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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Sep 20. 2023

#7 부고

소설 연재


안치실에서 재인이 고인의 인적사항을 확인한 후 수시를 진행하기 위에 그 앞에 서있다. 이제 막 20살이 된 남성이다. 그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눈을 감은 채 고인의 명복을 빌 목례를 한다.


‘수시’는 시신이 굳기 전 팔과 다리를 주물러 구부러진 곳들을 바르게 펴고 묶어주는 절차다. 고인에게 수의를 입히거나 입관시킬 때 어려움을 겪지 기 위한 작업이다. 고인의 코와 귀 그리고 입을 탈지면으로 막는 초염 작업도 같이 한다. 재인은 수시를 마무리하고 시신을 안치한 후 보관키를 챙긴다.


그다음 사무실로 이동해서 상담 서류와 볼펜을 챙겨 대기실로 들어간다. 고인의 아버지는 동공이 풀린 채 천장을 보고 있고, 어머니는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고 울음을 삼키고 있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동생도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바닥을 멍하니 보고 있다. 재인은 유족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많이 기다리셨죠. 이제 상담 진행하겠습니다. 아버님만 안 쪽 상담실로 잠깐 모시겠습니다.”


상담실에서 재인과 상주의 대화가 이어진다. 그녀는 아직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을 가족을 배려하여, ‘유족’이나 ‘고인’ 등과 같은 단어 사용은 삼간다.


“안녕하세요. 많이 기다리셨죠. 이제 상담 진행하겠습니다.”

“네…”

“상담 진행하면서 빈소 마련하는 것을 비롯해 장례를 진행할 방법과 접객음식, 상식, 용품 그리고 화장시설과 봉안시설 등을 결정하시는 겁니다.”

“네.”

“우선, 장례 치르실 때 빈소를 마련하시겠습니까?”

“네.”

“매장과 화장 중에는 어떤 방식을 선택하시겠어요?”

“화장으로 진행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수의를 고르실 수 있는데, 여기 보시면.”

“저… 나머지는 그냥 다 기본적인 걸로 하겠습니다.”

“네… 결정하는 과정이 많이 힘드시죠… 조금 더 시간을 드릴까요?”

“아니요, 그냥 다 중간 비용되는 것으로 맞춰서 진행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문상객의 대략적인 인원과 화장시설 그리고 봉안시설만 정해주시면 예약해 드리겠습니다. 봉안시설의 경우 가족분들께서 거주하시는 지역을 고려선택하시면 됩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상담이 끝난다. 재인은 상주를 다시 대기실로 안내한 후 유족들에게 말한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빈소 준비가 완료되면 다시 안내드리겠습니다.”


이내 대기실 문이 천천히 닫힌다.



***



대학교 강의실 뒷문이 열린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우르르 나오고 그 사이로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재인 보인다. 흰색 반팔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재인은 팔 한쪽에 책을 끼고 다음 강의실로 이동하고 있다. 갑자기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다. 재인은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개설된 단체 메세지방의 알림이었다.


‘삼가 부고 알림 드립니다.

고인 : (故) 김정인 (향년 20세)

빈소 : 바론장례식장 102호

입관 : 2014년 4월 18일 오전 11시

발인 : 2014년 4월 19일 오전 9시

장지: 사나래 추모공원’


재인은 문자 내용을 두세 번 다시 읽었다. 같은 반이었지만 한 번도 사담을 나눠본 적 없는 친구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가족이 아닌 사람의 부고 문자를 받는 게 처음이었다. 재인은 매일 사람들의 머리 위 숫자를 보며 살아간다. 하지만 모든 숫자를 기억하지는 못한다. 정인의 숫자도 마찬가지였다.


‘김정인’이라는 이름을 계속 떠올려봐도 얼굴조차 그려지지 않았다. 친구라 하기도 어려운 관계라는 생각이 들자, 조문을 가는 것 자체가 고민됐다. 그러다 문득 어떤 구절이 머리를 스쳐간다. 누구에게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몇 번이고 흘려들었던 말이었다.


‘결혼식은 안 가도, 장례식은 가라.’


재인은 이동한 강의실 뒤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내 다시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고등학생 때부터 가장 가까이 지내는 친구 민아의 문자였다. 잠깐 대화를 주고받았다.


‘재인아, 부고 알림 봤어?’

‘응, 나도 방금 확인했어.’

‘갑자기 문자 받고 너무 놀랬어.’

‘그러니까…’

‘가야겠지? 사실 나는 정인이랑 안 친했어서 가야 할지 모르겠어.”

나도 그렇기는 한데… 우리 같이 다녀오자. 그래도 인사는 하고 오는 게 맞을 거 같아.’

‘그러자, 그럼.’

‘그래 민아야, 나 다시 수업 시작해서 이따가 다시 연락할게.’



***



재인과 민아는 마음을 한 번 가다듬고 빈소로 들어섰다. 재인은 정인의 영정사진을 확인한 뒤에야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항상 교실 뒷자리에 앉아 살짝 미소를 머금고 그림을 그리던 친구였다. 재인이 먼저 앞으로 나가서 향을 하나 들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손으로 살짝 바람을 일으켜 불을 끈 후 바로 향로에 꽂았다. 민아는 항아리에서 헌화 한 송이를 꺼내 꽃봉오리가 정면을 향하도록 제단에 올려놓았다.


둘은 조금 뒤로 물러서서 두 손을 가볍게 포갠 후 영정을 바라봤다. 두 번 큰 절을 하고 다시 반절을 했다. 그리고 상주와 유족들 쪽으로 몸을 살짝 돌려 다시 한번 맞절을 한 후 반절을 했다. 재인과 민아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시선을 한 곳에 고정하지 못한 채 서있었다. 그러자 정인이의 아버지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정인이 친구들이죠?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안쪽에서 식사 한 그릇하고 가요.”


재인과 민아도 고개를 숙여 간단히 인사를 드린 후 부의 접수대로 이동했다. 원래 부의를 하고 난 후 조문하는 것이 순서다. 하지만 민아와 재인은 장례식장의 어색한 분위기에 허둥지둥하다가 부의하는 것을 깜빡했던 것이다.


재인과 민아는 탁자 위에 준비된 부의금 봉투와 펜을 뽑아 들었다. 봉투를 뒤집어 왼쪽 편에 세로로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가져온 5만 원을 봉투에 넣으려는 순간 갑자기 정인이의 아버지가 와서 손을 막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부의는 하지 말아요. 이렇게 정인이 친구들이 와준 것만으로도 우리는 너무 고마워요. 정인이도 아마 하늘에서 고마워할 거예요. 다 우리 정인이 또래 학생들인데 돈이 어디 있어요. 그냥 방명록만 남기고 식사 한 끼 하고 가줘요. 대신 한 번씩 그냥… 우리 정인이 생각날 때… 친구들끼리 좋게 추억해 주면 그걸로 충분해요.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재인과 민아는 당황했다. 부의함에 봉투를 넣으려고 계속 시도했다. 하지만 정인이 아버지가 등을 떠밀다시피 식사하는 곳으로 안내했다. 둘은 자리를 잡고 앉아 육개장을 먹기 시작했다.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하며 재인은 생각했다.


‘조문할 때 고인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다고. 고인을 애도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리고 고인을 추억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다는 것 자체가 유족들에게는 엄청난 위로가 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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