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한, 이뤄질까요?
당신의 문장이 내 삶에 쓰이던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목. 그 눈부신 계절의 틈에서, 나는 애써 피워낸 열매를 수확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교수님의 음주운전 사고는, 제대로 익어야 할 열매가 떫은맛을 머금은 채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공연은 완성되어야 했고, 나를 비롯한 작곡가, 스태프, 배우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마무리를 향해 나아갔다.
공연장의 커튼이 올랐다. 어두운 조명, 부끄러운 대사들. 객석의 빈자리들이 어둠 속에서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공연은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한마디로, "망했다."
"이게 도대체 뭐야? 어두컴컴해서 보이지도 않고, 재미도 없어."
"나는 보다가 잤잖아."
혹평이 쏟아지는 자리에서 내 작품임을 알리는 일은 정말 부끄러웠다. 마치 쓰다 만 글을 세상에 내보인 기분이었다. 차라리 꿈이길 바랐지만, 숨을 수만은 없었다.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미완의 작품이어도, 이 공연을 위해 힘쓴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마저 내 작품을 사랑해주지 않으면, 이 작품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거야.’
공연은 끝났지만 나는 끝난 게 아니니까. 나는 이 미완의 작품을 언젠가 다시 완성하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곳에서 온전히 다시 펼쳐지길 고대하면서.
이제 정말 혼자서 비틀거리던 시간은 저물고, 온전히 함께 나아가는 시간 속을 걷게 되었다. 그와 손을 잡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며 하루의 속상함을 나누고, 고단함을 털어내고,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음속 깊이 웅크리고 있던 고요한 아이에게도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이제 같이 걷자."라고 말해주었다.
서로의 본가는 멀었지만, 우리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만나 함께 글을 썼다. 나는 망한 작품을 포트폴리오 삼아 새로운 뮤지컬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위해 글을 다듬었고, 그는 영화사 공모전에 낼 시나리오에 몰두했다. 조용한 카페에 나란히 앉아 각자의 노트북 키보드만 두드리고 있었지만, 전혀 불편하거나 심심하지 않았다. 우리의 열심이 모여 희망을 만드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막연한 믿음이 우리 사이를 채웠기 때문이다.
“선배, 이 가사 어때요? 좀 나아졌어요?”
“음… 나쁘지 않은데, 딱 한 번만 더 다른 표현을 고민해 봐요. 분명히 지금보다 더 좋은 문장이 나올 거예요. 누나는 할 수 있어요.”
그는 생각보다 냉정하고 칼 같은 조언자였다. 머리를 쥐어짜는 일은 괴로웠지만, 그의 날카로운 지적은 결국 나를 더 완성도 있는 글로 이끌었다. 혼자 글을 쓰던 내게 든든한 선생님이 생긴 것 같았다. 반대로 그는 감성적인 장면을 쓸 때면 내게 조언을 구했다. 서로의 장점을 나눌 수 있어 다행이었다. 톱니바퀴가 잘 맞물려 순조롭게 굴러가는 기분을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봤다.
면접을 유독 어려워했던 나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이번에는 등 뒤에 든든한 내 편이 있다는 사실을 계속 되뇌었다.
‘떨어져도 괜찮아. 네가 가진 전부를 보여주고 오자.’
그런 마음이 통했을까. 뮤지컬 문법도 제대로 몰랐던 나의 허술한 포트폴리오와 진솔한 답변은, 마침내 합격이라는 기쁨으로 돌아왔다. 행운은 또 다른 행운을 불렀다. 면접장에서 우연히 만난 학교 선배 덕분에 좋은 일자리까지 구할 수 있었다.
내게만 좋은 소식이 생겼다면 미안했을 텐데, 며칠 뒤 그의 합격 소식도 들려왔다. 영화사에서 시나리오가 좋다는 연락을 받고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고민 끝에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너무나 적은 보수, 그리고 패션이라는 또 다른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명 브랜드에 자기소개서를 냈는데 합격했어요. 내가 예전부터 관심 있던 분야가 패션이었거든요. 이 일을 하면서 글도 쓰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의 초롱초롱한 눈빛 안에 희망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우리는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꿈 많고 희망을 찾는 청춘이야.’
이 마음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멈추지 않는 한, 언젠가는 이룰 것이라는 선명한 마음의 색을 품고 우리는 새로운 문을 열어 나아갔다. 인생의 다음 챕터가 조금은 덜 고단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