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연락, 작은 변화
해가 뜰 무렵, 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서 첫차를 기다렸다. ‘집에 가서 눈 좀 붙이고 다시 와야지.’ 졸린 눈을 비비며 안간힘으로 쏟아지는 잠을 쫓았다. 책상 앞에 앉아 글만 쓰는 줄 알았던 학교생활은,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보다 훨씬 더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했다.
아침 8시 30분, 1학년은 중앙계단에 모여 선배들의 가르침에 따라 탈춤의 기본 동작을 익혀야 했다. 마치 직장인의 아침 PT와도 같아서, 어려운 동작 하나하나를 익히려고 무진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땀을 흘리고 나면 반쯤 몽롱한 상태로 강의실에 들어가 교수님의 가르침을 머릿속에 담으려 애썼다. 아니, 솔직히는 졸지 않으려 눈을 부릅뜨고 있을 뿐이었다.
밥 먹을 시간조차 아까울 정도로 졸음이 쏟아졌다. 하지만 강의에는 과제가 따르는 법. 집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학교 도서관에 남아 과제를 하나씩 해치워야 했다. 그렇다면 밤에는 무얼 했을까. 바로 무대 작업이었다. 직접 망치로 못을 박아 무대를 만들고, 소품 하나하나 손으로 뚝딱이며 완성해야 했다. 첫 작품에서는 연출을 맡았다. 하지만 조의 여주인공이 힘들어하는 바람에, 팔자에도 없는 배우 역할까지 떠맡게 되었다. 낯가림과 나서기 싫어하는 마음이 남들의 100배는 되는 내가 말이다.
얼굴에는 사춘기 소녀처럼 뾰루지가 돋아났고, 다크서클은 턱밑까지 내려온 듯했다. ‘이러다 작가가 되긴 하는 걸까?’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몰아붙이는 학교생활에, 남들 다 한다는 캠퍼스의 ‘풋풋한 연애’란 단어는 사치였다. 내 몰골을 본 남자 동기들의 “무섭다”, “어두워 보인다”는 반응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렇다고 고백을 안 받아본 건 아니지만, 그때는 “세 살이나 늦게 입학했는데, 세 살 어린 남자애랑 어떻게 연애를 해. 나도 염치가 있지.”라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나를 지금의 남편도 ‘차갑고 어려운 사람’으로 여겨 말조차 잘 걸지 않았다고 한다.
마치 학교의 모든 일을 짊어진 사람처럼 뭐가 그리 바빴을까. 그 와중에 나 좋다는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지, 허구한 날 짝사랑만 했다. 어쩌면 나는 다가오지 않을 사람만 골라 좋아하며, 관계의 책임을 미리 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내가 2학년이 되어 탈춤 동아리 후배들과 연습을 하던 시기였다. 전국대회를 앞두고 밤늦게까지 연습을 마친 뒤, 모두와 헤어져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모르는 지역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는 남자 동기들이 많았기에, 그중 한 명이겠거니 짐작했다. ‘그런데 누구지? 나한테 전화를 걸 만큼 정을 나눈 동기가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누나, 잘 지내죠? 저 준영이에요.”
“아, 준영 선배! 어떻게 된 거예요? 군대 갔다면서요. 왜 아무 연락도 없이 갔어요?”
“그냥, 조용히 다녀오려고요. 누나, 부회장 일 힘들죠? 문득 생각나서 연락했어요.”
정말 느닷없는 전화였다. 남편과 나는 그전까지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눠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가 나를 어려워한 탓도,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은 탓도 있었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공감하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문득 내 생각이 났다니. ‘군대가 정말 힘든 곳이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왜 내가 생각났겠는가. 이것이 남편과 나의 의미 있는 첫 대화의 순간이다. 나중에 연인이 되고 나서 물어보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로 네 생각이 났어. 내가 부회장이었는데 아무것도 못 도와주고 그냥 온 게 미안했거든. 얼마나 힘들까 싶었어.”
무조건적인 내 편이 되어준 나의 선배이자 친구. 그 전화 한 통이, 단단하기만 하던 나의 '오기'에 '열정'과 '좋아함'이라는 새로운 색을 더하는 시작점이 될 줄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안정감을 품에 안겨줄 그는, 그렇게 불꽃 없이, 서로에게 알맞은 온도로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