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만화

지나온 나는 지금의 나, 그리고 멈추지 않을 나

by 지안의 문장


가끔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를 나를 떠올리곤 한다. 그늘이 따라다녔지만, 지금은 흉내 낼 수 없는 해사한 웃음이 그려진 20대의 사진 속 내 모습을 볼 때면 그렇다. 그날들의 무모함과 도전, 못해도 그냥 저질러버렸던 오기와 열정의 시절. 문득, 그저 달려가기로 작정했던 20대의 나를 다시 마주하고 싶어지는 날이 있다.


교수님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과에서 아웃사이더여도 나는 그저 써 내려갔다. 돈이 없어 노트북을 살 수 없던 때였다. 그러면 그냥 집에서 밤새 그 뚱뚱한 컴퓨터를 붙잡고 썼다. 그런 날이면, 잠결에 내 방문을 연 엄마의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아직도 이러고 있어? 그렇게 해서 뭐가 된다고….

어떻게 매일 쓸 게 떠올라?”

“엄마, 왜 깼어. 얼른 가서 자. 나도 빨리 끝내고 잘게.”


엄마의 말처럼, 고작 스물세 살의 나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마르지 않았다. 나의 지난한 어린 날의 고단함을 다른 인물의 삶에 녹여내고 있었다. 집을 떠나면 가방에서 공책과 펜을 꺼내 학교 도서관에 앉았고, 시간이 없을 때는 과 공용 컴퓨터 앞에 앉아 과제를 빙자해 글을 썼다. 그럼에도 싫지 않았다.


“안 지쳐? 힘들지 않아?”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지칠 여유가 있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 턱걸이로 들어왔잖아. 뭐라도 해야지.”


잘한다는 생각보다, 간신히 매달린 동아줄에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더 컸다. 이 시간들을 버텨내면, 조금은 빛나는 나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글을 쓰고 탈춤만 추며 청춘을 만끽할 수는 없었다.


‘돈이 없다.’ 이 사실은 나를 종종 부끄러운 선택의 기로에 서게 했다. 이를테면, 동기나 선배들이 "밥 먹자"라고 부를 때, 밥 한 끼 사 먹을 돈이 없어 "선약이 있다"며 어색한 거짓말을 하고 빈 강의실이나 도서관으로 숨어들었던 날. 아르바이트를 해도 감당이 안 되는 등록금 때문에 동생에게 돈을 빌렸던 일. 친구에게 돈을 빌렸다가 겨우 갚았던 일. 그 작은 거짓말들이, 그 초라함이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던 그 마음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돈이 없어도 해낸 사람들이 있잖아.’ 이 수식어가 붙은 사람들은 나와 같은 청춘을 겪으면서도 올바른 방식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성공의 트로피도 진열했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성공의 트로피도 없고, 나아갔지만 되돌아오거나 제자리걸음을 했던 순간의 진실만이 남았다.


부끄러움의 얼룩이 묻은 청춘임에도, 그날의 내가 달려와 지금의 나를 만든 것에 후회보다는 고마움을 느낀다. 그 시절의 무모함과 오기, 열정, 잘못과 실수가 모여 30대의 내가 만들어졌다. 지금도 여전히 ‘돈은 없지만’, 청춘의 잘못과 실수는 걷어내고 무모함과 오기, 열정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그날들의 나를 30대의 몸에 품고, 감성과 시선은 더 풍요롭게 가꾼다. 더욱 깊어진 눈으로 삶을 돌아보고, 주변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작은 것에 감사한다. 그렇게 20대에서 30대로, 나는 나의 청춘을 계속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내게는, 그때는 여유가 없어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세상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준비가 되어있다. 실패는 실패로 받아들이되 좌절하지 않아도 괜찮으며, 20대의 모든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그때의 내가 얼마나 빛났는지를 바라봐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나온 나는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멈추지 않고 다음의 청춘으로 넘어갈 것이다. 이무진의 노래 <청춘만화>의 가사처럼.


지나면 아련한 만화, 그래서 찬란한

우리가 기다린 미래도 우릴 기다릴까

분명한 건 지금보다 환하게 빛날 거야

아직 서막일 뿐야


어쩌면 우리는 매번,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자랑스러워하기를 기대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매 순간이 '서막'임을 잊지 말자. 그의 노래는 이렇게도 말한다.


“멈추지 않으면 도착해.”


우리의 청춘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가 그리는 미래는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나는, 무모함과 오기, 열정을 그러모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다음의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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