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what I am because of who we all are
‘아프리카’를 떠올리면 많은 사람들은 빈곤, 질병, 그리고 전쟁 등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나는 이 곳의 휴머니티, 즉 우문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다. 말라위의 공식 언어인 치체와로 우문투는 남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반투 종족의 언어로 우분투(Ubuntu)와 상응하는 말이다. 아프리카는 거대한 대륙이고, 54개의 국가들로 나뉘어져 있지만, 조상이 같은 부족이나 국가들이 많기 때문에 몇몇 단어나 어원을 공유하는 경우도 드물게 볼 수 있다. 우문투나 우분투는 ‘나는 우리가 있기에 존재 할 수 있다.’ 라는 뜻으로, 함께 존재하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아프리카의 고전적인 지혜의 말이다. 나의 유년 시절과 대학 생활을 되돌아보면, 내가 능력이 되는 범위 내에서 내가 가고 싶은 학교와 전공을 선택을 한다. 나뿐만 아니라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도 어느 정도 사람들은 합리적인 사고 과정을 통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또 그렇게 자연스럽게 조건이 맞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며, 우리는 관계를 맺는다. 우리는 더 넓고 높은 곳으로 가길 꿈꾸고, 실제로 마음 먹고 열심히 노력하고 나의 능력이 된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렇게 살고 있다. 나는 말라위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렇게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의심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끊임없이 열심히 하고, 멋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만 잘 하면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고 여기는 사고 방식은 매우 희망적이었고, 언제나 나의 행동과 선택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모토였다. 예를 들어, 사회 생활을 할 때나 친구를 사귈 때에도 나만 사람들에게 잘하고, 되도록 사람들과 담을 쌓지 말고 지내자는 주의였다. 나와 마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아닌 나 자신이 상처받지 않고 원만한 관계를 위한 보호막을 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말라위에 오고 난 후 더군다나 타운이나 도시가 아닌 마을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나에게 이 ‘관계’라는 것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새롭게 와 닿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는 상대방에게 의존하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곳이었다. 공동체 생활 자체가 마을의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개인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인터넷은 더 접근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촌장님의 집에 확성기가 없이도 마을 곳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대가족과 주변 이웃을 동원해서 발품을 팔아가며 중요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대문에 자동 보안 장치가 없이도 집 앞 돌덤이 속에 열쇠를 숨기는 것으로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으며, CCTV나 경비원이 따로 없어도 옆에 사는 이웃들이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봐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내가 살던 동네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좀바(ZOMBA) 도시 이름은 좀바 산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좀바는 릴롱궤(Lilongwe)가 수도가 되기 전, 영국으로부터 말라위가 처음 독립했던 1964년에 초대 수도였던 곳이다.
우리 집을 가기 위해선 이 길을 따라 5KM 올라 가야 한다. 혹, 자기가 사는 마을이 아니더라도 주변 마을에서 장례식이 생기면, 굳이 전화나 문자 메시지를 돌리지 않아도, 사람들의 입을 타고서 조문객들이 상갓집에 줄을 선다. 또한 장례가 난 집 앞 길에는 나뭇가지로 일정 거리 구간을 표시해 두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곳 주변에 상이 났다는 것을 알리는것이다. 그 신호를 본 사람들은 나뭇잎 선을 지날 때 예를 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타고 있던 사람은 자전거를 내려서 그 길을 지나가며, 모자를 쓰고 있던 사람은 모자를 벗고서 손을 배에 올리고 지나가야 한다.
마을에서 농사 짓는 일, 가정을 돌 보고 아이를 키우는 일, 산에서 목재를 채벌하는 일, 냇가로 내려가서 빨래하기, 그리고 어두운 밤 비포장 도로를 전등이나 불빛 하나 없이도 걸어 다니는 일 등등 일상 생활의 거의 모든 것들이 마을 사람들 서로 간의 신뢰와 의리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 의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어른들을 보면서 공동체의 의미와 가치를 온 몸으로 느끼며 배워간다. 마을에선 어느 사람 하나 중요하지 않거나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보이게 보이지 않게, 모두가 각자 제 몫을 하면서,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마을을 매우 낭만적으로 묘사한 것 같기도 한 기분이 드는 것은 아마도 그 전에 우리나라에서의 나의 삶과 워낙 거리가 멀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화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이주 노동자, 기러기 가족, 자취 등 내가 태어나고 살아온 곳을 떠나서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무조건 부정적이고 나쁜 것이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다만 그런 환경들은 내가 어디서 왔고, 왜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잊어 버리도록 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때로는 영영 잃어버리게 되기도 한다. 말라위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그 지나간 것들에 대해 고개를 뒤돌아 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좀 느리고, 어설프고, 모자라더라도 괜찮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왜냐면 우리는 혼자서 어차피 다 해 낼 수 없는 존재이니까.
어쩌면 말라위도 산업화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이러한 전통적인 가치들을 잊어버리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사실, 마을에서도 가끔 기러기 생활을 하는 아버지나,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자녀를 둔 어르신들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옛날엔 저런 과정을 거쳤겠지?’
가끔 마을에서 살다 보면 문득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하는 듯 착각할 때가 있다.
빠른 속도와 그 속에서 분주하게 달리는 나는 기본적이고 단순한 우리 땅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가치를 뒤늦게 말라위에서 알게 되었다. 그것이 부끄러우면서도 동시에 이제라도 알게 된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 지금 말라위 사람들이 나중에 많은 것들 것 변하더라도 우분투의 휴머니즘적 미덕과 가치들이 그들의 미래에도 존재하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