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병원 장례식장 사무실 한쪽 벽면에 대형 화이트보드가 보인다. 재인과 태진은 그 앞에 서 있다. 이번주는 둘이 한 팀이 되어 교대조로 움직인다. 태진은 말한다.
“오늘 108호실이 발인까지 마무리됐으니까, 조금 전에 상담하신 분을 이 호실에 배정해 드리는 걸로 합시다.”
재인은 대답한 후, 화이트보드 지우개로 해당 줄을 지운다. 곧바로 다시 보드펜을 집어 들고 새로운 일정을 적어 넣는다. 그리고 둘의 짧은 대화가 이어진다.
“그럼 제가 향로 모래랑 빈소 정리용품 챙겨서 갈 테니까, 태진씨는 조금 있다가 108호로 오세요.”
“고마워요, 재인씨. 그럼 나는 화장이랑 봉안시설 예약할 목록 좀 확인하고 바로 갈게요.”
재인은 사무실을 나서서 장례용품 보관실로 이동한다. 가방에 각종 청소용품, 항균 장갑, 수건 그리고 향로 모래를 챙겨 넣고 108호로 움직인다.
재인이 도착하고 태진도따라 들어온다. 텅 빈 빈소에는 외로운 적막이 흐른다. 발인이 끝나고 영정 제단에 있던 꽃장식은 화환 수거 업체에서 이미 정리해 갔다. 태진과 재인은 각자 항균 장갑을 착용하고 나머지 청소를 시작한다.
태진은 제단 위 양쪽 촛대의 초를 뽑아 들고 주변에 떨어진 촛농을 닦아낸다. 향로 안에 떨어진 재를 걷어내고 새로 모래도 채워 넣는다. 바로 옆에 남아있는 향들은 가지런히 모아 보관함에넣는다. 왼쪽 아래에 있는 헌화 항아리 안과 주변에 떨어진 꽃잎도 줍는다.
재인은 제단 아래쪽에 놓인 제기그릇들을 하나씩 들어 닦기 시작한다. 나무로 만든 제기에는 음식 기름기가 묻어 있다. 그녀는 주방 세제를 탄 물을 분무기에 담아 뿌린 뒤 젖은 행주로 두 번, 마른행주로 한 번 더 닦는다. 보관박스에 넣을 때는 그릇끼리 부딪히지 않도록 신문지로 하나씩 감싸서 겹쳐 올린 후 빈소에 딸린 작은 방으로 들고 들어간다.
태진은 빈소에 남아서 정리된 제단을 수건으로 한 번 깨끗이 닦아낸다. 이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집어 들고 빈소 바닥의 작은 쓰레기와 먼지를 쓸어 담는다. 마지막으로 헌화 항아리와 제단 위에 올려진 촛대 그리고 향로의 위치를 각 잡아 진열한다.
빈소 안쪽에는 장례 기간 중 유가족이 머무는 작은 방이 있다. 재인은 들고 들어온 제기 보관박스를 방 한쪽에 조심히 내려놓는다. 그 후 이불과 베개를 정리해서 옷장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바닥에 떨어진 옷걸이들도 주워서 다시 잘 걸어놓는다.
재인은 다시 빈소로 나온다. 태진과 재인은 뒷정리하고 남은 물건과 용품들을 가방에 챙겨 넣는다. 태진은 가방을 손에 들고 나오고, 재인도 다시 한번 빈소를 눈으로 훑어 확인한 후 마지막으로 전등을 끄고 빈소를 나온다.
사무실로 돌아온 태진이 말한다.
“재인씨, 오늘 저녁 약속 없으면 나랑 식사하고 갈래요?”
재인은 살짝 웃으며 대답한다.
“좋죠, 메뉴는 삼겹살 어때요?”
***
태진이 불판 위에 삼겹살을 올리기 시작한다. 치이익. 맛있는 소리와 향이 순식간에 버무려진다. 재인은 소주병을 따고 태진의 술잔에 붓고, 태진도 재인에게 술을 한 잔 따라준다. 둘은 한울병원 장례식장 입사 동기이면서 동시에 같은 대학에서 장례지도학을 전공한 선후배 사이다. 사무실에서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풀어진 자세로 식사하며 대화를 주고받는다.
“재인아, 오늘도 수고 많았다.”
“오빠도 수고 많았어.”
“야, 우리가 2018년 봄에 입사했으니까 일한 지 벌써 만 4년이 넘었어.”
“그러니까, 시간 진짜 빨리 간 것 같아.”
“맞아, 근데 재인이 너는 이 일 하는 거 어때?”
“난 솔직히 적성에 맞아. 그리고 나는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마음이 편해. 아무 잡생각 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어서.”
“그래? 다행이네. 나는 솔직히 아직도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일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건 사실이지만… 만나는 사람들한테 내 직업을 소개할 때 가끔 혼란스럽기도 해… 사람들 반응에 움츠러들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괜히 더 자부심 있고 사명감 있는 것처럼 포장해서 말할 때도 있어.”
“나도 그럴 때가 있기는 해. 어쨌든 매일 죽은 사람이랑 슬퍼하는 유가족을 마주해야 하니까 쉬운 일은 아니지. 사람마다 적성에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 오빠도 너무 힘든데 무조건 견딜 필요는 없을 거 같아. 우리 동기들도 절반은 다른 직업을 택하잖아.”
“그건 그렇지. 맞다, 얼마 전에 전해 들었는데 현태도 이번에 이 일 그만두고 일반 회사 취직했다더라.”
식탁에 술 병이 늘어나고, 둘의 얼굴에는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재인은 또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꺼낸다.
“오빠는 만약에 말이야… 죽는 날짜가 정해져 있다면… 미리 알고 싶어… 아니면 모르고 싶어?”
“갑자기 그건 왜?”
“아니… 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내가 일하면서 느낀 건데, 오랜 기간 투병하다가 돌아가신 분들 말고 갑자기 돌아가시는 분들 빈소에 가면… 가족 분들이 많이 허망해하시잖아… 예상하지도 못했고 마음의 준비도 못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그런 모습을 자주 보다 보니까 가족들 말고 죽는 당사자들도 미리 자기의 죽음을 알면 마음이 좀 나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음… 근데 생각해 보니까 나라면 미리 알고 싶을 거 같아. 어차피 사람은 언젠가 죽으니까 내가 죽는 날짜를 미리 알면… 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해볼 수도 있고…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마지막으로 인사할 시간이 있을 거 같기도 하고 그러네…”
재인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재인은 어릴 때부터 사람 머리 위에 떠 있는 죽는 날짜를 봐왔다. 그리고 그걸 보는 게 괴로워서 그 숫자가 보이지 않는 장례식장에서 일하기 위해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을 택했다.
그런데 이제 30년 가까이 살다 보니 사람들의 죽는 날짜를 보는 게 익숙해져서 크게 힘들지않다. 오히려 일하면서 만나는 유가족들을 보며 자신이 가진 능력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유독 그런 생각이 자주 든다.
태진과 헤어지고 집에 도착한 재인은 방으로 들어간다. 가방만 내려놓고 옷은 벗지도 않은 채 침대에 널브러진다. 그리고 휴대폰을 집어 들어 인터넷 대형 커뮤니티에 게시글을 하나 올리고 그대로 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