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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Sep 09. 2023

희망이 보인다면 또 다른 절망의 시작이다.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남편의 관계다. 이 외 다른 관계는 모두 그다음 문제다. 부부가 똘똘 뭉쳐 온전한 한 팀이 되면, 아무리 시댁과 친정 그리고 지인들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일들이 발생해도 잘 해결할 수 있다. 이건 그렇지 못했던 나의 신혼과 이제는 그럴 수 있게 된 현재 결혼생활 사이의 가장 큰 차이다.


신혼 때 남편과 나는 한 팀이 아니었다. 의견이 합치되지 않으니 시댁과 친정을 대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생겼다. 일단 한 팀이 되어 대응을 해야 우리 가정의 모든 결정에 힘이 생긴다. 하지만 결혼생활에 서툴렀던 우리는 어쭙잖게 구성된 팀이었다. 각자 본가에서 효자, 효녀 역할을 포기하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배우자에게 각자 본가의 상황과 문화를 온전히 이해시키는 능력도 없었다. 그런 우리 가정에 힘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 힘을 만들려면 부부가 서로에게 바라는 모습, 변하길 바라는 모습들을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를 잘 파악해서 가능한 방식과 수준에서 서로 요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우선 남편이 나에게 가장 힘들어했던 점은 “사람을 궁지로 몰아붙이는 것”이었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항상 집중한다.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확하게 원인을 찾아야 해결할 수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운한 게 생기면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내 입장을 말하고 상대방 입장도 솔직하게 듣고 싶다. 그러다 보면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남편은 내가 자신을 궁지로 몰아붙인다고 느낀다.


반대로 내가 남편에게 제일 바뀌길 바란 부분은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속마음을 제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속마음을 숨기고, 대화가 잘 풀리지 않으면 밖으로 나가버린다. 좋게 말하면 잘 참는 스타일이고 안 좋게 말하면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제때 말해줬다면 곧바로 사과할 수 있는 문제다. 내 입장에서는 남편이 사과할 기회도 오해를 풀 기회도 주지 않는다고 느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나름대로 방법을 모색했다. 먼저 대화를 시도하는 건 늘 내 쪽이니까, 남편이 언제든 대화를 멈출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대화를 먼저 멈추고 자리를 피한 사람은 적어도 30분 안에 돌아와서 상대방에게 다시 대화를 신청해야 한다는 규칙을 만들었다.


하지만 문제가 조금 개선된다고 해서 절대 희망을 품어서는 안 된다. 규칙을 만들어도 지키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다들 잘 알고 있듯이, 규칙은 깨라고 있는 거다. 아무튼 반복해서 이야기하겠지만 사람은 절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게 내 생각이다. 나이가 들수록 각자 가진 가치관은 더욱 견고해진다. 각자의 방식대로 더 성향이 강화될 뿐이다.


이렇게 피 터지게 싸우면서 각자 상대방에게 힘들었던 모습을 납득시킬 수 있었다. 결혼하고 5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안 맞는 부분이 훨씬 많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몰랐던 속마음을 많이 알게 됐고 오해가 풀렸다. 그 덕에 우리는 용케도 아직 이혼하지 않았다. 둘 다 그냥 "오십보백보다, 니 똥 굵네 내 똥 굵다." 하면서 지지고 볶고 살고 있다. 같이 살다 보면,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너도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 내가 곧 죽게 생겼으니, 상대가 힘든 게 눈에 보일리가 없다. 우리는 적나라하게 우리 결혼생활의 실체를 까발린 후에야 상대의 힘듦도 알게 되었다. 


결국 부부는 완벽하게 맞출 수는 없다. 노력해 볼 뿐이다. 상대방의 행동을 억지로 바꾸려는 건 멍청한 짓이다.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면 저 사람도 뭔가 느끼겠지라는 생각도 애당초 집어치우는 게 좋다. 내가 무엇을 먼저 노력하고 있는지 직접 말해주지 않으면 상대는 모른다. 티도 안 내고 알아주길 바라지 마라. 나중에 다 늙은 후에 배우자에게 "고맙다, 수고했다."는 소리는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세월 동안 화병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나는 착하게만 사느니 차라리 내 몫 내가 챙기면서 행복하게 살 거다.


그럼 어차피 노력해도 안 되는 거니 포기하고 살라는 뜻이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부부는 서로 바둑을 두듯이 각자의 패는 숨기고 상대의 수를 잘 읽어야 한다. 그래야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 상대의 수를 읽는 것을 연습해라. 인생은 게임이고, 실전이다. 상대가 원하는 걸 잘 간파한 후, 내가 원하는 패를 들이밀어서 원하는 걸 취하면 된다. 이 부분은 이 책의 목차 중 “13. 대가리는 굴리라고 있는 것이다.”편에서 자세히 말해보려 한다.


어쨌든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상대방에 대해 희망을 볼 때도 있지만, 그래 네가 바뀌겠냐 싶은 절망이 들 때도 많다. 하지만 상대방만 족치지도 말고, 나만 억울하게 참지도 말고 전략적으로 결혼생활을 해야 한다. 핵심은 동등한 위치에서 한 팀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만 시댁과 친정 그리고 지인들과의 관계에서 제대로 존중받는 한 가정이 될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유부남, 유부녀들 고생이 참 많다. 아자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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