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뾰족한 ‘오기’가 너를 만났을 때
그날 밤하늘의 별들은 마치 응원처럼 느껴졌다. 며칠 후, 나는 몇 백 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준비한 피칭을 마쳤다. 태어나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나의 목소리를 내는 순간이었다. 모두의 눈빛과 관심이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될 때, 온몸이 떨림으로 가득 찼지만 이상하게 혼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괜찮아, 누군가가 나를 지지해주고 있어. 해낼 수 있다고 믿어주고 있어.’
그 뜨거운 순간은 내 안에 '용기'라는 이름으로 피어올랐다.
내 이야기는 마침내 스크린으로 옮겨질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환한 빛 뒤에는 언제나 짙은 그림자가 따르는 법일까. 나의 가장 빛나는 도전은, 나의 가장 뾰족한 모습을 세상 밖으로 꺼내놓는 계기가 되었다.
첫 번째 마찰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일어났다. 작가이자 공동 연출이었던 나는, 처음에 약속했던 제작비를 훌쩍 넘어서는 비용을 또다시 개인적으로 청구받았다. 이미 학생 신분으로는 벅찬 150만 원을 썼고, 학교 지원금 5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내 사비로 충당하고 있었다. 영화 제작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기에 벌어진 일인지, 아니면 정말 나의 잘못인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제작비 사용 내역을 먼저 정리해서 보여주셨으면 해요. 약속과 다르게 제 사비로 계속 충당하는 건 말이 안 돼요. 제 작품이지만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잖아요. 팀이 함께 해결해야죠.”
고요하기만 했던 아이가 처음으로 ‘내 몫’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원망 섞인 눈초리와 ‘네 작품 만들자고 다들 고생하는데 너무 빡빡하게 군다’는 수군거림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가 아끼는 동아리에서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전국대회를 준비하며 타과 스튜디오를 빌려 연습하는 날이 잦았다. 남의 공간을 사용할 때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습이 끝나면 스튜디오는 늘 쓰레기로 어지러웠다.
“연습 끝나면 각자 쓰레기는 꼭 치우고, 뒷정리도 깔끔하게 하자.”
몇 번의 잔소리는 나를 ‘불편한 선배’로 만들었다. 말만 하는 게 싫어 솔선수범으로 청소를 하는 내 모습은, 그들의 청춘을 이해 못 하는 ‘유난스러운 선배’를 만들 뿐이었다. 어느새 나는 동아리 안에서 후배들이 피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빛나고 싶어서 들어왔던 그곳에서, 나는 또다시 유별난 사람이 되었다.
그날도 스튜디오에서 잔소리 대신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영화 제작팀과의 갈등, 후배들과의 서먹함이 한꺼번에 밀려와 구석에 주저앉고 말았다. 마음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왜 나는 늘 관계가 이 모양일까.’ 나를 탓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 조용히 옆에 다가와 앉는 이가 있었다. 그였다. 수심 가득한 내 얼굴을 보았는지, 그는 그저 싱긋 한번 웃더니 아무 말 없이 함께 쓰레기를 주워 담기 시작했다. 그 침묵이, 그저 함께 있어주는 그 행동이 뭐라고 그렇게 든든했을까.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에 작은 온기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조용하던 그의 입에서 단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나는 최선을 다했잖아요. 누가 뭐래도 잘못한 거 아니에요.”
나는 나를 탓하고 있었는데, 그는 내 탓이 아니라고 했다.
“제가 잘못해서 그런 거겠죠. 그냥 좋은 게 좋은 건데….”
다시 한번 내 탓을 하자, 그가 더 단호하게 말했다. 그 위로는, 긴장감으로 가득 차 더욱 단단해지려던 나의 뾰족한 오기를 부드럽게 다독이는 듯했다.
“그건 아니죠. 잘하고 싶었던 거고, 그냥 누나가 책임감이 강했던 거예요. 처음이라 조금 서툴렀을 뿐이죠. 그래도 나는, 어쨌든 모든 걸 해낸 누나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의 말에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의 ‘오기’를, 나의 ‘뾰족함’을, 처음으로 누군가가 ‘책임감’과 ‘대단함’이라는 단어로 바꿔 불러주었다. 그는 나의 날카로운 부분을 무디게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그 날카로움에 찔리지 않고 가만히 곁에 머물며 함께 지켜봐 주었다.
그는 든든한 친구로서, 내가 관계의 서투름에서 조금씩 해방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사람이었다.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곁에서 묵묵히 응원해 주는 소중한 관계가 나를 얼마나 단단하게 만드는지, 그의 가만히 바라봐 줌을 통해 나는 서서히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