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건드리는 게 아니다. 가족을 건드리는 건 페어플레이가 아니다. 근데 내가 그걸 해버렸다. 나라고 쉽게 한 행동은 아니다. 최후의 카드였다. 이 카드는 절벽 끝에서 이 사람과 이혼해도 이제 어쩔 수 없다는 마지막 각오까지 하고 내밀어야 한다. 그리고 속마음을 잘 담아서 내밀어야 한다. 당신과 이혼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사실 미치게 이 결혼을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을. 자칫 어설프게 건드리면 문제는 커진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결혼은 절대 둘만 행복할 수 없다. 내 경험상 그렇다. 한 집에서 시댁 혹은 처가댁 가족과 함께 사는 게 아니라도, 가족은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가끔 가는 명절인데 혹은 일 년에 한 번 있는 제사인데 그걸 못 참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있는 건 제사뿐만이 아니다. 설날, 추석, 휴가, 부모님 생신을 비롯해서 모든 행사는 일 년에 한 번 있다. 게다가 그날 하루로 일정이 끝나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전에 서로 일정이나 의견을 상의하는 기간도 있다. 그럼 행사 날만 잘 치르면 끝나느냐. 아니다. 부부간의 후정산 시간까지 필요하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다음 행사가 오기 한 달 전부터 머리가 지끈하다.
가족 문제를 잘 해결하려면 부부가 서로의 편이 되어줘야 한다. 하지만 처음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이제껏 해오던 방식대로 살아온 원래의 가족들이 며느리나 사위가 들어왔다고 해서 그 문화나 모든 상황을 한 번에 바꾸기는 어렵다. 또 30년 가까이 혹은 그 이상 외부인이었던 사람이 그 가족의 내부로 들어가는 건 더욱더 어려운 일이다. 왜 적응하지 못하냐 타박할 문제가 아니다. 새로 들어온 가족은 적응하는 게 어렵다는 걸 전제로 깔고 항상 배우자를 배려해야 한다. 내가 익숙한 집이지, 니가 익숙한 집이 아니다.
아내가 시댁 가족들의 말과 행동을 어렵고 불편해한다면, 남편은 무조건 아내 편이 되어야 한다. 반대로 남편이 처가댁 가족들의 문화를 힘들어한다면, 아내는 무조건 남편의 편이 되어야 한다. 크면서 부모님께 싫은 소리도 하고 반항도 해 본 자식은 상대적으로 대응하기가 쉽다. 이미 부모님도 그런 자식에게 적응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할 말 다하면서 컸다. 부모님이 나를 그렇게 키우셨다. 투정 부리면서 요구하면 절대 들어주지 않으셨다. 반대로 일목요연하게 또박또박 울지 않고 이야기하면 오히려 쉽게 들어주셨다. 그래서 나의 친정 가족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쉽게 하는 편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다툼이 잦다.
반대로 시댁에서 남편은 착하고 순하게만 성장한 아들이다. 시아버지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저 놈은 크면서 한 번도 부모 속을 썩인 적이 없어. 우리가 큰 소리 낼 일 한 번 없었다니까. 저렇게 바르게 커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이렇게 바르게만 큰 아들이기 때문에 절대 아내 편을 들어주는 남편이 될 수 없었던 거다. 내 남편은 쉽게 말해 부모님께 순종하면서 커 온 스타일이다. 반항 한 번 제대로 해보지 않은 남편이 어떻게 아내가 불만을 토로한다고 곧바로 부모님과 대적할 수 있겠는가. 남편이 나빠서가 아니라,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거다.
결국 내 잘못은 부모님 말씀 잘 듣는 남자를 남편으로 고른 것이다. 반대로 남편 잘못은 부모님 속을 잘 뒤집어 놓던 나를 아내로 고른 것이었다. 나는 신혼 초 시댁에 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힘든 점을 토로하곤 했다. 하지만 남편은 딱 1절까지만 잘 들어줬다. 딱 1절까지였다. 1절까지는 그럴 수 있었겠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2절을 시작하면 본인 부모님의 입장을 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하고, 3절을 시작하면 지치고 힘들어했다. 그리고 남편의 마지막 멘트는 “그렇게 힘들었으면, 그 상황에서 말하지 그랬어.”였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어느 날 나도 이대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남편이 말한 대로, 힘들 때는 그 상황에서 바로 말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시댁 가족들이 있는 앞에서 직접 내 입장을 적나라하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특히 시어머니께 그때 못다 한 말들은 아침이고 저녁이고 구분 않고 전화, 문자, 가정방문까지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내 입장을 설명드렸다. 시댁 문화에서 어떤 점이 이해가지 않고, 어떤 점이 버겁고 힘든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말씀드렸다. 내가 살아온 환경과 상황을 말씀드리며 어머니가 납득하실 수 있게 최대한 설명했다. 결정적으로 남편과 둘이서 이 문제를 최대한 해결해 보려고 노력했는데 실패했고, 결국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씀드렸다.
같은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나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씀드렸다. 시어머니는 그런 나의 모습에 처음에는 당황하셨고, 그다음에는 미안해하셨고, 그 다음번에는 내가 적응해주길 부탁하셨고, 그 다음번에는 반론을 제기하셨다. 시어머니 입장도 이해는 간다. 나보다 곱절이나 더 많은 인생을 살아오신 분께 하루아침에 바뀌길 바란 건 아니다. 그래도 나는 계속 말씀드렸다. 나도 그저 투정만 부리는 며느리로 비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어쨌든 남편이랑 계속 살고 싶었고 같은 문제로 반복해서 싸우는 것에 지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어머니께 내 입장을 관철시키지 못했다. 남편과의 사이도 점차 어그러져갔다. 결국 나는 남편에게 이혼을 선언했다. 단순히 협박할 생각이 아니었다. 정말 진심을 담아 말했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 짜증도 내지 않고 처음으로 진지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여보, 나랑 이혼해 줘. 제발 부탁이야. 나는 당신한테도 시댁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했어. 다 소용없었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없어.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내가 결혼에 적응하지 못한 것뿐이야. 나라는 사람이 결혼하기에는 부족한 사람이었어. 제발 나랑 이혼해 줘.”
처음으로 남편의 동공이 흔들렸다. 달라진 내 모습에 크게 놀란 거 같았다. 남편은 나를 붙잡았다. 하지만 나는 더 입씨름할 힘도 없었다. 그리고 남편과 적절한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나는 이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히려 그때부터 남편이 바뀌기 시작했다. 남편과 시어머니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남편은 인생 처음으로 본인의 부모님과 크게 충돌했다. 시부모님 입장에서는 착하기만 한 아들이 결혼해서 갑자기 바뀌었으니 배신감이 드셨을 거다. 이제 며느리인 내가 아닌 아들인 남편이 직접 시부모님께 이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남편은 자신도 몰랐던 본인 부모님의 생각을 듣게 됐다. 그리고 아내인 내가 왜 힘들었을지 이해해 주기 시작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남편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동안 어머니로서의 어머니 모습만 알고 있었어. 그런데 어머니와 부딪히면서 이야기하다 보니, 나도 몰랐던 시어머니로서의 어머니의 모습을 알게 됐어. 그동안 너 입장 이해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너 힘들었겠다.”
물론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남편이 여전히 나를 많이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혼을 선언했을 때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다면 남편은 절대 어머니와 대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남편이 아니면 안 되듯이, 남편도 나 아니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알게 된 사실은 우리는 서로 너무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상황이 파국으로 흘러가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
부모는 결국 자식에게 질 수밖에 없다. 시부모님께 며느리는 자식이 아니지만 아들은 자식이다. 결국 시부모님은 아들에게 졌다. 비로소 시댁 문화와 시부모님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동안 남편도 아마 많이 힘들었을 거다. 처음으로 부모님께 반항을 해야 했고, 부모님 눈에서 눈물을 뽑아야 했다. 효자로만 살아오던 남편은 그 과정이 무서웠을 거다. 하지만 그 시간을 이겨낸 남편은 이제 진짜 내 편이다. 나를 최우선순위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우리 부부는 단단해졌고 힘이 있는 새로운 가정으로 인정받았다.
시어머니께서는 여전히 하고 싶은 말씀은 많은 눈치시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말씀을 많이 아끼시는 모습을 보이신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아들 부부가 서로를 위하며 잘 사는 모습을 내심 좋아하시는 것 같다. 아무튼 이제 나는 누가 뭐래도 내 편인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