필요하긴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장만하고 있다. 결국은 우리가 목표한 것을 모두 달성하지 못한채로 우리는 공식적으로 우리 집에 첫 게스트를 초청하게 되었다.  


우리의 첫 게스트는 이안과 브리타. 둘은 오랜 부부이고 두사람 다 예술분야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안과 길레름은 음악과 앨범 작업을 함께 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브리타는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사랑받는 창작그림동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이안과 브리타의 집에 처음 방문했던 날,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는 브리타와 처음 만났다. 

만나자마자, 이안은 소개를 시켜주면서, 

"브리타가 한국에서 더 유명한데 그거알아요?"

라고 말했었다. 


난 정말 진지하게 너무 놀라서

"정말요? 무엇으로 유명하신대요?" 

라고 물었다.


브리타는 수줍게 한국어로도 번역이 되어 출판되고 작년 '나미콩쿠르' 전시 프로젝트에도 최종 명단 후보중하나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워낙 일이 많은 브리타는 한국까지 가는 여정을 소화하지 못했다고 한다. 브리타는 93년 런던 세인트마틴스 미술대학을 마침과 동시에 동화책을 '우연한' 계기로 쓰게 되었다가 그 이후로 지금까지 미술, 일러스트레이션, 동화 구술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20개가 넘는 언어로 출판이 되었다 


첫 만남 당시 브리타는 나에게 한국어판으로 번역된 '날씨이야기' 책을 선물로 주었고, 사인도 함께 받았다. 

지금 책은 베를린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 한국계 독일 남자아이에게 빌려주었다. 그에겐 나보다 훨씬 그 책이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 언젠간 책을 받고 싶은데... 쪼잔해보이는것 같아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모르겠다. .... 아무튼... 


브리타의 책은 우리나라 책 서점/ 온라인 서점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예스24시 링크: http://www.yes24.com/24/AuthorFile/Author/192177?VTYPE=GoodsList#gl




그들이 도착하기 2시간 전부터 우리는 저녁 준비에 매진했다. 

한국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는데, 이안은 건강상 붉은 고기를 못먹는다고 했다. 난 아예 고기 메뉴는 빼기로 하고 잡채, 생선/새우/고구마 튀김, 유부초밥을 준비했다. 원래는 미소된장국을 만들려고 했는데 시간 초과로 그만 못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의 식탁은 주방이 너무 좁은 거 같아서 길레름과 끙끙거리며 좁고 타이트한 주방과 안방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지나 우리 방에 식탁을 안착시켰다. 


내가 요리를 담당했지만, 늘 그렇듯 길레름은 야채 썰기, 설거지, 테이블 셋팅 등 여러가지를 도맡아서 자기 몫을 해낸다. 너무 고맙고 든든하다. 난 너무 행운아다! 


테이블을 옮긴 후에 우리 4명을 위한 테이블을 세팅중인 길레름 



요리를 하자마자 이안과 브리타가 오는 바람에 완성된 요리를 찍을 시간도 없었다. 

준비하면서 틈나면서 찍은 사진이라곤 튀김 가루를 무치기 전 새우와 오징어, 그리고 잡채를 만들기 전 삶아 놓은 당면 ...  


내가 찍은 음식 사진은 다 완성이 된 후에 길레름, 이안, 브리타가 함께 나온 이 사진밖에 없다. 

잡채, 유부초밥, 그리고 새우,오징어, 고구마 튀김. 

그리고 깜짝 선물로 브리타의 일러스트레이션이 들어간 한정판 와인과 이안이 직접 전시도 했었던 사진작품을받았다. 와인은 저녁 먹는 동안 다 끝났지만, 아직 빈 병은 기념으로 가지고 있다. 

이안의 작품은 우리 안방의 큰 창문 사이에 걸어두었다. 


저녁 식사 직전


이안과 길레름은 길레름의 즉흥/실험음악 콘서트나 공연이 있을 때 이안이 사진을 찍고 공연을 보러 오면서 가깝게 이어졌다. 그들은 처음 길레름이 프렌츠라울러알리 (Prenzlauer alle) 역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을 때 만났는데 그때 이안이 그의 음악에 반해서 명함을 가져가면서 공연을 보러오게 되었고, 이후에 이안은 늘 반복되지 않고 매번 새로운 음악과 소리를 만들어내는 즉흥(Improvosied)/ 실험(Experimental)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했다. 이후에 이안은 본인의 실험과 아이디어로 실제로 음악작업도 하고, 원래 하던 그림도 그리고, 다양한 주제와 관심사를 가지고 사진작업도 계속 하고 있다. 두 분 다 대학원시절 런던에서 만나서 지금까지 정말 예쁘게 사랑하고 또 예술이라는 것을 삶으로서 꾸준히 하고 있는 두 사람이 멋있다. 


이안의 작품을 선물받았다. 


정말 놀라웠던 것은 

길레름은 이안과 브리타가 오기 전날 저녁에 이안에게 그가 그린 그림/사진 작품을 선물로 달라고 할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말했다간 저녁 안오겠다고 할 수 있어" 라고 장난 반 진담반 얘기를 했는데, 길레름은 하도 자유분방하고 자기 소신이 확고하니 어떻게 하고 싶은말은 햇겠지 생각했다. 

그래서 난 이안이 이 작품을 들고 온 줄 알았다. 


그런데 


이안과 브리타가 자정을 넘어 돌아갔고, 난 길레름에게 "정말 물어본거야?" 하고 물었더니, 

그는 "아니" 라고 했다.


둘은 사전에 물어보고 얘기하지 않았는데 이안이 우리를 생각해서 선물로 정말 가지고 온 것이었다. 


둘 사이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정도일 줄이야! 


지난 월요일 길레름이 속한 앙상블의 콘서트에서 몇개월만에 이안을 오랜만에 만났었다. 자연스럽게 곧 다가오는 이 저녁이야기도 하면서... 

그때도 이안은 얘기했었다. "나와 길레름은 서로 처음 봤을때부터 너무 편하고 자연스러웠어."


음악과 앨범 커버 관련해서 길레름이 조언을 구하는 지인/친구들이 2,3명있다. 

그중에 항상 이안이 들어간다. 


난 그들의 예술로 묶인 영혼으로 묶인 우정에 부럽고 또 그들을 위해 행복함을 느낀다. 


우리 넷은 식탁에서 그들의 런던 생활, 베를린에 오게 된 계기, 가족과의 관계, 인류의 진화, 제 2의 지구 (?) 생명체가 사는 행성에 대한 가능성, ufo의 존재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 내 phd와 베를린에서의 비자 받기, 취업 계획등에대해서, 그리고 나의 그림그리기에 대해서도. 


5시간이 넘게 식탁해서 메인 저녁 식사를 하고, 과일도 먹고, 차도 마시고 초콜렛도 먹고... 중간에 전자 악기로 갑자기 즉흥 연주를 하다가 둘은 자정이 넘은 시간,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설거지는 그 다음날 하기로 하며 식탁을 주방에 안전하게 돌려놓고 꿈만 같았던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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