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를 착하다고 한다.
와이프가 모임에 안 나와도,
아이랑 나만 참석해도,
불만을 말하지 않는다고.
그러면서 “요즘 남자 중에 보기 드물다”
라고 덧붙인다.
나는 웃는다.
웃는 표정이 익숙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좋은 사람처럼 보이니까.
하지만 어느 날 거울 앞에서 생각했다.
진짜 착한 걸까,
아니면 그냥 회피하는 걸까?
내가 하는 ‘참는 행동’이 정말 배려일까,
아니면 책임을 피하는 핑계일까?
딸아이는 어느새 친구들과 노는 걸 즐기게 됐다.
특히 동료네 딸들과.
성격도 다르고 말도 느린 우리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 주는 건 그 아이들뿐이었다.
“우리 딸,
너네 딸들이랑 노는 게 제일 재밌대.”
내가 말하자, 동료는 웃으며 말했다.
“얘네 엄마가 그러더라.
너희 애가 조용해서 더 좋다고.
감정 기복이 없고 말 예쁘게 한다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우리 딸이 조용한 건 자란 환경 탓도 클 텐데.
내가,
우리가 만들어낸 어떤 공기.
아내는 여전히 집에만 머문다.
밖에 나가자고 하면 고개를 젓는다.
딸아이가 “바닷가 보고 싶다”라고 말해도
“다음에 가자”는 말로 넘어간다.
그 '다음'은 언제일까?
그건 아내도 모를 거다.
내가 대신 딸을 데리고 나가고,
사진도 찍어서 보여준다.
“이렇게 놀았어.”
“애는 잘 있었어.”
짧은 말, 피곤한 얼굴. 그리고 침묵.
나는 더는 아내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참는 게 아니라, 포기한 건 아닐까?
그날 밤, 딸아이를 재우고 TV를 켰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부부가 함께 여행을 가는 장면이 나왔다.
남편이 아내의 손을 잡고, 아내가 미소 지었다.
나는 그 장면이 낯설었다.
저게 연기인지 실제인지조차 헷갈렸다.
문득 아내의 손이 떠올랐다.
아직 따뜻할까?
우리는 마지막으로 손을 잡은 게 언제였을까?
딸이 태어나고, 손잡을 틈은 사라졌다.
그게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감정이 없어서였다는 걸
나는 최근에야 인정하게 되었다.
동료들과의 가족모임이 또 잡혔다.
딸은 신이 났고, 나는 준비를 했다.
아내에게 슬쩍 물었다.
“같이 갈래?”
“아니. 난 안 가.”
그 말은 이제 습관처럼 건조했다.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아내에게 말했다.
“너, 예전엔 여행 좋아했잖아.
왜 이렇게 된 건지 말해줄래?”
아내는 나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미안함도, 슬픔도 없었다.
그냥, 무력한 포기 같았다.
“그냥... 나는 이게 편해.”
나는 그 말이 이상하게 서운했다.
편하다는 건,
지금 이 고요하고 단절된 상태가
익숙해졌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 없이도
괜찮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참아왔던 것들은 전부,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줄 알았다.
하지만 사실은,
무너질 용기가 없어서 회피한 것이었다.
대화를 시작하면 싸울까 봐.
질문하면 아내가 울까 봐.
내가 떠나게 될까 봐.
그래서 난 참는 척을 했다.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했다.
그런데 그게 우리를 더 멀어지게 한 걸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자주 상상한다.
다시 연애 초로 돌아가면 어땠을까?
아내가 웃던 모습,
갑자기 어딘가 떠나자고 하던 말투,
늦은 밤에도 나가고 싶다고 하던 눈빛.
그 모든 게 진짜였다는 걸 기억하면,
지금의 아내는 낯설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참는다.
아니,
참는다는 말로 포장된 회피 속에 살아간다.
진짜 착한 사람은, 참는 사람이 아니라
물어보는 사람이고,
부딪히는 사람이고,
함께 아파해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 번도
진짜 좋은 남편이었던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