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곧 시어머니 아들이다. 비꼬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반대로 과거의 나를 반성하는 의미이다. 나는 아내라는 이유로 남편이 시어머니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했다. 사람은 모두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가지고 살아간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나의 배우자는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빠이자 아들이자 그리고 또 동료이자 친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시어머니를 골탕 먹이고 싶은 마음에 남편이 가진 역할 중 “아들”이라는 역할을 내 마음대로 없애려고 했다.
나 역시 누군가의 딸이고 그 역할을 포기하지 못하면서 남편보고만 포기하라고 하는 과오를 저질렀다. 만일 시어머니께서 아들과 적절한 거리를 잘 유지해 주시는 분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얼마나 있겠는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다양한 매체에서 “고부갈등”이 주요 키워드가 되는 걸 보면 그런 시어머니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그럴만한 이유는 있었다. 사실 내 남편과 시어머니는 얼핏 보기에 살가운 모자 사이는 아니다. 주고받는 말들이 섬세하거나 다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신혼 초 내가 인상 깊게 본 남편과 시어머니 사이의 큰 특징 세 가지를 꼽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남편이 시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근황토크를 한다. 둘째, 시어머니께서 어떤 결정을 하실 일이 생기면 매번 남편과 먼저 상의하신다. 셋째, 남편도 마찬가지로 어떤 상황에 처하면 항상 시어머니의 의견을 여쭤 본 후에야 나와 최종 결정을 했다.
남편에게 각 행동의 이유를 물어봤다. 첫째의 경우, 시어머니께서 만드신 규칙이라 했다. 아들이 20살 되던 해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면서 혼자 생활하는 게 걱정되신다는 게 이유였다. 매일 등교는 잘했는지, 안전하게 귀가했는지 서로 안부 정도는 물어야 가족이라고 생각하신다고 했다. 둘째의 경우, 어머니께서 신중하고 걱정이 많은 성격이셔서 그렇다고 했다. 혼자서만 생각하면 판단을 그르칠 수 있지만, 아들과 상의하면 본인이 놓칠 수 있는 부분까지 고려할 수 있어서 그렇게 하신다고 했다. 셋째의 경우, 남편도 그런 시어머니 밑에서 보고 배우며 어릴 때부터 습관적으로 해오던 행동이라 했다.
처음엔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남편의 너무 많은 일상이 시어머니와 공유되는 걸 보니 며느리인 내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더욱이 퇴근길 차 안에서 남편이 시어머니와 통화할 때 느낀 감정이 집에 오면 오롯이 아내인 나에게 전가됐다. 남편이 시어머니와 통화를 할 때 웃은 날에는 밝게, 화낸 날에는 어둡게, 슬픈 날에는 눈가가 촉촉해져서, 걱정한 날에는 생각에 잠긴 채 집으로 들어왔다.
언젠가부터 나는 남편이 빈껍데기가 되어 퇴근하는 느낌을 받았다. 시어머니와 전화를 하면서 온갖 에너지를 다 소진한 채로 말이다. 남편은 이 말이 과장되고 비약된 표현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내가 느낀 감정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물론 시어머니가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시아버지께서는 시어머니께 무뚝뚝한 편이시고, 직장 생활을 이유로 주말 부부로 생활하신 기간이 길었다. 남편과 시어머니 사이가 보통의 모자보다 더 가까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세월 동안 시어머니께 내 남편은 본인의 아들이자 남편이자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남편도 결혼했다는 이유로 그 역할들을 바로 다 내려놓기가 어려웠을 거다. 우리가 결혼하자마자 시아버지께서 암투병을 시작했다는 상황도 그런 남편의 역할을 가중시켰다.
나는 시어머니와 남편 사이에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남편에게 이 내용을 주입시켰다. 그때는 무조건 시어머니로부터 남편을 빼앗오는 것만이 정답이라 생각했다. 남편이 중간에서 역할을 잘해야 아내와 시어머니가 라이벌 구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 세뇌시켰다. 그리고 이 과정과 맞물려서 앞선 목차들에서 이야기한 이런저런 이유가 모두 겹쳐 이혼이라는 위기까지 가게 된 것이다.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그 위기를 가속화시킨 요인 중 하나인 건 분명하다.
나와 남편은 깨진 부부 사이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시댁에 발길을 끊었다. 나는 거의 1년을 남편은 거의 반년을 시댁과 단절된 생활을 했다. 그 시기 동안 시어머니로부터 남편을 완벽하게 빼앗아왔다. 하지만 성공이 아니라 실패였다. 그게 결코 정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이겼다고 생각한 순간, 내 마음 한편에는 죄책감이 자리 잡았다. 나도 꼭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물론 내가 남편에게 시댁과 인연을 끊으라고 한 것은 아니다. 남편이 스스로 아내인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 먼저 집중하고 싶다고 선택한 일이었다. 나 역시 남편과 나 사이에 항상 시어머니가 위치해 계신 그 상황이 힘들었던 거지 천륜을 끊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어쨌거나 나는 남편과 이혼 위기를 잘 극복하고 지금은 시댁과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서로 적절한 거리가 생겼다는 점이다. 그 후로 남편은 나를 최우선순위로 두고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이제 남편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시어머니와 통화하지 않는다. 시어머니께서도 그 변화를 받아들여 주셨다. 그 덕분에 나도 시어머니로부터 남편을 쟁취할 필요가 없어졌다. 시어머니께서도 그 경계를 넘지 않으시려고 조심하신다.
나는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시어머니를 보는 시선도 전과는 달라졌다. 남편과 시어머니 사이에 굳이 더 개입하지 않는다. 남편은 시어머니의 아들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존중하기로 했다. 물론 아직도 가끔 예전 모습이 살짝이라도 보일라치면, 안 좋은 감정이 불쑥 올라오기도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