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말하지 않는 사람들

by 맑을담

5편. 말하지 않는 사람들

아내는 아이가 생긴 뒤부터

바깥에 나가는 걸 꺼려했다.


처음엔 몸이 힘들어서 그런 줄 알았다.

회복하면 예전처럼 돌아다닐 줄 알았다.

그런데 달라진 건 회복이 아니라,

아내의 관심 방향이었다.

"나 빼고 다녀와."


처음에는 그런 말조차 미안해하던 아내였다.

딸과 나만 가족 모임에 나가고,

친구들을 만나고,

동료 가족들과 어울리는 일이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어느 순간부터 아내는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건 거절이 아니라 포기처럼 느껴졌다.

나도 점점 익숙해졌다.

‘이젠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또 얘기해서 뭐 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점점 말을 줄여갔다.


"애 잘 놀았어?"


"응. 피곤해하더라."


"그래, 씻기고 재워."


그게 하루의 전부였다.

아내는 물어보지 않았고,

나는 들려주지 않았다.

사실 별로 들려줄 것도 없었다.


애가 누구랑 놀았고,

내가 뭘 느꼈고,

누가 부럽다고 했고,

그건 전부 이야기 아닌 감정이었다.


감정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믿었다.
혹은,

설명해도 이해받을 수 없다고 느꼈다.


아내는 요즘 거의 침묵 속에 산다.


딸아이가 질문을 해도,

아내는 짧게 대답하고 말았다.


"엄마는 어렸을 때 뭐 좋아했어?"


"음... 그림?"


딸이 다시 물었다.


"그럼 요즘은 뭐 좋아해?"


아내는 조용히 웃기만 했다.



딸은 곧 대답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

나를 돌아봤다.
나는 그 눈빛이 너무 아팠다.

아이는,

질문에 대답해 주는 세계에서 자라야 하는데.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만약 아내가 지금처럼 말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육체적으로 아픈 병을 앓고 있는 상태였다면

어땠을까?
나는 더 다정했을까?
사람들은 아내를 더 이해해 줬을까?
나도 덜 외로웠을까?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나도.


아내가 우울한 건지,

지친 건지,

단지 말이 없는 성향으로 돌아간 건지,

모른다.


아내는 스스로의 상태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게 더 깊은 단절처럼 느껴진다.

말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엔

오해보다 무관심이 먼저 온다.
무관심은 오해보다 회복이 어렵다.

나는 오늘도 아내의 눈치를 본다.
뭐라도 말하게 할 방법이 있을까.
하지만 나는 또 입을 다문다.
상처를 끄집어낼 용기가 없어서.

아내는 조용하고,

나도 조용하다.


아이만 떠들고 웃는다.

그 웃음이 너무 밝아서, 때로는 잔인하다.


그날 밤, 딸아이가 잠든 후
아내는 소파에 앉아

조용히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나랑, 같이 병원 한 번 가볼래?"


아내는 내 쪽을 쳐다봤다.
그 눈에는 놀람도, 화도 없었다.
그저 오래된 피로 같은 표정이었다.

"내가 아픈 사람 같아 보여?"


"그게 아니라... 혹시 네가 힘든 거면..."


"힘든데 왜 병원을 가야 돼? 그냥 힘든 건데."


아내는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일어났다.
잠든 아이 곁으로 피신하듯 돌아왔다.
그리고 문득,

아내가 정말 아픈 사람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을 텐데.
그럼 사람들도 우리를 이해해 줄 텐데.
병명은 있지만,

설명 없는 사람.


나는 지금, 그런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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