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먹고살기 힘들다는 맞는 말
밤공기가 차갑던 어느 날, 그는 나를 한 바닷가로 데려갔다. 과거에 내게 사귀자고 고백하기 위해 한참을 걸었던 바로 그곳이었다. 그때의 우리는 작은 차 한 대도 없었기에, 시간제로 빌릴 수 있는 경차 한 대를 렌트해서 떠났다.
“선배, 어디 가는 거예요? 시간도 늦었는데.”
“할 말이 있어서요. 가보면 누나도 어딘지 알걸요.”
눈앞은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생각처럼 낭만적인 장소도 아니었다. 낭만보다는 스릴러 영화의 스산함이 더 어울리는 밤바다였다. 하지만 감수성 풍부한 그는 눈앞의 풍경보다 기억 속 감정을 더듬는 듯했다.
“내가 누나한테 고백한 날, 밥 먹고 여기서 외계인 얘기하면서 한참을 걸었잖아요. 그때 나는 머릿속으로 언제 고백해야 하나 타이밍만 재고 있었는데, 누나는 엄청 신나서 외계인이 어쩌고, 영화가 어쩌고 얘기를 끊임없이 했었죠.”
“맞아요. 그날 진짜 재미있었는데.”
“그때 누나랑 있는 시간이 참 좋았어요. 이 사람이랑 평생 함께해도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나도 선배랑 같이 얘기하고, 걷고, 이런 거 다 좋아요.”
“우리, 결혼해서도 이렇게 손잡고 걸으면서 얘기 많이 나눠요.”
그의 결혼 약속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시간을 조금 더 음미하고 싶었다. 깜깜한 세상 속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파도 소리 위로, 그의 고백이 깊이 스며들었다.
“우리, 이제 어떻게 먹고살지?”
3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약속한 그날 밤,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이었다. 방금 전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묵직한 현실감이 찢어진 문풍지 사이로 매서운 바람처럼 들이닥쳤다.
나는 연극 수업 강사로 지역 내 초등학교에서 조금씩 입지를 굳히고 있었다. 일주일 내내 수업이 가득했고, 주말에는 지역 축제 스태프로 일하며 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늘려나갔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이 바쁨이 좋았다. 작가로서 겪었던 실패의 쓰라림을 잊게 했고, 스스로 생활을 꾸려간다는 안정감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도, 예술가의 길 위에서 부자가 되기는 어려웠다.
그는 더 치열했다. ‘문화 기획자’라는 새로운 직업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가족의 품을 떠나, 결혼을 위해 내가 사는 낯선 지역으로 먼저 이사를 와야 했다. 아직 신혼집을 구하지 못해, 그는 두 달 동안 내가 살던 엄마 집에 함께 머물렀다.
평생을 살던 집을 떠나, 결혼도 전에 아내가 될 사람의 집에 얹혀사는 것이 그에게 얼마나 어색하고 어려운 일이었을까. 그는 내색 한번 하지 않았지만, 나는 가끔 그의 지친 뒷모습에서 낯선 도시에 홀로 선 청년의 외로움을 보았다. 함께하는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고 있는 그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작은 내 방 한 칸, 그 비좁은 공간에서 우리는 늦은 밤 마주 앉아 낡은 공책 위에 우리의 미래를 그렸다.
“누나, 이번 달에 나 200만 원 벌었고, 누나는 280만 원 벌었으니까….”
“여기서 생활비 40만 원 빼고, 내 학자금 대출 갚고 나면….”
한 줄 한 줄 숫자를 더하고 빼는 그의 손가락 끝에서 우리의 막막한 현실이 보였다. 우리는 결혼식 비용은 물론, 당장 함께 살 집의 전세 자금도, 그 안에 채워 넣을 숟가락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공책 위를 맴도는 그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한숨 섞인 질문을 던졌다.
“선배, 우리… 정말 결혼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그러잖아. 사랑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그가 펜을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지친 기색 대신, 단단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
“‘예술로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 맞는 말이지. 근데, 우린 애초에 그걸 몰랐던 거 아니잖아. 먹고살기 힘들게 시작하면 좀 어때.”
“…….”
“우리가 큰 변화를 원했던가? 하고 싶은 일 서로 지지해 주고, 작은 집에서 서로에게 안식처가 되어주는 거. 나는 그거면 충분한데, 누나는 아니야?”
그의 말에, 내 마음을 짓누르던 무거운 돌덩이가 조금은 작아진 것 같았다.
결혼 준비가 한창이던 어느 저녁, 오랜만에 엄마와 마주 앉아 저녁을 먹었다. 엄마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참 다행이다. 둘 다 착해서, 잘 살아갈 거야.”
“그래야지. 열심히 잘 살아봐야지.”
“엄마가 너희 결혼하는데 많이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해.”
“괜찮아. 지금도 많이 도와줬어. 원래 알아서 하는 거지 뭐. 미안해하지 마.”
엄마의 걱정 어린 눈빛 속에서, 나는 우리의 결혼이 비단 우리 둘만의 무게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결혼.’
이것이 우리가 택한 삶의 변화였다. 숨 쉴 틈 없이 일하며 눈앞의 현실을 쫓아야 할지라도, 그 길 위에서 우리가 “함께”라는 사실이 가장 큰 기쁨이었다.
20대 내내 제대로 된 여행 한번 가보지 못했던 우리는, 30대가 되어 떠난 신혼여행에서 처음으로 해외의 바다를 보았다. 그렇게 둘만의 이야기가 하나씩, 느리지만 단단하게 적혀가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예술을 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남들보다 조금 더 아등바등 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았다. ‘함께’ 아등바등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생각했다. 언젠가 이 지독한 가난과 절박했던 사랑의 시작을, 웃으며 글로 쓸 날이 오기를. 이것이 바로 나의 다음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