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작품, 그리고 사라진 내 이름
스물아홉의 봄, 매일 아침의 지하철은 다채로운 색의 옷을 입은 무장한 얼굴들의 나열이었다. 그 틈에 껴서 나만의 세상을 만들고 싶을 때, 나는 책을 펼쳤다. 등 뒤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이 문장 위로 쏟아지는 40분. 이 고요한 시간이 쌓여 언젠가는 나만의 문장도 찾아오리라 믿던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그 평화를 깨뜨린 것은 친구가 무심코 던진 페이스북 링크 하나였다.
“이거 네가 쓴 거 아니야? 배우 오디션 공고 떴던데?”
링크를 누른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25살의 내가 수많은 밤을 새워가며 만들었던 나의 첫 뮤지컬 작품이었다. 하지만 배우를 구하는 그 공고 어디에도 작가였던 내 이름은 없었다. 그 자리에는 당시 담당 교수님의 이름과 처음 보는 스태프들의 이름만이 나열되어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뻔뻔할 수 있지?’
학생들을 노래방에 불러내 광대 노릇을 시키고, 자신에게 아첨하는 학생에게만 좋은 학점을 주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방금 전까지 고요했던 지하철의 풍경이 삽시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하루를 참아내는 동안, 마음속은 발을 동동 구르는 것처럼 철렁거렸다. 생각이 났다, 참았다, 또 생각이 났다를 반복했다.
초조한 마음에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었다. 가족에게도 말 못 할 이 무거운 이야기를, 나는 왜 그에게 가장 먼저 꺼내놓고 싶었을까. 망설임 끝에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선배님, 내 글이 내 허락도 없이 공연이 된다는데 어떻게 해요?”
“누나, 내가 운전 중이어서 이따가 다시 연락할게요.”
그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나는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
“누나, 많이 기다렸죠. 어떻게 된 건지 전부 얘기해 봐요.”
아무것도 아닌 그의 말에, 밤새 날카로웠던 방 안의 온도가 포근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한이 맺힌 사람처럼 눈시울을 붉히며 그에게 모든 것을 쏟아냈다. 내 말이 끝날 때까지 그는 한 번도 끼어들지 않고, 그저 조용히 들어주었다. 나의 숨 가쁜 이야기가 그의 차분한 목소리를 듣는 동안 조금씩 고요함에 물들어갔다. 마침내 내 작품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겠다는 작은 믿음이 생겨났다.
“누나, 일단 저작권을 먼저 등록해요. 그리고 제가 아는 선배가 비슷한 일을 겪었는데, 잘 해결됐었거든요. 그 선배 연락처 알려줄게요. 무조건 연락해서 어떻게 상황을 해결했는지 자세히 들어봐요.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도 찾아볼게요.”
그의 말에는 조목조목 힘이 있었다. 한 살이나 어린데 어떻게 이리 어른스러울까. 그런 그에게 의지하는 한 살 많은 내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에게 연락한 것, 그것이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해결 방법이었을 것이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저작권 등록을 마쳤고, 그가 알려준 선배에게도 연락해 자세한 조언을 구했다.
“네 작품을 되찾고 싶으면, 뭣 같지만 그 교수랑 직접 싸워서 작가 이름을 네 이름으로 넣으라고 요구해야 해. 안 그러면 그냥 빼앗기는 거야.”
맞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의 것이란 사실마저 사라지고 만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그게 네 작품이야! 내가 손댄 거지! 너 어디 가서 그딴 소리 지껄이지 마라! 싸가지 없이 교수한테 대들어?”
“제가 쓴 가사고, 제가 쓴 대사잖아요. 그걸 조금 바꾼다고 교수님 작품이 되나요? 교수님이야말로 억지 부리지 마세요.”
“뭐라고? 네가 어쩔 건데! 이미 시작했는데!”
“저작권 등록했고, 증거도 다 모아놨어요. 계속 강행하시면, 저도 법적으로 알아볼 수밖에 없어요.”
그의 언성이 높아질수록, 이상하게도 나의 목소리는 점점 더 차분해졌다. 내가 정당하다는 강한 믿음이 생겼다.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던 교수는, 작가 이름을 넣어줄 테니 조연출과 상의하여 작품을 수정하고 공연을 올리자고 제안했다.
나의 첫 작품과 이름을, 나는 그렇게 되찾았다.
그 후 회사를 다니며 밤에는 작품을 수정하는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주말이면 카페에 가서 대사와 가사를 쓰는 데 몰두했다. 그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내 글을 읽어주고, 의지할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누나, 우리 영화 보러 갈래요?”
“영화요?”
“네, 주말에 독립영화제 하는데 같이 가요.”
“좋아요.”
주말에 함께 본 영화의 내용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그가 영화에 대해 내게 속삭여주던 목소리, 그와 함께 있으면 어떤 일이든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편안한 느낌만이 남았다. 이토록 시끄러웠던 내 세상에, 그가 가져온 고요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어쩌면 이 모든 위기와 극복은, 내 삶의 다음 페이지를 그와 함께 넘기기 위한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변한 게 있다면, 이제 내 곁에는 온전히 의지해도 될 사람이 맴돌고 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