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털모자
겨울마다 자연스레 손이 가던 검은색 털모자가 하나 있었다. 5년 전, 결혼기념일에 올랐던 한라산에서 마지막으로 쓴 뒤로 종적이 묘연했다. 드레스룸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잃어버린 게 맞았다.
그 후로 신기하게도 겨울 모자를 새로 사고 싶다는 마음이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살 만한 모자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마음에 드는 스타일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매년 겨울만 되면 불쑥 떠오르는 건 잃어버린 바로 그 모자뿐이었다.
누가 들으면 대단한 물건이라도 되는 줄 알겠지만 사실 만 원도 채 안 되는, 대학생 때 명동 길거리 가판대에서 우연히 샀던 털모자였다. 잃어버린 순간에도 이미 10년이나 함께한 낡은 모자였는데 그런 모자를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서 찾고 있었다니, 되돌아보니 나도 참 징글징글하다.
매년 같은 패턴의 반복이었다. 찾다가 흐지부지 잊고, 그해 겨울이 지나가고, 다음 겨울이 오면 다시 떠올리고.
아마 누군가는 이런 상황에서 망설임 없이 새 모자를 샀을 거다. 하지만 나는 유독 마음에 깊이 자리 잡은 물건이 낡거나 사라지면 구할 수만 있다면 똑같은 것을 다시 들이고 싶은 사람이다. 새로운 걸 들인다고 해도, 원래 좋아하던 그 물건이 있어야 비로소 새로운 것을 환대할 여유가 생기는 성향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또다시 모자를 그리워하던 올해 겨울, 며칠 전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결국 비슷해 보이는 털모자를 주문하고 오늘 도착해서 써봤는데 아주 똑같진 않지만 비슷한 핏이라 그래도 마음에 든다. 이제 잃어버리지 말아야지.
지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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