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 1

결핍을 만나는 마음

by 지안의 문장


"엄마, 개미는 왜 줄을 서서 가요?"

"새는 어디로 날아가는 거지? 누굴 만나러 갈까?"

"낙엽은 왜 떨어지는 거예요?"


햇살 좋은 날, 집 근처 놀이터로 나가는 길. 아이는 그 무엇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흙바닥에 코를 박을 듯 쪼그려 앉아 작은 개미들의 행렬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분수에 내려앉은 새가 목을 축이고 떠나면 어디로 날아가는지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바람에 쏟아지는 낙엽을 주워 휙- 날려보고는, 낙엽처럼 제 몸을 휙- 돌려보기도 한다.


"음... 개미가 친구들이랑 집을 지으려고 하나?"

"아빠 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날아갔을까?"

"바람이 같이 놀자고 손을 흔들었나 봐."


아이는 나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더 많은 궁금증을 키워간다. 그 작은 우주 안에는 어떤 목적도, 효율도 없었다. 그저 세상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만이 가득했다. 아이의 그 투명한 눈빛을 마주하는 날이 늘어갈수록, 나는 까맣게 잊고 있던 대학 시절 한 교수님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성공한 덕후처럼 그분의 모든 강의를 찾아 듣던 시절이었다. 나는 나른한 오후 같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한 마디 한 마디를 종이에 꾹꾹 눌러썼다.


“결핍이 있어야 해요. 결핍은 어린아이의 동심과 같습니다. 아이의 호기심은 늘 궁금함으로 가득 차 질문이 쌓입니다.”


오래된 공책에 필기한 교수님 강의의 일부는 이렇다.


결핍에 대한 절실함이 있어야 욕망이 생기고, 그 욕망이 있어야 구체적인 상상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 상상력을 믿어야 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믿어야 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자신의 결핍된 것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결핍을 찾고,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이 예술가가 될 수 있는 방법이다. 인간은 슬픈 존재이기에 너그러워져야 한다. 인생의 슬픔을 알아야 슬픔을 견딜 수 있다.


예술이란, 결국 슬픈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교수님의 강의는, 내 안의 결핍이 단순한 부족함이 아니라 세상을 알아가고 표현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궁금함이 없으면 마음은 멈추고 동심은 사라지니,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먼저 세상을 궁금해해야 한다고.


하지만 교수님의 말과 달리, 20대의 나는 결핍을 궁금해할 여유조차 없었다. 빵집에서 밀가루를 묻힌 채 돈을 벌고, 텅 빈 무대 앞에서 실패를 곱씹던 그 시절. 나는 살아남기에 급급했을 뿐, 세상의 작은 반짝임을 들여다볼 마음의 틈이 없었다. ‘내가 세상을 제대로 궁금해한 적이 있었을까?’ 그때의 나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나의 아이는, 바로 내 곁에서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작은 개미가 마른 지렁이를 끌고 가는 여정, 민들레 씨가 바람에 실려 떠나는 여행, 엄마가 ‘부산에 가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까지. 가장 위대한 예술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작은 개미 한 마리를 궁금해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가만히 아이의 동심에 귀 기울이며, 나는 오늘 다시 나의 결핍을 발견한다. 궁금함이 하나씩 늘어가는 하루를 기록해 본다. 사람들의 마음은 무엇으로 위로받는지, 과거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지, 행복은 무엇으로 채워지는지. 묵혀두었던 질문들을 꺼내어 마음의 결핍을 채워가려 한다. 이 작은 궁금함들이 모여 나의 동심을 다시 만나게 하고, 나를 드러내 주기를 바란다. 나의 가려진 슬픔을 마주하고, 또 슬픔을 안은 누군가를 위로하는 예술가의 마음을 찾아가는 여정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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