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지면 아프다 2

식물 읽기 그리고 관계 잇기

by 지안의 문장


나는 오랫동안 무언가를 망가뜨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식물이든, 관계든 내 손을 거치면 오래가지 못했다. 특히 인간관계에 깊이 상처받은 후로는, 무언가에 마음을 주고 관계 맺는 일 자체가 버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남편이 결혼 2주년 기념이라며 손바닥만 한 토분에 담긴 작은 고무나무 화분을 내밀었을 때, 갓 돋아난 듯 윤기가 흐르던 짙은 초록색 잎사귀를 보니 덜컥 겁부터 났다. 이름은 ‘행운’이라고 지어주었지만, 과거 내 손에서 시들어갔던 식물들과 실패의 기억이 겹쳐 이 작은 생명마저 또다시 잃게 될까 봐 두려웠다. 어린 잎사귀가 ‘행운’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무성히 가지를 뻗을 수 있을까. 나의 서투름 때문에 이름에 담긴 행운마저 사라지게 할까 봐 마음이 무거웠다.


“작은 고무나무가 정말 커다랗게 자랄 수 있을까?” 하는 우려는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그리고 또다시 관계 맺는 일에 대한 불신이었을지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이해하고 관계를 꾸준히 이어가는 일은 식물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내게 두렵고 서툰 일이었으니까.


우려는 현실이 되는 듯했다. 고무나무를 처음 키우던 나는 그저 사랑만 듬뿍 주면 잘 자랄 거라 믿고 매일같이 물을 주었다. 그러다 보니 잎사귀는 속절없이 누렇게 변해갔다. 생기를 잃고 축 처진 모습에 마음이 내려앉았고, 손끝으로 스치기만 해도 힘없이 툭, 떨어져 내렸다.


그 힘없는 잎사귀를 보는데, 문득 한 친구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일방적으로 마음을 쏟아붓다 그만큼 돌아오지 않자 혼자 좌절했던, 나의 서툰 애정 방식 때문에 멀어졌던 친구였다. 애정을 쏟는 데도 적절한 방식이 필요한 법인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이건 고무나무를 몰랐던 탓이 아니었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사랑하는 대상을 제대로 ‘읽어주지’ 못했던 것이다. '왜 나만 이렇게 서툰 걸까? 사랑을 주는 것조차 내겐 왜 이리 어려운 숙제일까.' 하는 자책이 밀려왔다.


그제야 부랴부랴 방법을 찾아 나섰다. <물은 일주일에 한 번 흙이 마르면 흠뻑 주고, 햇빛과 바람은 골고루 쐬어줘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실천한 뒤에야, 행운이는 5년째 우리 집에서 튼튼히 자라고 있다. 서툴렀지만, 대상을 제대로 알아가려는 진심이 비로소 뿌리를 내렸나 보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그들을 읽고, 가꿔온 것들이 있다. 오랜 친구는 종종 안부를 물어주면 “네가 이렇게 전화해 줄 줄 몰랐어.”라며 환하게 웃는다. 반면 남편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땐 조용히 기다려주는 게 사랑임을 알아간다. 힘들 때 말없이 곁을 지켜주자 친구는 “네가 그냥 옆에 있어줘서 힘이 됐어.”라며 온기를 나눠주었다. 이런 순간들이 쌓이며 관계는 단단해진다.


물론, 제대로 읽지 못해 시들어버린 관계도 있다. 하지만 이젠 그게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음을 안다. 그저 서로를 잘 몰랐기에 벌어진 일일 뿐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서로의 화분인지도 모른다. 너무 무관심해서도, 과하게 영역을 침범해서도 안 된다. 가장 적당한 마음과 시선, 목소리를 나누며 서로의 성장을 돕는다.


넘어지면 아프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더 진심으로 서로를 들여다본다. 두려워도 내 모습을 보이며 그 사람에 맞게 대화하고, 고마움을 표현하고, 기다림으로 마주했다. 그러니 서툰 나를 기다려주며 관계를 이어주는 사람들이 곁에 남았다. 나 역시 그들 곁에서 새로운 가지를 뻗어낸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의 화분이 되어주기를, 나의 화분을 기꺼이 내어주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행운이의 가지 끝에 자그마한 새순이 돋았다. 서툴지만, 나의 관계들도 저 새순처럼 더디더라도 분명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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