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먹고살기 힘들다는 맞는 말
다사다난했던 결혼식이 끝나고, 돈을 아끼기 위해 몇 번의 경유를 거쳐 도착한 스페인의 하늘은 눈부셨다. 미세먼지로 뿌연 한국과 달리, 새파란 하늘이 우리의 결혼을 축복해 주는 듯했다. 고된 여정의 피로가 하늘을 보는 순간 모두 사라질 만큼, 우리는 온전히 다른 세상에 와 있었다.
하지만 신혼여행 첫날, 숙소에서 짐을 풀며 본 짧은 기사와 동영상이 우리의 삶을 뒤흔들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중국에서 무슨 바이러스가 생겼다는데, 사람들이 막 쓰러진대.”
“설마, 요즘 세상에 전염병이 금방 퍼지겠어?”
“걱정 마. 우리는 지금을 즐기자! 신혼여행이잖아!”
그때는 정말, 그저 우리와는 상관없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렵게 구한 우리의 신혼집은, 우리가 가져본 첫 둘만의 공간이었다. 함께 고른 가구와 식기, 소박하지만 소중한 것들로 채워진 그곳에서 우리의 다정한 시간은 시작되었다. 아침이면 도시락을 싸주고, "잘 다녀와, 오늘도 힘내자!"는 응원의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결혼하길 참 잘했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세상이 멈추기 시작했다. ‘코로나19’라는 이름이 생긴 전염병은 한국에서도 퍼지기 시작했고, 핸드폰에는 재난 문자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우리가 조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선생님, 아이들이 등교할 수 없어서 수업을 취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학교도 진행이 어렵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모든 연극 수업이 끊겼고, 나는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었다.
남편의 회사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이는 모든 문화 사업이 중단되었고, 준비하던 축제와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일복이 터진다며 웃었는데, 2020년의 우리는 남편의 월급만으로 버텨내야 했다. 버티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숨만 쉬며 사는데도 돈은 계속해서 빠져나갔다.
“그거 꼭 사야 했어? 정말 필요한 거 맞아?”
“필요하니까 사지. 나도 생활비 정말 쥐어짜서 쓰는 거야.”
“우리 아껴야 하는 거 알잖아.”
“지금 상황에 어떻게 돈을 모아. 선배 혼자 버는 거, 나도 힘들어.”
날카로워진 말들이 오갔다. 신혼의 달콤함은 공포와 불안 앞에서 속절없이 녹아내렸다. 남편이 짊어진 무게를 알면서도, 아무 대책 없는 내 처지가 서글펐다. 차라리 돈 잘 버는 기술이나 배울 걸, 바보같이 글을 쓰겠다고 덤볐던 과거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어색한 아침 인사가 오가고, 침묵이 저녁 식탁을 채웠다.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두려움에, 우리는 아이에 대한 계획도 미루기로 했다.
“이런 때에 아기가 태어나면 너무 고생할 것 같아.
우리, 나중에 생각하자.”
“그래.”
짧은 남편의 대답이, 보이지 않는 작은 가시처럼 마음에 박혀 계속 따끔거렸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내게 그가 다가와 말했다.
“우리, 정리하고 산책 좀 할까?”
그의 밤 산책 신청이 반가웠다. 나도 함께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걷던 집 근처 길로 나섰다. 그가 먼저 손을 내밀어 내 작은 손을 꽉 잡았다. 마치 놓치면 안 된다는 듯이. 마스크를 쓴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주황색 가로등 불빛들이 우리의 지친 현실을 잠시 따스하게 비춰주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버티자. 나도 곧 일자리 구할 수 있을 거야. 공모전도 준비해서 내면 상금도 받을 수 있고.”
내가 먼저 침묵을 깼다.
“오, 상금 받을 만큼 자신 있나 보네?”
“뭐? 나 무시하지 마라. 내가 또 하면 한다.”
오랜만에 장난스러운 대화가 오갔다. 그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날카롭게 말해서 미안해. 우리 같이 노력하자.”
“응, 나도 미안해. 선배가 버텨줘서 고마워.”
대화하며 걷는 길의 가로등은 어쩐지 더 밝아 보였다. 하지만 문득,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왔다.
“선배, 우리 결혼 괜히 했나? 좀 더 돈 많이 벌고 할걸.”
“아니야. 이런 일이 생길 줄 누가 알았어? 오히려 둘이니까 같이 버티는 거지.”
그가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말이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게, 정말 좋아서 하는 거라고. 안 될 이유가 수백 가지여도 그럼에도 하는 거. 그건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거든. 그래서 내가, 그럼에도 당신이랑 결혼한 거야.”
그의 말은 언제나 나를 움직이게 한다. 그날 이후, 나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다. 짧은 라디오 드라마를 쓰고, 청소년극 공모전에 참여하고, 태양광 사업 보고서까지 작성했다. 시간이 흘러 비대면 수업이 생겨나면서, 적은 돈이라도 원래 하던 연극 수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무기력했던 삶에 천천히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팍팍한 현실이 금방 나아지진 않았다. 하지만 변한 것이 있다면, 우리의 밤 산책이 다시 매일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공모전에 떨어진 날, 우리는 더 이상 날을 세우며 다투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고 서로의 손을 잡은 채, 가로등 불빛을 길잡이 삼아 걸었다. 서로의 고단한 하루를 들어주고,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며. 우리는 그렇게 함께, 우리만의 방식으로 그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