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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Sep 21. 2023

#9 친구

소설 연재


주말 오전, 재인은 브런치 카페에서 메뉴판을 보고 있다. 10분 뒤쯤 카페 문이 열리고 중단발의 웨이브파마를 한 여자가 들어온다. 민아다. 언제나 그렇듯 그녀는 재인을 보고 춤을 추듯 상체를 살짝 흔들면서 걸어온다. 반달눈에 볼에는 귀여운 인디언 주름이 보인다. 민아는 움푹 파인 보조개와 함께 치아를 활짝 드러내고 웃. 둘의 대화가 잠깐 이어진다.


“재인아 내가 좀 늦었지. 미안해. 오다가 지하철을 반대로 탔어.”

“으유, 내가 너 그런 거 한 두 번 봐? 그냥 오늘 안에 오기만 하면 고맙겠다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어.”

“헤헤”

“나는 먹고 싶은 거 먼저 골랐는데, 너도 메뉴판 먼저 구경해. 주문부터 하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피자도 하나 시켜서 나눠먹자.”


식당 종업원이 테이블로 메뉴를 가져다준다. 재인 앞에는 훈제연어 에그베네딕트, 민아 쪽에는 시금치 크림파스타가 놓인다. 재인은 먹음직스러운 크로와상을 조금 잘라 그 위에 연어를 한 점 올려 입에 넣는다. 민아도 파스타를 포크로 동그랗게 말아 숟가락에 올려 먹는다. 둘은 식사를 하면서 계속 말을 주고받는다.


“재인아, 우리 이렇게 보는 거 진짜 오랜만이지. 둘 다 교대근무하는 직업이라 이제는 제대로 날을 잡아야지만 얼굴을 볼 수 있네.”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 고등학교 다닐 때는 맨날 붙어 다녔는데.”

“그때 진짜 재밌었는데. 우리 진로탐색 동아리 활동하면서 친해졌잖아.”

“맞아, 근데 웃긴 게 우리 그때 여러 직업들 체험할 때마다 적성에 안 맞을 거 같다면서 고민했잖아.”

“하하, 그건 그래. 그래도 우리 둘 다 지금 직업에 만족하니까 얼마나 다행이야.”

“맞아, 민아야 너도 벌써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 지 4년 넘었지?”

“응, 나도 이제 5년 차야.”


이야기하는 중간에 종업원이 다시 와서 고르곤졸라 피자를 테이블에 놓고 같이 곁들여 먹을 꿀도 작은 그릇에 부어준다. 재인과 민아는 피자를 각자 한 조각씩 가져가서 먹으며 또다시 대화를 이어간다.


“근데 민아야, 너는 어떻게 산부인과 병동에 지원하게 된 거야?

“우리는 대학 다닐 때 병동마다 다 돌면서 경험하거든, 근데 나는 산부인과에서 일할 때가 제일 행복했어. 솔직히 대학병원에는 응급환자들이랑 중환자들이 많아서 어떤 과를 가더라도 마음이 힘들. 그런데 산부인과에서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일도 있지만,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도 계속 보니까 너무 보람되고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더라고. 그래산부인과에 지원했어.”

“와, 그렇구나. 내 친구 멋진데?”

“야, 나는 너가 더 대단해. 나는 솔직히 너가 장례지도학과 간다고 했을 때 많이 걱정도 됐고 나랑 간호학과에 같이 지원하자고 엄청 꼬드겼잖아. 근데 너는 어렸는데도 꿈이 너무 확고해서 절대 안 넘어왔어. 아쉽기도 했는데 나는 그런 너가 신기하기도 하고 멋지기도 했어.”


재인은 레모네이드를 조금 마시고 다시 입을 연다.


“맞아, 내가 그때 장례지도학과 간다고 했을 때 너가 나보고 죽은 사람 보는 거 안 무섭냐고 그랬잖아.”

“응, 근데 너가 나한테 뭐랬는지 기억나?”

“내가 뭐라 했는데?”

“너 진짜 기억 안 나? 내가 재인이 너 대답 듣고 내 또래가 아니라 인생 2회 차 사는 할머닌 줄 알았어. 너가 이렇게 말했잖아. ‘야! 죽은 사람이 무섭냐? 난 산 사람이 더 무섭다. 원래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거야.’라고 했잖아.”

“아하하. 맞다, 맞아. 내가 그랬지.”

“아무튼 나도 엉뚱하지만, 너도 참 특이해. 근데 나는 너가 특이해서 좋아.”

“야, 나보다는 니가 더 4차원이지!”

“그냥 둘 다 끼리끼리 만나서 노는 거지 뭐.”


그리고 갑자기 민아가 가방에서 상자를 하나 꺼내서 재인에게 건넨다.


“그건 그렇고, 나 너한테 선물 줄 거 있어. 받아!”

“ 갑자기? 뭔데?”

“핸드크림! 이거 되게 좋은 거래. 너 일할 때 알코올이랑 소독용품 계속 써서 손 많이 상하잖아.”

“뭐야 이거, 이렇게 감동주기 있어? 민아야 진짜 고마워.

“큰 것도 아닌데, 뭘.”



***



민아와 헤어지고 재인은 집에 가는 버스에 올라탄다.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선물 받은 박스를 꺼낸다. 포장을 풀고 핸드크림을 손등에 조금 짜서 양손에 펴 바른다. 은은하게 편백나무 향기가 퍼진다. 창문으로는 햇빛이 쨍하게 들어온다. 6월 초인데 벌써 낮더위가 시작됐다.


정류장에 내린 재인은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서점으로 향한다. 그녀는 어김없이 누리봄 동네책방으로 들어간다. 진욱은 언제나 그렇듯 환한 미소로 반겨준다.


“어서 오세요.”


재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하고 구석진 시원한 자리에 앉는다.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탁자에 펼친다. 진욱이 커피를 가져다주며 재인과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는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옆에 티라미수 마카롱은 신메뉴로 개발한 거라 서비스로 드리는 겁니다.”

“와, 정말요?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진욱이 자리를 떠나고 재인은 시원한 커피를 빨대로 한 번 쭉 들이켠다. 그리고 마카롱을 집어 들고 한 입 베어문다. 부드러운 크림치즈와 달콤한 코코아 가루가 한 입에 들어온다. 기분이 좋아진 재인은 오랜만에 여유롭게 인터넷 서핑을 한다. 아무 생각 없이 포털사이트에서 사회면과 연예면 뉴스 기사를 번갈아 구경한다.


그러다 문득 며칠 전 태진과 술을 마신 뒤 집에 들어와서 올렸던 게시글이 생각난다. 맨 정신에 생각하니 괜히 글을 올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곧바로 글을 삭제하려고 해당 커뮤니티에 들어간 재인은 화면을 보고 놀란다.


‘제목: 만일 죽는 날짜가 정해져 있다면, 여러분은 미리 그 날짜를 알고 싶나요?

조회수: 568,814회

좋아요: 34,812개

댓글수: 4,976개


생각지도 못한 높은 조회수와 댓글수를 재차 확인한다. 그리재인은 댓글창을 열고 찬찬히 내용을 확인한다. 댓글 내용은 굉장히 다양했다.


‘죽는 날짜 미리 알면 좋지.’

‘알면 뭐 할 거야. 죽는 날 다가오면 무섭기만 하지.’

‘몰라도 불안하고, 알아도 두려울 듯.’

‘막상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죽으면 별로 열심히 안 살 거 같음.’

‘전 알고 싶어요.’

‘나도 알고 싶은데.’


재인은 한 손으로 남은 마카롱을 입에 쏙 넣고 먹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댓글창을 계속 내려본다.


‘알아서 바꿀 수 있는 게 있으면 난 알고 싶음. 뭔가 대비하면 되지 않나?’

‘아는 게 당연히 더 좋지. 그럼 마지막에 가족한테 인사라도 제대로 하고 갈 수 있잖아.’

‘인생 마무리할 시간 있으면 난 좋을 거 같음.’

‘난 별로.’

‘아… 이거 고민되네…’

‘알면 뭐 하게.’

‘모르고 사는 게 속 편하지.’

‘정확히 죽는 날 알고 나면 남은 인생 더 제대로 계획할 수 있을 거 같음.’


알고 싶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댓글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었다.  생각보다 자신이 죽는 날짜를 미리 알고 싶다는 댓글이 꽤 많았다. 재인은 화면에서 눈을 떼고 잠시 턱을 괸 채 멀리 창밖을 바라본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한다.


‘그래, 알고 싶은 사람한테만 알려주면 아무 문제없겠다. 어차피 내가 가진 능력이고, 그 능력으로 필요한 사람들한테 도움 되면 좋은 거지. 사람들 머리 위의 죽는 날짜를 보면서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 때도 있었는데… 이제 이걸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오히려 보람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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