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어려운 당신

#31.

by 한지애

100일 챌린지

- 요가 25분

- 독서 1시간

- 독일어 1시간



남자라는 존재는 나에게 늘 어렵다.

어렸을적 부모님이 이혼 하신 후 남자란 내 삶에 등장하지 않았다. 내가 17살이 되기 전까지.


지금의 아빠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우리 엄마를 사랑해주는 엄마의 단짝이다. 그렇다고해서 지금 서른 한살인 내가 혼동의 십대에 지금의 아빠를 쉽게 받아들인 것은 물론 아니다. 그래서 엄마도 힘들어했다. 힘들게 새롭게 꾸린 가정인데, 두 딸이 다 아빠와 말도 별로 없고 표현을 안 하니 중간에서 많이 답답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와 여동생 역시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사람으로 너무나 좋은데 여자 셋이만 살다가 갑자기 남자라는 존재가 들어온 것 너무나 낯설었고, 어디까지 선을 지켜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접촉이 가능한지 다 어색하고 이상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생각했기에 어디에다 말하지 못했다. 나의 성장기에서 그러한 경험들은 이성과의 (무)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시절, 이래저래 대외활동에 동아리 활동을 많이하면서 남자 학우들과 선배들을 많이 만났고, 너무 가까워지지 않는 선에서 나는 누구보다 편한 여학우였다. 나도 그런 '전환'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른다. 어쩜 전환이 아니라 '숨기기'에 더 가까웠을지 모른다.


지금의 애인을 약 2년 전 만나기까지 난 솔직히 제대로 연애를 해 본적이 없고, 연애를 인생의 우선순위로 삼아 본 적도 없다. 그에 반해서 나의 애인은 전 여자친구들과 약 3년씩은 사겨온 전형적인 로맨스가이였다. 지금도 물론이지만. 지금은 철없고 과감하게 로맨틱함에서 현실적이면서 현명함이 더해진 로맨틱 가이가 되었기에 난 과거의 그의 아픈 상처와 이별에 감사(?)할 뿐이다.


우리 둘 사이에서도 갈등과 차이는 물론 있었다. 난 어린시절부터 혼자서 개척하고, 하고 싶은 건 꼭 해야만 하고, 여건이 안되면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고, 늘 야망에 차게 살았다. 그런데 이제 둘이서 지내니 모든 것을 맞춰야하고, 어떤 것은 실례이고 매너가 아니라는데 나는 그 선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 누구도 명확한 선을 말해 줄 수 없을 것이다. 결국은 두 사람이 맞춰가는 것이니까.


우리의 상황은 심지어 둘 다 다른 나라, 대륙에서 와서 제 3의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 갈등이 될만한 소지는 정말 여러 곳에서 찾아온다. 그럼에도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은 모든 자잘한 차이와 조건을 다 제외하고 완전히 남는 우리의 사랑 때문이다. 그런데 그에게 가족과 애인 중에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에게 이번 2주간의 독립은 그의 아버지가 왔고, 우리는 방 한 칸 플랫에 살기 때문에 방이 넓고, 침대가 하나가 더 있어도 난 방을 나눠 쓰는 것이 불편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처음엔 자기가 지낼 공간을 따로 찾는다고 하더니 요즘 우울증과 삶의 의욕을 잃은 그가 오기 몇주 전 아들과 함께 지낼 수 없다면 베를린에 오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애인은 조심스레 나에게 대신 나갈 수 있겠느냐 아님 같이 지내도 되겠느냐 물었고, 나는 이날이 올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나는 내가 나가겠다고 했으나, 그는 소스라치며 왜 그런 생각을 하냐며 말도 안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아버지의 갑작스런 고백으로 상황은 내가 예상한대로 되었다. 난 마음이 완전 편하진 않았지만 내가 나가겠다고 하였다.


우린 지난 2년 가까이 만나면서 우리의 해외 생활로 인해 일찍 동거를 시작했다. 이제 우리 집안에서도 결혼을 가정하고 만난다고 생각하기에 우리 둘을 다 예뻐해주신다. 정말 감사하다. 그렇지만 뭐든지 백퍼센트 '그래야만 하는 것'은 없다. 서로를 빠른 시간안에 깊게 알아갔고, 그러면서 어떤 면에서는 시간을 절약했다. 달콤 새콤함에 속아 어영부영 커플놀이를 하기보단 현실과 일상을 함께 가꾸고 여러 선택들을 함께 만들어가며 진정한 동반자로 성장하는 시간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치만 때론 파우저 pauser , 잠깐의 쉼도 필요하다.


이번 2주 동안 혼자 지내면서 (완전 혼자는 아니다. 군타와 함께 지내고 있으니까.) 고요하게 고독하게 지내는 이 시간을 나름 활용하려고 한다. 오늘 저녁에는 그와 그의 아버지와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식당을 향해 같이 걸었다. 애인의 아버지의 트라우마, 스트레스, 우울증 그걸 내가 다 감싸기에 그와 나의 거리는 너무나 멀다. 나는 그게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거리마저 멀게 만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아버지를 어느 각도에서 어떻게 보고 접근해야 할지 난 정말 모르겠다. 아니, 그에게 접근하는 노력을 쏟는 것 자체가 나에게도 엄청난 압박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것이 우리 엄마는 애인이 볼 때 서운 할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의 감정과 에너지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느새 상대에게 전달이 된다. 인생의 경험이 풍부한 엄마는 단번에 여러 이야기를 다 나누지 않아도 무엇이 핵심인지 알아차렸다.


나에게 애인의 아버지는 이십대 초반에 내가 새아빠와 심리적 거리가 있을 때 그걸 옆에서 지켜보며 스트레스를 받고 속상해하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때 난 '왜 나에게 이해시켜주지 않고 무언가를 당연히 알 것이라 생각하고 강요하는가' 라고 그것을 매우 부당하게 느꼈다. 사람이 무서운 것은 내가 그 모습을 조금 닮았다. 고치려고 하지만 그때 내가 나를 변호하면서 익혀버린 엄마의 무정하고 날카로운 비난의 소리를 나는 나도 모르게 내면화했다. 우리 엄마도 트라우마, 상처에서 그것이 왔다는 것을 안다. 지금의 엄마는 매우 다르다. 난 그걸 매우 존중하고 존경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관성 때문에 자신의 단점을 고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말이다.


그런데 지금 애인의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렇게 자격지심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개인을 또 마주한다는 것은 나를 다시 마지막 십대, 이십대 초반의 혼동의 시간으로 되돌아 가도록 만든다. 그가 남자여서 아님 그런 성향을 보여서 아님 그냥 나의 부모님은 아니라서?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고통받고 있는 그에게 연민 또는 사랑의 마음을 내밀 용기가 없다.


군타는 나를 위로해주었다. 내 위치가 그 누구라도 어떤 배경에서 왔든지간에 어려운 자리라고.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만날 것이고 서로 아는 존재일 것이다. 우리의 관계가 좋아질지? 어떻게 하면 좋아질지? 는 아직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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