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안 Sep 13. 2023

남편은 어디서 뭐라도 하고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내 인생 최고의 남자라서 선택한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다. 결혼생활에 적응하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남편을 사랑한다. 그리고 변함없는 사실은 내 남편은 적어도 나에게 좋은 사람이고 멋진 사람이라는 점이다. 한 때 이별을 결심했던 이유도 맞춰가는 게 힘들어서였지, 사람을 잘못 봤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무언가 노력하고 있다면, 남편도 분명 다른 부분에서 애쓰고 있다. 연애 때부터 경험으로 확인했다. 그래서 결혼한 후에 남편이 못마땅해 보일 때도, 나는 늘 남편 역시 어디서 뭐라도 하고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언제나 맞았다. 내가 잘하는 것과 남편이 잘하는 것은 다르다. 결혼 연차가 쌓일 때마다 느끼는 바가 있다. 우리의 결혼이 유지되도록 안 보이는 곳에서 훨씬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건 남편이라는 점이다. 


나는 늘 남편과 둘의 관계가 더 끈끈해지는 것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남편은 항상 넓은 범위에서 가족들을 신경 써왔다. 뿌리 없는 나무는 없다는 게 남편의 지론이다. 본인 부모님 뿐만 아니라 장인어른과 장모님에 대한 감사함도 끊임없이 표현한다. 내 생일이면 어김없이 친정 부모님께 인사를 올리는 사위다. 내 남편이지만 참 멋지다. 이렇게 남편이 시댁과 친정 가족들을 챙기지 않았다면 지금쯤 양가 가족들과는 서먹한 사이가 되어 있었을 거다.


나는 시댁 가족들을 어려워할 때도 있고 자주 뒷말도 한다. 하지만 남편은 친정 가족들을 편견 없이 바라본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충청도 출신인 남편 입장에서는 경상도 출신인 처가댁 가족들이 버거웠을 것이다. 성격 급하고, 말도 빠르고, 막 웃어댔다가 갑자기 서로 싸우는 처가댁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을 것이다. 아빠는 말씀을 한 번 시작하시면 정치, 사회, 역사 전반에 걸친 토크 대장정을 이어가신다. 엄마는 사위랑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조금의 틈만 생기면 치고 들어오신다. 게다가 나와 언니는 한 번 싸우면 끝장을 보는데, 남편은 그 무서운 자매들 사이에 껴서 싸움을 중재해주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단 한 번도 처가댁에 대해 안 좋게 표현한 적이 없다. 오히려 각자 스타일에 맞춰서 1:1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늘 세 모녀에게 치여 살았던 아빠께는 술친구이자 말동무가 되어드렸다. 엄마가 좋아하실만한 디저트가 있으면 꼭 사서 선물해드리거나 함께 데이트를 해드렸다. 나와 싸우고 힘들어하는 언니에게는 위로해주며 이야기를 들어줬다.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은 절대 이만큼 처가댁을 대하지 못할 거다. 이런 남편이 없었다면 나도 어쩌면 친정 가족들과 사이가 소원해졌을 수 있다. 사실 이 모든 역할은 딸이나 동생인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해서 많은 것들이 남편 몫으로 넘어갔다.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신혼기간 중 한창 싸울 때는 남편의 이런 진가를 보지 못했다. 나만 억울하고, 나만 힘든 줄 알았다. 다른 부부들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연애하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상대방의 모습이 하나쯤은 있을 거다. 지금 당장 결혼생활이 힘들고 지치더라도, 그때 그 모습을 기억하고 언젠가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 믿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남편이 나와 성향이 똑같다고 상상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처음 연애하면서 남편과 싸울 때 장기 연애를 한 친구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그 친구의 말은 아주 재수가 없었지만, 진리가 담겨 있었다. “야, 너의 남자친구가 너랑 똑같은 성질머리를 가졌다고 생각해 봐. 넌 아마 하루도 못 견딜 거다. 아마 니 성격에 진작에 끝났을 걸.” 친구인지, 원수인지 알 수가 없다. 친구야 너는 그런 통찰력은 어디서 키웠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친구 말이 백번 옳다. 결혼하고도 이 친구의 말을 가끔 떠올린다. 남편이 나와 달라서 좋은 점들이 굉장히 많다. 그중 남편의 최대 장점은 남을 탓하지 않는 것 그리고 상황을 비관하지 않는 오뚝이 같은 면이다. 나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어떤 부분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집착한다. 크든 작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거나 상황이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면 신경질적이 된다. 심지어 내부에서 답을 찾지 못하면, 쉽게 남 탓을 하거나 상황을 비관해서 우울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남편은 단 한 번도 남 탓을 한 적이 없다. 자신이 기대했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냥 내 몫이 여기까지 인가보다 하고 마음을 접는 결단력이 있다. 사람 자체가 수더분하다. 이런 사람이라서 까칠한 나를 품고 사는 게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내가 더 참고 산다.”라는 생각을 하는 기혼자가 있을 거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은 상대 배우자가 더 많은 부분을 감내하며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연애할 때는 간도 쓸개도 다 내어줄 것처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결혼 후 그 사람의 다른 면을 볼 때면 한 순간 마음이 식기도 한다. 그게 바로 나였다.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말이 딱이다. 그래서 결혼생활을 하면서 가끔 멈추어 생각해야 한다. 혹시 내가 놓친 건 없는지, 못 보고 가는 건 없는지 말이다. 이제 나는 배우자가 습관처럼 베풀어주는 호의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항상 고맙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배려를 고민해 본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

이전 17화 내 남편이 곧 시어머니 아들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