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아파봐야 알 수 있는 것들
작은 돌부리에 넘어져 무릎이 까져도 아프다. 하물며 마음에 구멍이 뚫리고, 눈물이 쏟아지며, 어둠에 갇히는 아픔은 오죽할까. 하지만 그렇게 아파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진정으로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진실 같은 것들 말이다.
내게는 평생을 따라다닌 단 하나의 두려움이 있었다. ‘인간관계’, 그중에서도 ‘버려지는 것’이었다.
그 첫 번째 넘어짐은, 고등학생 때였다.
친구를 사귀는 일은 늘 어려운 과제였다. 먼저 다가가 말을 거는 것은 상상도 못 했고, 누군가 다가와도 나를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는 방어적인 태도 때문에 가까워질 수 없었다. 그런 내게 먼저 다가와 준 친구들이 있었다. 내 일상을 궁금해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첫 존재들이었다. 너무나 고마운 마음에,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너희는 정말 소중한 친구야. 고마워.”
늘 외롭던 열일곱의 나는, 넘치도록 진심이었다. 그 넘치는 진심이 때로는 상대를 버겁게 했던 걸까. 2년의 시간이 흐른 뒤 열아홉의 나는,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다시 혼자가 되었다.
“누구나 항상 너를 좋아할 수만은 없는 거잖아.”
그 말을 끝으로, 나만 그들의 세계에서 멀어졌다.
한동안 나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어떤 실수를 했지?’ 외로움을 위로하기보다, 잘못의 원인을 내 안에서만 찾았다. 결국 답은 찾지 못한 채, ‘다음번엔 더 조심해야지’ 하는 다짐으로 나의 첫 우정은 끝이 났다.
두 번째는,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워준 만남이었다.
그렇게 20대의 나는 얼마나 날카롭고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었을까. 타인을 대하는 모습은 마치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거렸다. 말실수를 할까 봐, 또 상처받을까 봐 단단한 선을 긋고 그 밖으로 나가길 꺼렸다. 그런 내게 또다시, 먼저 다가와 준 친구가 있었다.
“너도 여기 살아? 우리 시간 맞으면 같이 다니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번엔 괜찮을까? 그냥 혼자인 게 낫지 않나?’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나는 용기를 내어 그 친구와 함께 등하교를 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가온 친구는, 지금까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아주 나중에 나의 첫인상을 이렇게 말했다.
‘뭐야, 재수 없네. 먼저 친해지려 하는데 뚱하기나 하고.’
그런 생각을 했으면서도, 그녀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다가와 준 것이다. 나중에 그녀는 이런 말도 했다.
“너처럼 좋은 친구를 만나서 나도 고마워. 너로 인해 나도 성숙해질 수 있었어.”
그 순간, 고등학생 시절의 모든 슬픔과 자책이 눈 녹듯 사라졌다.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구나.’
그리고 마지막 넘어짐은, 십 년 만에 찾아왔다.
그 고마운 마음을 안고, 편입한 대학에서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진심을 다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십 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그 관계 속에서 다시 길을 잃고 있었다. 내가 힘들 땐 외면하면서,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남편이었다.
“그 친구들은 너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아.”
“그래도 필요할 때 찾아주는 친구가 나라면 괜찮지 않아?”
“하지만 정작 네가 힘들 땐 아무도 네 얘기를 들어주지 않잖아. 그건 친구가 아니야.”
남편의 말이 맞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연인과 헤어졌을 때, 가족에게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등 자신들의 힘든 시간에는 내게 기대려 하면서, 내가 진정으로 힘든 시기를 지날 땐 내 아픔에 공감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지금의 아기를 만나기 전, 나는 임신을 한 적이 있었다. 어렵게 가진 아이라 기쁨이 컸고, 태어날 아기를 너무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아기는 아직 우리에게 올 준비가 안 되었는지, 두 달이 채 되기 전에 유산되었다. 아기의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았고, 거대한 슬픔이 나를 잠식했다.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기 두려워, 슬픔을 내 안에 묻어두고 일상을 되찾으려 애쓸 무렵에야 친구들에게 알렸다. 그들 중 누구도 나의 아픔을 위로하거나, 함께 슬퍼해주지 않았다. ‘자신의 일이 아니니까 그럴 수 있지.’ 애써 그렇게 넘기려 했다.
그다음 사건은 외면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어렵게 다시 임신을 했을 때, 나는 또 아기를 잃을까 두려운 마음에 출산 때까지 거의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 기쁜 나머지 남편이 자신의 동기들에게 슬쩍 알린 소식을 전해 들은 그 친구들은, 어떻게 자신들에게 말을 하지 않았냐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 대목에서 나는 깨달았다.
‘아, 나의 가장 큰 아픔 따위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구나.’
그럼에도 10년의 시간이 아까워 관계를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오만이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의 말처럼,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아프지만, 넘어져 생긴 상처를 그대로 들여다보고, 딱지가 앉도록 내버려 둬야 했다.
“괜찮으니까, 이제 의무감으로 연락하지 않아도 돼.”
그 말을 끝으로, 나는 10년간 이어온 관계를 정리했다. 군중 속의 외로움을 그만 털어내고 싶었다. 오롯이 내가 되고 싶었다.
남편이 내게 해준 말이 있다.
“너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은, 네가 애쓰지 않아도 네 곁에 있어. 그런 사람이 몇 명 없어도, 항상 곁에 있다는 게 중요한 거야.”
넘어지고 아파 보니, 차라리 아파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수히 많은 것들에 넘어지지만, 사람에게 넘어지는 순간이 가장 아프다. 하지만 그 아픔 끝에 나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눈과, 소중한 사람들을 더 아끼는 마음을 얻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나의 진심을 전할 가치가 있고, 진심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얻었다.
그거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