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재우던 중이었다.
갑자기 딸아이가 작고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빠, 엄마는 우리 안 좋아해?”
그 한마디가 가슴 한복판을 툭,
건드렸다.
뻐근하고 답답했다.
“그런 말 왜 해?”
나는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맨날 혼자 있고, 우리랑 안 놀잖아.”
딸의 대답은 너무도 똑똑하고 또렷해서,
차라리 아팠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했을까.
엄마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했을까?
그런 말조차 내 안에서 확신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소파에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아내는 지금 여기, 우리 곁에 있는 걸까?
몸은 함께 있지만,
마음은 이미 멀리 떠나버린 건 아닐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함께 시간을 쌓아가고 있지만
어쩌면 마음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천천히 멀어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결혼 전, 아내는 늘 빛났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중심이 되었고,
언제나 밝았다.
단풍 든 가을날 갑자기 차를 몰고
멀리 떠나는 모험도 즐겼다.
그럴 때면 그녀는
나보다 더 생기 넘치고 자유로웠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달라졌다.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세상으로부터 멀어졌다.
사람들과의 연락도 끊고,
여행도 멀리했고,
취미도 버렸다.
나와 딸과 함께 있는 시간에도,
웃음 대신 침묵이 자리했다.
나는 그 변화를
‘육아의 피로’ 혹은
‘성격의 변화’ 정도로만 여겼다.
그 속에 숨겨진 단절과 고통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너, 요즘 딸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엔 무심한 말투였지만,
입에서 나오는 순간 심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아내는 처음에는 고개를 돌리고 침묵했다.
눈길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 침묵은 마치 마음의 벽처럼 느껴졌다.
“자기, 엄마가 우리 안 좋아한대.”
내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그 말 듣는데 숨이 막히는 것 같았어.”
아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아주 작게 입을 열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나는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그녀는 말없이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더니,
“그냥 너무 힘들어…
가끔은 나도 나 자신이 싫어져.”
조심스럽게, 그러나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 말에 나는 가슴이 무거워졌다.
돌아서서 내뱉는 한숨 같은 게 아니라,
오랜 시간 쌓여온 무게가 느껴졌다.
나는 그녀 옆에 조용히 앉았다.
말없이 손을 잡았다.
그 작은 손에서 전해지는 떨림이
그녀의 고통을 말해주는 듯했다.
“기억나? 결혼 전에 우리가 떠난 고성.
새벽 파도 소리를 듣고 싶다고
네가 운전했잖아.
그때 너는 생기가 넘쳤어.
뭔가 계속 해내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지.”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듯 눈을 깜빡였다.
“그때는 좋았지.”
나는 숨을 깊이 들이켰다.
“왜 이렇게 됐는지,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진심으로,
다시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서로 어색해도, 시간이 걸려도 괜찮으니까.”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나도… 다시 시작하고 싶어.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 말이 무겁게 가슴에 남았다.
그날 밤,
우리는 많이 말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내보인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