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와 열정 사이 1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와 움직임

by 지안의 문장


기나긴 터널의 어둠을 지나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은 설레면서도, 나도 모르게 두려움이 앞섰다. 그 모든 마음을 안고, 나는 '오리엔테이션'이라는 커다란 산을 넘어야 했다. 내게는 약점이라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가까워지고 나를 보여줘야 하는지, 그 모든 과정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니 이 험난한 만남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야만 했다.


시작은 O.T 조별 모임이었다. 다른 조들은 모두 한 학번 위인 09학번 선배가 함께하는데, 유독 우리 조만 08학번 선배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뭔가 조금 더 특별한 만남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그게 좋을지 나쁠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어영부영 풍선처럼 둥실 떠다니다가 누군가의 손에 낚아 채인 느낌이었다.


08학번 선배들은 10학번 신입생인 나보다 더 들뜬 얼굴로 오리엔테이션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러다 O.T에서 짧은 콩트를 만들어 공연해야 했는데, 그 공연을 만드는 과정에서 내 마음의 ‘오기’ 버튼이 꾹 눌려버렸다.


주제는 환경오염이었던 것 같다. 내용은 아주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낸 첫 의견만큼은 선명하게 떠오른다.


“할머니가 등장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극을 이끌어 가면 어떨까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별거 아닌 장면이 유독 기억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K선배가 던진 한마디 때문이었다.


“야, 저런 애들이 처음엔 잘하는 것 같다가도, 한 학기 만에 적응 못 해서 그만두는 거 알지?”


모두들 그냥 웃어넘기는 분위기였지만, 당사자인 나는 K선배의 말에 전혀 동의할 수도, 웃어넘길 수도 없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역시 난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힘든 건가?’ 왜인지 모르게,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나를 탓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보여줘야지. 내가 어떻게 이 학교에 왔는데. 이렇게 된 이상, 작품 하나는 꼭 남기고 졸업한다.’ 고요했던 아이의 마음에 처음으로, 서러움과 뒤섞인 단단한 오기가 싹텄다.


그 오리엔테이션을 기점으로, K선배의 말 때문에 눌려버린 ‘오기’ 버튼은 과에서 아웃사이더였던 나를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1학년들이 함께하는 단막극 제작 수업에서 작가로 참여하게 되었고, 글쓰기로 여기저기 활발하게 작업하는 학생이 되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내가, 나도 모르던 ‘오기’ 버튼을 발견하고 그 버튼을 발판 삼아 천천히 달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오롯이 빛나고 싶었던 맨발의 탈춤꾼들 속에 내가 함께하게 된 일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타의에 의해 부회장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대학 생활은, 순수한 '열정'이 아닌 씁쓸한 '오기'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오기 덕분에, 나는 결국 진짜 열정이 숨 쉬는 곳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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