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함께 하는 취미가 몇 개 있다. 그중 오목게임을 자주 한다. 언제 어디서든 쉽게 할 수 있어서다. 오목은 바둑판에 서로 번갈아 돌을 놓아 어떤 방향으로든 일렬로 다섯 개의 연속된 돌을 놓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다. 생각보다 머리를 많이 써야 한다. 적어도 한 수 앞은 미리 내다보고 돌을 놓아야 한다. 내 돌만 보면 공격당하기 쉽고, 상대방 돌만 보다가는 끌려가기 일쑤다. 부부가 매번 둘이서만 오목을 두다 보면 언젠가부터는 상대방의 수가 읽히기 시작한다. 그 사람의 패턴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패턴이 들킬 때쯤 다른 패턴을 고안해 내야 이길 수 있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로 두뇌게임이다. 나의 패는 숨기고 상대의 수를 잘 읽어야 한다. 부부 싸움을 하다 보면 결국 “네가 잘했네, 내가 잘했네.” 싸움으로 귀결된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오고 자기 잘난 맛에 살아도 부부싸움은 논리로만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다. 깊게 들어가면 굉장히 치사하고 더러운 게임이다. 그래서 계속하면 진흙탕 싸움이 된다. 내 논리가 아무리 맞아도 상대방 입에서 “너도 그런 적 있잖아.”라는 말이 나오면 게임은 끝난다. 그렇다. 상대방을 탓하기 전에 내 처신부터 제대로 잘해야 나의 말에 힘이 생긴다.
여러 사건들을 한꺼번에 묶어서 이야기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설령 내 생각에 반복되는 문제들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에게는 별개의 사건 조각들일지도 모른다. 그럼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여러 사건을 같이 얼버무려 이야기하다 보면 정작 내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스스로 헷갈릴 가능성이 높다. 내 말에 내가 묶여버린다. 이 경우에는 서로 다른 사건들의 관련성을 잘 고민해서 하나의 큰 카테고리로 잘 묶어야 한다.
다음으로 승복할 땐 납작 엎드려야 한다. 최선을 다해도 게임에서 질 때가 있다. “졌잘싸” 사태가 벌어지는 거다. “졌잘싸”는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신조어다. 한편으로는 “졌으니까 짐 잘 싸라.”라는 비꼬는 표현으로도 쓰인다. 그러니까 짐 싸서 집 나가기 싫으면 사과를 잘해야 한다. 오해해서 화낸 부분이 있으면 오해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진심을 담아 사과해라.
사과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면, 연습해야 한다. 연애할 때부터 신혼 초까지 내 남편도 사과하는 걸 어려워했다. 그 내막을 물어보니, 사과해도 안 받아줄까 봐 혹은 사과는 하고 싶은데 적당한 타이밍을 잡기 어려워서라 했다. 그런 남편 입에서는 “미안해.”가 아니라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여자친구나 아내가 화내면 떡볶이나 달달한 디저트를 사주라는 말을 어디서 주워 들었다고 한다. 처음 한 두 번은 나도 그 말을 들으면 웃음이 샜다. 그런데 그 뒤부터는 “참나, 내가 무슨 못 먹어서 죽은 귀신이 붙은 줄 아나.”라는 생각에 더 화가 났다. 사과는 받지도 못했는데 목구멍으로 뭐가 넘어가겠는가.
나는 사과를 잘하는 편이지만, 가끔 오기를 부릴 때가 있었다. 지긴 졌는데 진 걸 인정하지 못해서 끝까지 버티곤 했다. 그럴 땐 괜히 할 말이 없으니까 화난 척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인정을 잘해야 그다음에 사과를 할 수 있다. 나는 인정하는 것부터 연습했다. 처음부터 잘하지는 못했다. “일단 오빠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나도 기분 나쁘거든? 나한테 앞으로 말 걸지 마, 아무튼 미안해.”라는 무슨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를 한 적도 있다. 나도 참 나다. 아무튼 훈련을 반복해서 그다음에는 “에이씨, 일단 나도 잘 모르겠는데… 미안해.”, 그 다음번에는 “내가 오해한 부분이 있는 거 같아, 미안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남편과 나는 “잘” 싸우고 “잘” 화해한다. 물론 여전히 남은 앙금이 있을 때는 서로 끝까지 버티기도 한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훨씬 덜 공격적인 싸움을 하며 살고 있다. 지금까지 어떻게 싸우고 화해하는지에 대해서 길게 말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부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모든 불만 하나하나를 다 꼬투리 잡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내용은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을 때에 한하여 사용해야 한다. 사랑하면 봐줄 줄도 알아야 한다. 처음 한 두 번 한 실수로 사람을 쥐 잡듯 잡으면 원만한 부부생활을 할 수가 없다. 논리로만 무장해서 싸우면 상대방은 나에게 질려버린다. 현명한 결혼생활을 하고 싶다면 그냥 웃어넘길 줄도 아는 배포와 능력을 함께 배양해야 한다.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성생활과도 관련이 깊다.
부부는 입으로만 대화하지 않는다. 몸으로도 대화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지만, 반대로 마음이 멀어지면 몸도 멀어진다. 서로 소리 지르고 싸우면 미워하는 감정이 커진다. 부부관계라는 게 갑자기 불 끄고 “자, 지금은 섹스 타임이야. 이때까지 싸운 건 다 잊고 몸에만 집중하자. 시~작!”이라고 외친다고 되는 게 절대 아니다. 분위기도 잡아야 하고, 대화도 해야 하고, 무언의 교감도 필요한 아주 복잡하고도 정교한 과정이다. 부부가 잘 싸우고 잘 화해해야, 말의 대화도 몸의 대화도 건강하게 잘할 수 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우리 모두의 결혼생활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