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떠돌이 별 두 개, 서로의 궤도에 머물다.
주말 아침은 그동안 모자랐던 잠을 충전하라는 듯 나른하게 찾아온다. ‘일어나야 하는데, 나가서 글 써야 하는데….’ 이불속에서 꾸물거리던 나를 깨운 것은 휴대폰 진동 소리였다.
“누나, 오늘 뭐해요? 글 써요?”
마치 나의 게으름을 꿰뚫어 본 사람처럼, 그의 문자였다.
“씻고 카페 가서 글 쓰려고요.”
“그럼 저랑 같이 쓸래요? 저도 공모전 준비할 게 있어서요.”
각자 작업하면 될 것을 왜 굳이 만나자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내게 그의 조언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요. 어디서 만날까요?”
“제가 알아둔 곳으로 데려갈게요. 준비하고 집 앞에서 만나요.”
마치 이날을 기다린 사람처럼 그의 답장은 빨랐다. 시간을 축내기보다 긍정적인 기운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멋진 일이지, 생각하며 분주하게 준비를 시작했다. 괜히 좀 더 화장을 하고,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었다. 집 앞 창밖으로, 밝은 셔츠에 베이지색 반바지를 입은 그가 차창에 비친 자신의 매무새를 정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린다는 사실이, 평소의 그를 낯설게 느끼게 했다.
“선배!”
“어, 누나. 타요. 오이도에 있는 카페로 가려고요.”
“오, 오이도요? 날씨도 좋은데, 기분 좋게 작업할 수 있겠네요.”
차 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대화했다. 나의 미완성된 작품은 어떻게 되어가는지, 요즘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영화를 보는지. 어느새 도착한 오이도,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우리는 한동안 각자의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렸다. 탁, 탁- 하는 그 리듬이 고요한 음악처럼 어우러져 편안했다.
“선배, 배 안 고파요?”
“누나 배고파요? 제가 맛있는 데 알아놨어요! 거기로 가요.”
“또요? 완전 풀코스로 준비했네요?”
농담 섞인 내 말에 그가 웃었다. 그가 데려간 샤부샤부 식당은 여태껏 가본 곳 중 단연 최고였다. 어쩌면 그날의 기억이 맛을 더 극대화했는지도 모른다. 배를 채우고, 우리는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SF 영화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그는 우주와 미지에 대한 과학 이야기들을 신나게 들려주었다. 그러다 문득, 서로의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저는 불꽃같은 사랑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 사랑도 있겠지만, 그냥 오래 머물 수 있는 잔잔한 사랑을 하고 싶어요.”
사랑이 설렘의 크기로 결정된다고 생각했던 나와는 조금 다른 생각이었다. ‘처음부터 설레지 않아도, 점점 커지는 사랑도 있는 거구나.’ 밤이 깊어지고, 그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다.
“선배, 뭐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아쉬운데, 집 근처에서 산책이나 조금 더 할래요?”
이미 충분히 많이 걸었는데 더 걷자는 제안에, ‘정말 할 말이 있구나’ 직감했다. 매일같이 다니던 동네 길을 그와 나란히 걸었다.
“누나는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네? 저 당분간 연애 안 해요. 결혼 대신 글이나 쓰면서 살려고요.”
“아, 결혼… 누나가 벌써 스물아홉이긴 하죠.”
“뭐요? 내 나이가 어때서요!”
순간 발끈한 내가 웃기다는 듯, 그가 한참을 나를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저는 결혼을 생각하고 만나고 싶어요. 저도 스물여덟이고, 누나도 스물아홉이니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깜깜한 골목길이라 빨개진 내 얼굴이 보이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혼돈이 머릿속을 휘젓고 있을 때, 그가 기어코 나의 손을 내리고는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나, 누나 좋아해요. 오래 생각했고, 결혼을 생각하면서 만나고 싶어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고백을 받고 이런 감정을 느낀 게 너무 오랜만이라 실감이 나지 않았다.
“대답, 기다릴게요.”
“……좋아요.”
그는 살며시 내 얼굴을 가린 두 손을 잡고 내렸다. 아무렇지 않게 봤던 그의 평범한 얼굴에서, 그제야 빛이 나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금방 사랑에 빠진 게 아니야. 엄연히 우리는 7년의 시간을 알아온 사이였으니까.’
그 밤, 나는 우리가 함께 흘려보낸 7년의 시간을 떠올렸다.
내가 짝사랑에 헤매며 어려운 인간관계를 헤쳐 나갈 때 그는 군인이었고, 내가 사회에서 돈을 벌 때 그는 복학생이었다. 내가 다시 복학생으로 캠퍼스를 헤맬 때 그는 연애 중이었다. 그가 오랜 연애의 끝에서 슬픔을 맞이하는 동안 나는 닿지 않을 꿈을 꾸느라 방황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각자의 밤하늘에서 외로운 별처럼 떠돌던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와 서로의 궤도에 들어서게 된 걸까.
그의 고백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아득한 질문에 대한, 내 삶이 건넨 가장 따뜻하고 유일한 대답이었다. 나의 미완이었던 세상에, 마침내 온전히 쓰이기 시작한 '당신이라는 문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