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일상 4
2019년 1월의 끝자락, 더위는 약간 꺾인 듯하였지만, 서머타임 때문인지 낮이 참 길었다. 하루는 BRCQ에서 근무하면서 약간의 짬이 생겨, Jin과 수다를 떨었다. Jin은 나보다 4살 어린 학생이었다. UNSW에 재학 중이었고 용돈벌이를 위해 BRCQ에서 일한다고 했다.
"형, 형은 호주 오면서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셨어요?"
"음... 전부 다는 아니고, 여행을 아직 많이 못 가봤어. 시드니 근처도 가보고 싶고, 기왕 호주에 온 거 뉴질랜드도 가보고 싶고."
"여행 말고는요?"
"여행 말고는.. 피크닉? 나 미국에 잠깐 있을 때는 공원으로 피크닉을 한 번 가 봤는데, 진짜 좋았거든. 야외에 바베큐장도 있고, 벤치랑 테이블도 많고. 공원 앞에 호수도 보여서 엄청 낭만적이었어. 호주도 그런데 있으려나?"
"오, 시드니에도 있어요! 저희 집 근처 공원에 돈 내고 쓸 수 있는 공용 바베큐 그릴도 있고, 벤치도 있고, 풍경도 좋아요. 형, 우리 피크닉 가요. 고기랑 맥주도 준비해서 가면 재미있겠다."
"오, 나는 좋아!"
우리는 함께 일했던 SY와 Bella에게도 피크닉을 제안하였고, 약속을 잡았다.
피크닉 장소는 센테니얼 파크(Centennial Park)였다. 시드니 시내에서 동남쪽에 위치한 공원인데, Jin의 모교인 UNSW와 가까운 공원이었다. 나와 Jin은 음식 재료 준비를 위해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만나 쇼핑을 하였다. 스테이크, 치킨윙, 양송이버섯, 새우 꼬치, 감자, 연어회와 흰 밥, 맥주 몇 병까지. 다양하게 준비하고 공원으로 출발했다. SY와 Bella는 우리보다는 조금 늦게 우버를 타고 합류할 예정이었어서, 나와 Jin이 우선 공원으로 가 간단한 준비를 해 놓기로 하였다.
우리는 공원 내부까지 걸어 들어갔다. 공원은 꽤나 컸고, 푸르른 여름의 한가운데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활기찬 자연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높게 솟은 나무들과 그 나무그늘 아래의 도로, 햇빛을 받아내어 반짝반짝 빛나는 곳곳의 저수지들, 선선하게 부는 바람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가로지르는 동호회 무리, 큰 SUV에서 캠핑용품들과 축구공을 꺼내는 가족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분위기가 좋았다.
10여 분쯤 걸었을까. 적당한 위치에 바베큐 그릴과 넓은 공터 그리고 테이블과 벤치가 보였다. 우리는 가지고 온 짐은 대충 테이블 위에 풀어놓고 그릴 세팅을 시작했다.
공원의 공용 그릴은 내 생각과는 사뭇 달랐다. 우선, 그릴이라기보다는 철판(불판)이었다. 불판은 벽돌로 쌓인 네모난 단(壇) 위에 올라가 있었고, 단의 안 쪽으로는 가스통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동 버튼과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단의 높이는 허리보다 약간 낮았고, 뭔가를 구워 먹기에는 적당한 높이였다.
“너 이거 어떻게 쓰는 줄 알아?”
“네, 저번에 써 본 적 있어요.”
자신감 있게 말하고 Jin은 돈을 넣는 부분을 찾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형 이거 돈 넣는 데가 없는데요?”
“엥? 그러면 이거 못 쓰는 거 아니야? 다른 데로 옮겨야 하나?”
나도 Jin과 함께 찾기 시작했지만 지폐나 동전을 넣을 수 있게 생긴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혹시 돈 안 넣고도 작동하는 거 아냐? 하는 생각으로, 그냥 작동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위잉 소리와 함께 불판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어 뭐야 이거 그냥 되는데?”
“와 대박. 이거 무료인가 봐요.”
“아니면 이전 사람이 쓰다가 남은 게 있나?”
“그럴 수도요.”
우리는 빠르게 음식 준비를 시작했다. 불판을 깨끗이 닦고 쓰기에는 그만한 양의 물과 세제를 들고 오기는 힘들어서, 그냥 불판 위에 은박지를 깔고 그 위에 재료들을 굽기로 하였다.
고기를 굽기 시작하고 얼마 뒤 SY와 Bella도 공원에 도착했다(두 사람은 BRCQ에서 일을 마치고 바로 왔다고 했다). Bella가 휴대용 블루투스 스피커도 하나 가져온 덕분에, 우리는 신나는 노래와 함께 고기를 구우며 피크닉을 시작했다.
시원한 맥주와 신나는 음악, 맛있는 음식, 시시콜콜한 담화들,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물든 금빛 하늘.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우리는 금방 고기와 음식을 해치웠고, 취기가 약간씩 올라와 더욱 기분이 좋았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원했던 피크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